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애니메이션

『그린마일』 리뷰

0I사금 2025. 4.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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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그린마일』은 이미 황금가지판의 원작소설을 독파한 적도 있고 그런데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드문드문 본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니 감독은 역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미스트』의 감독이기도 하고요. 예전에 다른 영화들의 마지막씬만 어쩌다 보게 되는 것처럼 이 『그린마일』도 TV 방영시 어쩌다 보게 될 때면 항상 마지막씬 노년이 다 된 주인공 폴(톰 행크스 분)과 그가 키우게 된 쥐, 원래 사형수가 키웠던 쥐로 좀 사악하고 찌질한 간수가 밟아 죽였지만 커피가 자신의 치유 능력으로 살려낸 녀석을 양로원에서 알게 된 친구 엘렌에게 보여주는 장면부터 보게 된 경우가 많았어요. 스티븐 킹 소설에서 정신 나간 광신도들이 사고를 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좀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이 작가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일 거라는 생각이 완연하게 들더군요. 소설을 읽었을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오늘 영화자료를 찾다 보니 주인공중 하나인 존 커피의 이름 철자는 바로 예수님의 이름 철자와 동일하다는 설명도 있었고요. 왜 이것을 소설을 읽었을 때에는 눈치채지 못했을까 놀라울 따름. 

영화를 보게 된 시점은 딱 소설의 클라이맥스로 존 커피가 주인공 일행의 부탁으로 뇌종양에 걸린 부인을 구해주고 그에게 뽑아낸 나쁜 기운을 악질간수에게 불어넣어 자매강간살인범에게 철퇴를 내리게 한 장면부터였어요.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놀랐던 것은 항상 조건 없이 사람을 구해주던 존 커피 같은 자비의 화신마저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은 있었다는 점입니다. 존 커피에게 누명을 씌우게 한 진짜 자매강간 살인범이 바로 커피의 옆방에 수감되어 있었고, 그는 이전의 못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꼭 자기처럼 못돼 먹은 악질 간수를 강간하겠다는 발언이나 행동을 해서 둘 사이에 긴장감을 유발했는데 결국 두 사람의 악연은 존 커피의 행위로나마 정리된 셈입니다. 소설에선 주인공 폴이 양로원에서 만나게 되는 한 청년이 악질간수와 닮았다는 언급이 있으나 영화에선 왠지 생략된 거 같더군요. 개인적인 응징을 했다는 점에서 이런 존 커피의 행동에 호불호가 갈릴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오히려 전 이런 점이 존 커피라는 캐릭터에 인간미를 불어넣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후반에 이어지는 존 커피가 자신의 능력을 통해 폴에게 보여준 진상 - 살인범이 각각 여자애들에게 말을 안 들으면 언니/동생을 죽일 거라고 협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과 '세상에 이런 일이 너무나도 많다. 사람의 애정을 이용해서 죽이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는 발언은 그가 그동안 느낀 절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그래서 묘하게도 그의 사형은 분명 시대적인 희생양이면서 (인종차별이 극심한 시절 흑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조사도 안 했다는 점) 동시에 자살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런 커피의 행동은 같은 이능력자이면서 자신을 비롯한 주위사람들을 파괴하는 결말로 치달아간 스티븐 킹의 전작 소설 속 주인공 캐리와는 매우 대비적이긴 합니다. 물론 일방적으로 캐리가 나쁘다고 하기에도 묘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일단 가진 능력부터가 다르고 둘 다 능력이 있어도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벗어나긴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복잡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장면 중, 마지막씬은 미묘했습니다. 폴은 양로원에서 알게 된 엘렌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장례식을 찾아가게 되는데, 커피가 사형을 당하기 전 자신의 능력을 각각 주인공 폴과 쥐에게 나눠준 덕에 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명이 연장되어 오래 살게 되었고 주인공 폴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 떠나보내면서 자신의 죽음을 바라게 되었죠. 그리고 자신의 이런 운명이 기적(존 커피)을 죽게 만든 데 대한 저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요. 그런데 이번에 마지막 장면을 다시 살펴보니 원작과는 다르게 주인공의 희망을 들어주는 노선으로 각색된 것은 아닌가 싶더라고요. 보아하니 폴이 키우던 쥐가 상자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커피의 치유력이 드디어 끝에 다다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였고, 결국 폴의 바람도 이루어지게 될 것임을 추측하게 하면서 약간 열린 결말로 영화가 맺어진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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