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책』 리뷰
이 책의 저자인 클라이브 바커는 검색을 해 보니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것으로 나오는데 예전에 개봉한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이란 공포영화의 원작에 해당하는 소설이 이 책에 실려있었습니다. (다만 영화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의 감독은 다른 인물) 딱히 영화 때문은 아니고 이 책 『피의 책』은 독특한 표지에 이끌려서 본 경향이 있습니다. 책은 단편집이긴 하지만 책의 첫 소설 「피의 책」을 일종의 서장으로 보고 책 속의 소설들을 연작으로 볼 수도 있겠는데요. 「피의 책」의 내용은 얼치기 가짜 영능력자가 원혼들의 분노를 사서 원혼들이 겪은 이야기가 그의 몸에 새겨진다는 내용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단편들은 그 몸에 새겨진 이야기들인 셈이고요. 아마 「피의 책」이란 단편이 상징하는 바는 인간은 피가 흐르는 일종의 책이라는 이야기예요.
단편은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에서부터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좀비, 미친 살인마, 어리숙한 악마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도시의 비밀을 알게 되고 도시의 지배자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도살자의 임무를 건네받게 되는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 마을에 봉인되었다가 풀려나 사람을 잡아먹는 행패를 부리다 분노한 마을 사람들에게 응징당하는 괴물 「로헤드 렉스」 라거나 많은 인간의 몸을 엮어서 만든 거대한 거인이 등장하는 「언덕에, 두 도시」, 인간의 영혼을 노렸지만 오히려 느긋하게 역공당하는 어리숙한 악마가 등장하는 「야터링과 잭」, 정실실험고문 끝에 주인공이 정신줄을 놓고 살인마가 되는 「드레드」 등.
몇 가지 단편만 빼면 책의 내용은 피가 질척이는 내용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정작 읽을 때는 그렇게 끔찍한 느낌은 받지 않았습니다. 어딘가 무미건조하다 싶은 문체가 질척임을 줄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특이하다 싶은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단편집 중 종종 동성애적인 뉘앙스를 품은 단편도 더러 있다는 건데, 암퇘지를 신으로 모시는 이야기가 나온 「피그 블러드 블루스」에서는 일종의 소년원에 새로 온 교관 주인공과 그곳의 미소년의 미묘한 감정교류라거나, 「언덕에, 두 도시」같은 경우는 남성 주인공들이 연인관계로 애초에 나온다거나,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에서는 주인공이 신음소리를 듣고 남자연인들끼리의 밀회를 연상한다던가 하는 언급이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근데 이런 설정은 내용 자체에 크게 문제가 되는 설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꽤나 찜찜한 내용임에도 유머러스한 결말을 맺게 되는 단편들 같은 경우 몇 개는 정말 심각한 상황임에도 오히려 그 끔찍함 때문에 더 인상적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사람 잡는 괴물에 기겁하다가 결국 막판에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분노를 되살려 괴물을 살해하는 「로헤드 렉스」같은 경우는 어쩌면 맥없다 싶은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인상적으로 본 작품입니다. 초연한 성격의 인간에게 오히려 당하는 소악마 이야기인 「야터링과 잭」은 소설의 시작도 칙칙하지 않아서 결말까지 부담 없이 읽은 반면 「로헤드 렉스」 같은 경우는 초반 무시무시한 살해 행각 때문에 그 결말이 더 빛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괜히 행패부렸다가 주인공들이 모조리 물귀신 되는 「스케이프고트」도 그렇고요. 그럼에도 「드레드」와 같이 주인공이 살인마로 변모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을 보면 매우 섬뜩하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도 결국 주인공이 살인마의 임무를 이어받으면서 그 살육이 이어진다는 결말로 끝나니 찜찜하기가 그지없지요. 특히 「드레드」 같은 경우는 더욱더. 이렇게 분위기가 제각각인 소설들이 한 데 모여 있기 때문에 이 『피의 책』이란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보아하면 공포소설의 다양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도 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