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비소설 기타

『아주 정상적인 악』 리뷰

0I사금 2025. 4.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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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보게 된 이 책 『아주 정상적인 악』은 제목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악(惡)의 일상성 혹은 악(惡)의 평범성을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할수도 있는데요. 악이란 것이 멀리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뉴스 속에만 존재할 거 같은 범죄사건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항상 존재했음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라고 할까요? 책에선 평범한 사람들 주위에서 일어났던 충격적인 범죄사건부터 전쟁 속에서 벌어졌던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찾아가며 인간의 악에 대해 고찰해 갑니다.


책의 내용은 총 15장으로 각각의 주제를 선정하여 악의 모습과 그 악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가는데, 일단 각 장의 내용이 짤막한 페이지인 데다 여기에 쓰인 단어들이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라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거기다 인터넷 뉴스를 통해 널리 퍼졌던 외국의 범죄사건이 예시로 등장해서 조금 놀란 것도 있고요. 우리나라를 한번 떠들썩하게 했던 조승희의 총격 사건이 사례에 한번 언급되어 놀라기도 했는데, 책을 읽다 보면 국적이나 인종과는 크게 상관없이 인간의 악행이 두루 열거되기 때문에 조승희의 이름이 언급된다고 해서 실상은 크게 놀랄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악을 탐구하는 분야도 여러 가지인데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도 인간의 악함을 연구하기도 하지만, 교육학적 측면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도 살펴보며, 심리학적 측면에서 영화 『엑스페리먼트』에서 쓰였던 실험이나 다큐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전기고문 실험을 통해서도 인간이 언제 어떻게 악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흔히 이 실험이 연구된 이유가 나치의 인종학살을 담당했던 인물들이 재판소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하나같이 평범하고 단순한 인간들이었다는 데서 놀라움을 가진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며 탐구한 결과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악이라는 것은 특수한 인간이 특수한 상황에서 저지르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책이 지적하는데, 사례 중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묻지 마 살해 같은 경우는 범인이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거나 혹은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서 혹은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건이라 피해자의 규모가 더 커진 경우가 제법 흔하다는 점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악한 감정이 폭발할 수 있는데 그 계기를 아무도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살인사건들은 더 무서운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미국드라마의 범죄수사물의 에피소드도 연관되어 떠오르기도 하는데,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들은 양념처럼 시리즈의 마지막이나 절정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고 나머지 사건들은 정말 현실에서 있을 법한 사건들이 등장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평범해 보여도 일그러진 정신 상태를 가진 범인들이 등장하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불운한 일에 휘말려서 정신줄을 놓아버린 경우도 적잖게 등장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수사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평범한 자동차 판매원이 눈앞에서 막내딸이 차에 치어 죽는 것을 보고 미쳐버려서 차를 타고 다니며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범인이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 도로에서 별 것 아닌 일로 시비가 붙어 욱한 마음에 상대방을 저격한 일이었고 결국 그는 그 사건을 시작으로 무관한 사람들을 도로에서 살해하게 됩니다. 거기에다 막내딸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던 아내와 큰딸도 살해하게 되지만 정신착란을 일으킨 상황에서 자신의 아내와 딸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계속 자신을 원망한다고 여기고 있었고 그 둘을 차에 싣고 자살할 생각으로 도로를 질주하게 되지만 경찰의 추적 끝에 붙잡히게 되자 이미 자신의 가족들은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제가 본 드라마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였는데, 이 이야기는 정말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일그러질 수 있는지를 잘 묘사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는 사이코패스나 조직폭력배와 같은 사람들이 이미 악하다고 여기는 존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도 계기가 생긴다면 얼마든지 악에 가깝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껏 고전으로 읽히는 수많은 비극을 다루는 작품들은 날 때부터 악한 인간이 아닌 선량한 인간이 어떻게 악해지는지를 묘사하기 때문에 고전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은 내면에 선한 만큼 악이 존재하고 그 균형을 잡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보면 또 인간 정신의 빛과 그림자 부분이 떠오르게 되는군요. 책에서는 인간의 공격성이 악을 드러낸다면 그 공격성을 없애는 것이 아닌 -왜냐면 공격성은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이기도 하므로- 공격성의 변환으로 악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책은 한 단원의 시작할 때마다 악을 고찰한 옛사람들의 명언으로 장식하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14장과 15장의 끝에서는 각각의 명언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용하여 리뷰를 맺어봅니다.



책의 14장 마지막 부분 - 중국의 철학자 순자의 명언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선하다면 그것은 문화의 결실이다." 


책의 15장 마지막 부분 - 스위스의 극작각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명언 "사랑은 언제나 가능한 기적이며, 악은 언제나 존재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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