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는 못말려 : 태풍을 부르는 장엄한 전설의 전투』 리뷰

TV에서 종종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 시리즈의 극장판을 방영해 주는 적이 많아서 자주 시청하다가 보게 된 10기 극장판입니다. 실은 예전에도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그때는 여러 사정으로 중간까지 - 전국시대 떡잎성에서 떡잎마을 방범대 멤버들의 조상과 만나는 씬이라거나 연이 공주와 차를 타고 있는 짱구 가족이 만나 성으로 초대받는 부분-까지만 보게 된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지금까지 본 짱구 극장판 중에는 몇 개는 몰입이 잘 안 되어서 그냥 보다 말았거나 한 경우도 있고 이번 극장판은 소재가 전국시대 타임슬립이라 배경에 왜색도 많이 있고 흥미가 안 가서인지 왠지 보지 않았었는데 이 극장판이 그 명성 자자한 『짱구는 못 말려 : 어른제국의 역습』과 함께 좋은 평을 받는 짱구 극장판이더라고요. 그래서 흥미가 생겨서 드디어 마지막까지 TV앞을 지키면서 봤습니다.
『짱구는 못말려』극장판 시리즈는 TV시리즈랑은 다르게 꽤 거대한 스케일의 비일상적인 소재가 난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편은 다른 만화 『이누야샤』생각나는 전국시대 타임슬립이라 신기하긴 했습니다. 보면 극장판의 소재가 진짜 다양하단 생각도 들고요. 아무래도 일본 배경이지만 일본어를 그대로 쓰긴 그랬는지 이름을 전부 한국식으로 바꾸었더군요. 이번 극장판의 주인공 무사는 비룡, 히로인 아가씨는 연이, 적 영주의 이름은 흑호 이런 순으로... 뭐 바꾼 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잘 판단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비룡이라던가 흑호는 원래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람이름으론 안 쓰는 경우가 많으니 적당하게 바꾼 거 같기도 하고 미묘합니다. 원래 『짱구는 못 말려』 는 일본만화인 게 많이 알려져 있으니 어린 시청자들이 많이 혼동은 안 할 거 같기도 하고요.
떡잎마을 꼬꼬마들의 성격이 현재와는 정반대라거나 하는 것으로 개그 소재로 써먹는 등 재밌는 요소는 많지만 전체적으로 내용은 어두운 편이더군요. 전쟁을 소재로 하는데다 전쟁씬도 많이 리얼한 편이고, 애초에 떡잎마을의 과거인 떡잎성은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고 전설로만 전해진다는 이야기가 짱구 아빠의 입으로 언급되는 등 역사는 비극적으로 끝난다는 것이 미리 언급됩니다. 그리고 신세를 진 떡잎성은 흑호 영주가 이끄는 군사들의 침공으로 멸망할 위기에 놓이고 짱구 가족 일행은 그 사이에 도망치기로 합니다만... 이렇게 되어 버리면 짱구 가족이 왜 타임슬립을 해야 했는가 싶더니 역시 가족들이 나서서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버립니다. 하긴 그 시대 사람들 눈에 자동차는 괴물로 보일만도 하겠지만요.
그와중에 치여도 보험료 같은 거 안 나온다는 짱구 아빠의 일갈에는 폭소. 어쨌거나 전쟁에서 이겼으니 떡잎성은 극상의 역사에 제대로 기록이 되었겠지요? 떡잎성의 사람들의 반응은 좀 신기했는데 일단 미래에서 왔다는 짱구 가족 일행의 이야기를 순순히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하긴 짱구 가족 일행의 행색이나 가지고 있는 물건을 보면 자신들과 다른 것은 확 눈에 느껴지기도 할 테고, 과학적인 것을 크게 기준삼을 시대도 아닌 것 같을뿐더러 아무래도 멸망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좀 더 관대해질 수 있는 건가 하는 복잡한 생각도 들었고요. 뭐 일단 이런 점은 만화니까 하는 식으로 넘어가도 될만한 것이지만요.
굉장히 충격적인 건 이 극장판의 결말로 짱구 가족의 활약으로 흑호 영주를 물리치고 역사도 바꾸었나 싶었지만 군사들의 수장인 비룡이 짱구가 보는 앞에서 빗나간 총알에 맞으면서 쓰러지더군요. 예전에 어떤 역사소설에서도 전투를 막 끝내고 이겼더니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맞아 죽는 그런 묘사를 본 적도 있긴 한데 이번 극장판에서 그런 충격적인 장면이 나올 줄은 예상도 못했습니다. 비룡은 죽기 전 짱구에게 자신의 운명은 원래 이리 될 것을 짱구 덕분에 늦춰진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보답으로 자신의 보물인 단검을 짱구에게 전해줍니다. 그런데 비룡은 연이아가씨와 사랑하던 사이인데 고백도 제대로 못해본 상황이라 비극성이 한층 커지더군요. 이번 극장판의 결말도 그와의 사랑을 지키며 모든 청혼을 물리치겠다는 연이의 고백과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오는 짱구가족의 이야기로 끝나는데요. 비극적이지만 참으로 군더더기 없는 엔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모로 기존 극장판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진 극장판이라 인상이 깊이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