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비소설 기타

『전쟁이 발명한 과학기술의 역사』 리뷰

0I사금 2025. 4.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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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서관에 갔을 때 신간코너에 꽂힌 새 책이라 눈에 띄어서 빌려본 책입니다. 새 책이라 깨끗하기도 하고, 책 사이즈가 작아서 들고 다니기에 편한 크기이기도 했고요. 저번에 리뷰했던 『사라진 직업의 역사』의 크기도 이 책의 크기랑 비슷한데, 대개 읽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교양서적일 경우 이렇게 사이즈를 아기자기하게 만드는 것도 책을 읽게 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자의 머리말에는 '전쟁은 파괴를 상징하지만 파괴의 이면에는 창조라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라고 이르고 있는데 전쟁 무기는 그렇다 쳐도 우리가 흔히 쓰는 일상생활의 물건들 중 '바지'같은 의복이라거나 컴퓨터와 인터넷, 정로환 같은 약까지 전쟁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라는 것은 많이 알려지진 않은 거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건물이나 도로와 같은 것들도 전쟁의 영향으로 그 모습이 바뀌거나 널리 퍼지거나 하는 경향이 있다고요.


예를 들어 '바지'와 같은 항목에서도 원래는 치마를 주로 입다가 켈트족의 침공에 의해 바지 문화가 더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요약할 수 있는데, 단순 전쟁사만이 아니라 환경사의 영향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켈트족이 추위에서 더 견디며 싸울 수 있게끔 바지를 입었고 역시 켈트족과 싸우게 된 로마인들도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자신들이 야만인이라 경멸하던 켈트인의 옷인 바지를 착용하게 되었다는 거죠. 그리고 현재는 바지가 일상복으로 널리 입히고 치마는 여성들의 의복으로만 여겨지게 되었고 묘한 시대의 흐름이랄까요. 정로환 같은 경우는 위장에 탈 나기 쉬운 우리 가족이 자주 먹는 약이라 한번 심심해서 약의 효능을 찾아보다가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먹던 약이라는 사실을 봤는데, 그에 관해서도 자세한 설명이 따라 나옵니다. 정로환이라는 이름 자체가 '러시아를 정벌하는 약'이라는 뜻이라지요. 그 이름 자체는 약에서 풍기는 냄새만큼 떨떠름한 구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전쟁이 가지고 온 획기적인 변화는 역시 전쟁 무기 '총'의 개발인 거 같습니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총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기병, 기병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차가 우세했다고 하는데, 이 전차의 경우는 말이 사람을 태우고 다니기엔 약한 종류가 많았기 때문에 대신 전차를 끌게 하고 이것이 나중에 마차나 수레의 형태로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총의 거듭된 발명은 기병을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기병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갑옷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근대의 전투에 갑옷이 사라지게 만드는데요. 이 총은 계속 개발을 거듭하여 기관총의 형태로 등장하기까지 하는데,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이 앞서나간 이유는 바로 이 총 덕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기관총을 이용해 식민지인들을 학살하던 서구인들은 다시 전쟁에서 자신들이 만들어낸 그 기관총 손에 도륙당했다는 게 아이러니 같은 역사라고 할까요. 

 

책에 따르면 동양에서도 물론 총이 존재했고 화약 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도교의 단약을 만들다가 우연히 먼저 발명한 것이었지만, 중국이 통일상태로 오래 있던데 반해 유럽은 계속 작은 나라들로 나누어 전쟁을 일삼는 탓에 무기 개발이 더 빨리 이루어졌고 이것이 결국 근대에 이르러 서구 국가들이 군사력에서 압도적인 측면을 보이게 했다고요. 이런 걸 본다면 평화상태보다 전쟁이 가져다주는 이점이 많은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전쟁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개발이나 발명 역시 그동안 이어져온 인간의 욕망이 발현된 것이라, 전쟁이 만들어준 것이 아닌 계기가 되었다가 더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물건들 가운데 전쟁이 만들어낸 물건의 후손 격인 것들이 제법 많음에도 그 물건들은 전쟁 이전부터 사람들이 가지던 욕망이 구체화된 것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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