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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리뷰

0I사금 2025. 4. 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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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빌려오게 된 『노동의 배신』은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지인들과 저임금 노동자들에 관한 토론을 나누다가 그가 옛날의 기자처럼 직접 그들의 삶에 뛰어들어 취재를 하는 젊은 기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꺼냈다가 얼떨결에 자신이 그 옛 기자들의 정신을 되살린 젊은 기자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렇게만 쓴다면 역시 엘리트 계층인 저자의 치기 어린 정신에 의한 겉핥기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하겠지만, 저자의 전작인 현실적인 문제점을 다룬 『긍정의 배신』의 내용을 살펴보면 적어도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기다 가난에 대한 편견과 환상이 공존하는 시대니 만큼 적어도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편견이나 환상 없이 그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인이 확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일단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신분(?)을 따지자면 중산층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노동의 배신 이전에 『추락의 두려움 : 중산층의 두 얼굴』이라는 서적을 쓴 적 있다고 책의 마무리 부분에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예 빈민을 접할 수 없는 상류층보단 중산층은 빈민을 접하기 쉬운 점이 있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층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현재 워킹푸어의 삶을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려면 그들 스스로의 목소리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사회적으로 하류층의 이야기를 들어줄 일도 없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하류층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없기 때문에 적어도 바버라 에런라이크와 같은 인물이 필요한 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직접 워킹푸어 계층의 사람들이 사는 집을 구하면서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 중에 住의 문제부터 짚어갑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하는데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책에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아파트와 주택의 월세가 높게 올라 노동자 계급은 모텔 방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는데, 이 모텔 방의 질도 역시 가격이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1인용 방은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케이스도 있으며 - 자식이 딸린 싱글맘이나 혈연이 아닌 두 사람 이상 동거- 바버라 에런라이크 같은 경우 어떤 경우 혼자 객실 하나를 이용한다는 이유로 그곳 안에서 일종의 ‘귀족’처럼 여겨지기도 했다고요. 그다음으로 그는 흔히 사람들이 구할 수 있는 직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구인광고를 통해 적당한 직업을 물색한 뒤 다사한 면접 과정을 거치는데, 이 면접과정은 어떤 의미로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면접과정에서 소변검사를 통한 약물검사를 시도하는 것을 지적하는데, 마약이 넘쳐나는 나라에서 어쩌면 기본적인 주의사항일지도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은 ‘마약을 한다’는 전제와 약물 검사 회사의 이득 등이 숨어 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 면접 시간이 쓸데없이 길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데 후반 월마트 취직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아무래도 면접 과정이 복잡하면 할수록 그 과정을 통과하여 채용된 사람들로 하여금 긴 시간을 거친 만큼 그 직장이 좋은 곳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며 실제론 저임금에 불과하더라도 시간을 허비한 만큼 쉽게 다른 곳으로 눈 돌리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워킹푸어 계층의 현실과 그들에게 갖는 편견을 지적하는 동시에 자신이 겪은 직장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도 분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그가 일했던 호텔에서는 체코 출신 접시 닦기 직원이 배고픔 때문에 약간의 음식을 훔쳐 먹는 사건에서 비슷하게 피로하거나 주린 상태를 경험했으면서 아무도 동료 직원을 두둔하지 않았던 일이 있었고, 청소부 일을 하였을 당시에는 임신한 다른 직원이 발을 다치는 사고가 있었으나 오히려 그 직원의 안정을 요구한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더 부적절한 인물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전자의 사건은 일종의 폐쇄적인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용기를 잃게 되며 한때 잠시나마 그 속에 속해 있던 저자 자신도 그런 면모를 피해 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후자의 사건에서는 때론 모욕적이고 과도한 업무를 맡으면서도 다른 직장을 얻기엔 적절치 않은 환경-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직장이 많다고 하더라도 직장을 새로 얻기 위해 생겨나는 돈이 없는 ‘공백 기간’을 일하는 이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과 대다수의 여성 직원들이 가부장적으로 군림하는 사장에게 어떻게든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가 있는데, 이런 ‘애정 결핍’은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만성적인 박탈감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경험에 따르면 과거 웨이트리스 일을 했을 당시에는 유니폼을 입고 있어도 사람들이 먼저 대화를 건네는 등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적이 많이 없지만, 청소부 복장을 하고 있는 동안은 사람들이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는 겁니다. 

청소부만이 아니라 경비원이나 단순노동자와 같은 직업의 사람들 역시 암묵적으로 ‘불가촉천민’에 가깝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는데 이것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전작인 『오! 당신들의 나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있었어요. 저자가 지적한 랭키즘(Lankism)이 사회 곳곳에 은밀하게 만연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청소부 생활을 통해 결국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사회적 격언이 실제론 허구라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직업이나 계급으로 차별하거나 편견을 갖는 것을 정당화하고, 자신이 다른 계급에 있을 때 그들에게 함부로 대우해도 된다고 믿는데 저자가 겪은 직장생활에서도 추태를 부리는 인간들의 사례가 종종 언급됩니다.

문제는 이런 편견이 제삼자나 고용주들의 입장만이 아니라 이들을 지원하는 자선단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한번은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지원 센터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얻을 수 있는 음식은 영양가 없는 인스턴트 류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나마 덜 ‘성가신’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가 만난 워킹푸어 계층이 먹는 음식도 영양가 없고 제대로 된 식사는 못 된다는 사실이 자주 언급되는데 비만이 늘어난다고 비난을 하건 말건 인스턴트 음식은 빈민층이 구하기 쉬운 가장 값싼 음식이며 보통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절약할 경우 가장 먼저 줄이게 되는 것은 식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계층에서는 비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사회적인 시선은 그 원인을 찾을 노력은 하지 않고 그들의 비만에 게으름이라는 편견을 씌운다는 겁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책 후기에서 언급되지만 실제 단체로부터 지원금을 얻으려는 부부는 그곳의 직원들로부터 굴욕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워킹푸어 계층의 사람들이 더 좋은 임금의 직장을 찾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법한 사람들도 없지 않을 텐데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여기서 그 답을 제시해줍니다. 일단 저임금 노동자는 일자리에 대해 조언을 구할 만한 곳이 없으며, 손에 들고 다니는 기기도, 케이블 방송을 볼 수 있는 채널도, 컴퓨터 웹사이트도 없고 오로지 직원을 구한다는 안내문과 구인광고 밖에 없고 급여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기에 협상을 벌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자신이 받는 보수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존재한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매체에서 성공한 사람들, 스타와 유명인들을 비추고 그들을 우상화하면서 실제로 적은 봉급을 받는 사람들은 열등한 유전자를 타고났다는 증거로 비치기 때문에 아무도 보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며, 실제로 급여문제로 회사와 대립한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는 사실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글에서 하나 더 그가 강조하는 점은 사회적 분위기 전작인 『긍정의 배신』에서 이야기한 성공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입니다. 성공과 관련된 소수의 사례는 부풀리면서 대다수의 빈곤에 대해서 입을 다무는 매체들을 비판하는데, 실제로 저자가 보고 겪은 노동자들의 의기소침한 삶은 단순 높은 물가와 그에 못 미치는 급여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은 타고나길 열등하게 타고났거나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에 휘둘리기 때문은 아닌가 했습니다. 예전에 리뷰한 미우라 아츠시의 『하류사회』에서도 계급 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우생학이 정당화되기 쉽다는 충고를 한 바 있어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후기에서 넘어진 사람을 발로 찰 필요까지는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넘어진 사람을 발로 차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시대가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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