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판 『반지의 제왕』 2권 리뷰
소설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제 기억으로 영화 『호빗』이 개봉했을 당시 관심이 생겨 도서관에서 찾아봤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번역 평이 좋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사의 번역본을 읽고 싶었지만, 도서관에 전권이 비치되어 있어도 영화가 개봉한 며칠 동안 대출 중인지라 어쩔 수 없이 황금가지 출판사의 번역본을 빌려오기로 했었는데요. 황금가지판도 번역이 무난하다고 들었거든요. 하지만 아쉽게도 도서관에 비치된 장편소설들인 경우 으레 1권이 소실 중인 경우가 많고 예전에도 다른 도서관에서 다른 장편소설들을 빌릴 때도 항상 1권만이 없어서 포기한 소설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래도 『반지의 제왕』은 영화판이 각색된 버전이라고 하더라도 원작의 내용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걸 아니까 1권의 내용은 아쉽더라도 포기하고 과감하게 2권부터 읽어나가기로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중학생 시절 근방 도서관에서 『반지전쟁』이라는 제목의 시리즈의 1권을 한번 접한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내용 이해를 잘하지도 못한 나머지 잘 읽지도 않고 반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때 제가 소설의 등장인물 중 가장 기묘한 '톰 봄버딜'이 등장하는 부분까지 읽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영화상에선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지만요. 그래서 어느 정도 1권의 흐름은 파악할 수 있었는데, 2권의 시작은 폭풍산에서 나즈굴의 칼에 찔린 프로도가 정신을 잃었다가 리벤델에서 눈을 뜨는 것으로 열립니다. 거기서 간달프와 재회하며 나즈굴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여기에서 대화로 설명됩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소설의 흐름은 영화판과 큰 차이가 없는데 그래도 세세한 부분에서 달라진 구석이 보이더군요. 영화판은 제가 제대로 읽지 않은 1권의 내용을 각색하거나 잘라내거나 하는 등 여러모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이번 2권 - 반지원정대 下편에서는 영화의 그것과 내용이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리벤델에서 반지(일반적으로 절대반지라고 알려져 있지만 소설상에서 유일반지)를 두고 요정, 난쟁이, 인간들이 회의를 하고 이 반지의 운명을 결정짓는 인물로 프로도가 나서게 되지요. 영화 『반지의 제왕 1 : 반지원정대』 초반 부분에 사루만의 배신으로 탑에 감금되는 간달프의 고난 이야기는 리벤델 회의 부분에서 간달프가 자신의 여정을 설명하는 데서 자세하게 설명됩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투로 갈색의 마법사 라다가스트가 언급되기도 하구요. 그리고 영화 초반 사우론과의 전쟁에서 이실두르가 그의 손가락을 잘라 반지를 빼앗은 역사 역시 회의 초반 엘론드의 이야기로 설명이 됩니다. 보면 초반의 회의에서는 어떤 한 이야기가 한 인물의 대사로 자세하게 설명되는 부분이 많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로 인해 리벤델 이야기가 좀 길어진 측면이 있지 않았나 싶더군요. 영화상에서보단 소설에서 리벤델에서의 거주가 좀 더 오래 지속되는 편인데 프로도 일행을 반기는 파티도 있었고, 소설 상의 흐름과 큰 상관은 없지만 엘론드의 자식들도 언급됩니다. 영화상에선 아르웬이 프로도를 구하는 활약을 한다지만 원작에선 그런 일은 없고 리벤델 파티 부분에서 처음 프로도가 그를 보게 되는데 그 생김새는 엘론드를 여자화한 거 같다는 묘사가 나오더군요. 그리고 아라곤과의 사랑도 어느 정도 선으로만 암시될 뿐이고요.
그리고 요정의 아름다움에 대해선 소설이나 영화나 비슷하게 여겨지는지라 프로도의 심리묘사에서 엘프들 사이에서 자신의 초라함 때문에 위축되는 감정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것은 실제로도 많이 겪을 수도 있는 일인지라 공감이 갔습니다. 소설에서는 영화상에서 묘사하기 힘든 프로도의 심리가 제법 많이 등장합니다. 중간중간에 프로도가 어떤 발자국 소리와 눈빛을 어렴풋이 느끼는 부분도 있는데 이것은 반지를 찾는 사우론을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소설 내내 암시되어 온 골룸의 존재를 느낀 건지 조금 모호하더군요. 영화상에서 재미난 각색을 많이 했다는 것을 소설을 읽고 알 수 있는데, 프로도가 반지 운반자로 결정이 되자 몰래 회의를 경청하던 샘이 자신도 프로도를 따라가야 한다며 엘론드에게서 허락을 받아내는 것은 똑같지만 메리와 피핀이 회의 말미에 난입하여 어디로 가는지도 정확하게 판단 못하면서 같이 가겠다 하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영화를 접했을 때 이 부분에서 제법 폭소를 했는데 소설 상에서 회의가 끝난 후 호빗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앞날을 결정짓더군요. 피핀의 민폐끼는 소설 상에서 완전히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완화된 느낌이었고요. 게다가 리벤델에서의 거주가 소설이 거의 반분량에 해당할 정도로 긴 편입니다. 그리고 소설 상에선 호빗이나 요정들의 노래가 수시로 등장하는데 으레 그렇듯 소설에서 그런 장면이 나오면 대충 읽고 스킵하는 편입니다. 소설 후반의 내용은 설산에서 길이 막힌 일행이 모리아광산으로 길을 틀었다가 거기서 오크들과 발로그의 습격을 받는데, 여기서 창에 맞은 프로도가 거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남는 장면에선 미스릴 갑옷이 활약을 하지만 미스릴의 가치가 어마어마함을 알게 된 프로도가 자신이 빌보로부터 그것을 받았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도 합니다.
뭐 나중에 아라곤(소설 상 번역으로 아라고른)이 상처를 치료하면서 드러나긴 합니다만... 이 미스릴 갑옷과 관련된 이야기로 리벤델에서의 파티 부분에서 빌보의 모험에 해당하는 호빗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언급되며 소린의 12 가신 중 하나인 글로인이 프로도를 아는 체하는 부분도 나오고요. 영화를 봐서 어느 정도 내용을 알게 된 지라 조금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아마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소설의 이런 전개에 대해 어느 정도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간달프가 발로그와 대치하다 다리에서 떨어지고 일행은 슬픔에 잠길 짧은 시간도 없이 로스로리엔에 들어서게 됩니다. 여기서 요정과 난쟁이의 해묵은 갈등이 잠시 드러나는데 오히려 후반에는 레골라스와 김리의 사이가 돈독해집니다.
재미나게도 로스로리엔의 여주인 갈라드리엘에게 김리가 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영화를 볼 때 오히려 갈라드리엘과 프로도의 묘한 기류를 느꼈는지라 조금 당황했습니다. 프로도가 갈라드리엘의 거울을 보는 장면에선 영화와 달리 샘도 동행하는데 샘이 샤이어의 앞날을 걱정했다면, 프로도는 좀 더 다른 길을 보는 거 같더군요. 아무래도 샘은 프로도를 샤이어와 잇는 징검다리 역할도 있는 듯. 책을 읽다 보면 영화상의 인물들 이미지를 자꾸 소설에 대입시키게 되는데 샘의 성격은 소설이 좀 더 밝아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리의 성격도 영화상의 개그스러운 면에 비하면 좀 더 온건한 느낌인데, 김리 말고도 아라곤이나 보로미르의 성격도 영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요.
영화상에서 아라곤은 왕이 되는 자기 조상의 실책(영화 오프닝에 묘사되는 장면)과 자신의 임무에 압박감을 느끼는 거 같았는데 소설에선 이미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맘을 굳힌 상태고 왕의 검인 나르실도 리벤델에서 이미 새로 벼르고 나온 상태. 영화판의 보로미르는 어딘가 호쾌하고 사람 좋으면서도 반지에 흔들리는 나약함을 갖춘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여기선 처음부터 오만하다는 수식이 자주 나올 뿐만 아니라 간달프나 아라곤과 약간 부딪히는 경향이 있더군요. 결국 막판에 보로미르가 반지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면서 프로도는 샘과 함께 떠나는데 아직 보로미르가 죽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다음 권 '두 개의 탑'은 그의 죽음으로 시작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