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설과 만화

민음사판 『분노의 포도』 1권 리뷰

0I사금 2025. 4. 24. 00:00
반응형

마을 도서관에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도서관에 두 종류 비치되어 있는 걸 발견했고, 홍신문화사에서 나온 버전의 책은 먼저 리뷰한 바 있습니다. 일종의 비교를 위해 민음사 버전의 책도 리뷰할 생각을 했고, 드디어 1권을 완독 했습니다. 처음엔 민음사 버전이 홍신문화사버전과 분량의 차이가 꽤 크기 때문에, 홍신문화사 쪽 한 권짜리 책이 혹시 축약버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민음사버전 1권을 빌려오면서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책의 두께가 차이가 나게 된 이유는 이 민음사 버전이 홍신문화사 쪽 번역본보다 여백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더라고요. 홍신문화사 책이 좀 더 큰 만큼 활자를 더 빽빽하게 채워놓았다면 민음사 버전의 책은 여백이 위아래 양옆으로 넓은 데다가 한 장이 끝나면 바로 다음 장을 아래 칸에 잇는 방식이 아닌 남은 여백을 그대로 두고 다음 페이지에서 다음 장을 시작하는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페이지가 할애된 격이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책이 필요이상으로 두꺼워지긴 하지만 읽을 때 눈의 피로도가 덜하기 때문에 몰입하여 읽기에는 더 수월한 편이 있습니다. 일단 이 민음사 버전의 도서관 책이 더 깨끗하고 질이 좋은 점도 있고요.


번역의 차이는 크게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가끔 나오는 문장의 어미 차이 정도인데, 예를 들면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면서 종이에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경위를 짤막하게 적는 구절은 홍신문화사에선 '-입니다/-습니다' 체로 좀 더 쪽지를 읽을 상대방을 존중하듯 설명하는 투라면, 여기 민음사버전에선 '-이다/-였다' 체로 끝난다는 점 정도입니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큰 차이를 못 느끼겠더군요. 그리고 이름의 번역에서 약간 차이가 있는데 톰 조드의 마을 친구인 뮬리는 여기선 멀리로, 동생들인 루디와 왼필드는 여기에서 루티와 윈필드로, 로저샨인 경우는 '샤론의 로즈'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홍신문화사 버전에서는 로저샨의 별칭이 '샤론의 장미'라고 그대로 번역되어 로저샨이란 이름이 그 별칭을 줄여 부른 말(로즈 오브 샤론)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 민음사 버전의 번역본에서는 로저샨의 이름에 대해 설명을 첨부해주고 있어요. 이 1권의 내용은 18장까지 싣고 있는데, 바로 조드 일가의 할머니가 죽는 내용까지입니다. 전의 리뷰에서 줄거리를 요약했기 때문에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지만은 이번에 좀 더 상세하게 몰입하여 읽으면서 그때 놓쳤던 일부분까지 찾아봤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그들이 하는 말을 좀 더 신경써서 읽었는데, 예를 들자면 짐 케이시의 가르침-모든 영혼은 거대한 영혼의 일부-은 이미 초반 부분에 언급된 것이 마지막 장 톰 조드의 결의에서 더 빛을 발한 것이며, 짐 케이시의 신들림과 같은 통찰력은 이미 조드 일가도 다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중도에서 만난 새리 윌슨 역시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캘리포니아로 가는 와중에 만난 윌슨 부부는 새리의 병이 악화되어 결국 헤어지게 되는데, 새리가 죽음을 앞두고 짐 케이시에게 하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신의 모습을 모른다고 해서 신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조드 일가의 기둥이 된 어머니의 정신력은 캘리포니아에 도달하기 전부터 드러난 현실적인 면에서 기인했다는 것도요. 소작농이었던 조드 일가가 땅을 뺏기고 쫓겨나면서 그나마 기댈 것이 캘리포니아 농장의 전단지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드 일가는 크든 적든 거기에 낙관적인 희망을 품어보는 반면, 어머니는 광고지엔 좋은 이야기 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곳의 '안 좋은 점'을 숨기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합니다.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정착후 삶을 꿈처럼 그리는 로저샨에게 우리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다는 말에서도 드러나고요. 보통 기대가 크면 큰 만큼 그 기대에 반하는 결과가 나올 경우 실망이 더 커지는 경우가 많은데 즉, 조드일가를 버티게 한 그녀의 힘은 그녀의 확실한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셈입니다. 이는 예전에 리뷰했던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에서 강조했던 비관적인 현실주의에서 비롯된 삶의 모습이지요. 그리고 가석방되어 나온 톰에게 싸움을 일으키지 말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이유도 톰이 그냥 참고만 있는 성격은 아닌지라 후반에 있을 파국을 미리 판단했기 때문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책을 다시 읽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이 소설은 당시 경제대공황시기의 빈부격차와 소작농들의 비참한 삶만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편견이 어떤 식으로 생겨나는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를 적대하게 되는지도 고찰한 책이 아닌가 싶어요. 소설 속에서 '오키'라는 명칭이 생겨난 경위부터 그들을 바라보는 제삼자들의 시선을 끊임없이 등장시키면서, 왜 사람들이 서로를 적대하게 되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간간히 등장하는 편견을 더 악화시키는 광신도들의 행위도 등장하고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