실은 이 책은 제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찾아 봤다기 보다는 다른 재미있는 책이 어디 없나 하고 도서관 코너를 기웃거리다 정말 우연히 발견한 책입니다. 갑골문 하니까 주워들은 것이긴 하지만 은나라 시대의 글자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은나라 하면 좀 오래 전에 읽은 고전소설 『봉신연의』랑 이 『봉신연의』를 베이스로 하여 그려진 판타지 만화 덕에 알게 된 중국사 부분인데, 실은 은나라가 일반적인 명칭은 아니고 역사적으로 접근할 때는 상나라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더군요. 『봉신연의』를 만화로 재미있게 읽었던 고로 개인적인 입장에선 은나라라는 명칭이 좀 더 입에 붙긴 하지만... 그런데 은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중국사에서 유명한 폭군 주왕과 요부 달기의 일화만이 아니라 이 은나라에 얽힌 피비린내 나는 역사, 과거 고대 중국에서 벌어진 인신공양과 같은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에 대해서 이것저것 덕질을 하다보니 찾아보게 된 것도 있고 흥미가 생기기도 한 덕입니다.
소설 『봉신연의』를 본다면 마치 상나라(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 '제신'이 요부인 달기에게 미쳐서 별 기괴한 형벌을 다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상나라가 사람들 잡아와서 제사를 지내면서 애꿎은 목숨들을 꽤 여럿 잡은 것은 상당한 전통이라는 사실도요. 이 책 『갑골문의 비밀』은 갑골문이란 문자가 어떤 식으로 탄생했고 어떻게 쓰였으며 현재의 한자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히는 책이지만 이 문자가 쓰였던 시기를 생각해본다면 제가 관심을 둔 부분, 인간사에서 흑역사라 치부될 만한 이야기지만 그 처참함이나 끔찍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는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다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어나가면 역시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고 나왔는데 당시 상나라의 사회 문화는 점복과 제사가 일상적이었으며 전쟁이 잦았고,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제물로 잔혹한 방식을 이용해 바쳤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는 (굳이 실드칠 필요는 없고) 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일단 고대가 현대처럼 인권 의식이 발달했던 시절도 아니며, 심지어 가까운 과거만 하더라도 인종이나 소속, 국가 등을 문제 삼아 폭력이 정당화되던 시절도 있었으므로 고대에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되고요. 현대에는 과학의 발달 등으로 자연에 대한 이해가 있고, 어느 정도 환경 변화에 사람들이 적응을 하거나 대응을 하기 쉬워진 반면 과거의 인간들에게 자연과 자연에서 비롯된 변화는 그야말로 무서운 존재, 신의 노여움이라고 생각되었기 일쑤였기 때문에 그를 달래고 진정시킬 방법으로 점술과 같은 미신적인 방법이 쓰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추측이 듭니다. 책에서는 원시 신앙의 흔적과 더불어 영토가 넓어지면서 통치를 위해 강하고 공포스러운 방법을 채택했다는 설명이 나오더군요. 이런 점을 본다면 당시 상나라가 상당히 야만적인 구석이 강하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책에서 설명하는 상나라의 대표 인물들 왕인 무정이나 여장부인 부호 왕비 이야기, 체계가 잡힌 나라의 제도 등을 볼 때 상당히 선진적인 면도 강한 나라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갑골문이라는 표현 자체는 주로 거북의 뼈에 글자를 새기거나 거북이 아닐 경우 소의 견갑골 같은 곳에 글을 새겼기 때문에 비롯된 표현이며 갑골문이란 표현 말고도 이를 지칭하는 단어가 여럿 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갑골문의 최초 발견에 대해서는 좀 황당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옛날 사람들이 유적에 대한 인식이 좀 미미한 것은 있을 법 하다지만 이 갑골문을 '용골'이라 하여 약재로 썼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도대체 누구의 배에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 귀한 자료들이 들어갔을까 허망하기까지 하는데 그나마 당대에 금석학자였던 왕의영에 의해 갑골문의 가치가 발견되었다는 다행스러운 과정이 설명됩니다. 책에 실려있는 절반의 내용은 갑골문의 의의와 당시 상나라의 역사와 제도 등에 대한 설명이며 나머지는 한자의 근원과 원리가 된 갑골문 각 글자에 대한 설명인데 현재의 한자에 비교해본다면 좀 더 그림과 같으나 그 의미가 명확해 보이는 글자들이 많은지라 이 글자들의 목록을 읽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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