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설과 만화

황금가지판 『반지의 제왕』 3권 리뷰

0I사금 2025. 5.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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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2권을 빌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책을 독파하고 이후 도서관에 가서 빌려온 3권도 금세 다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3권을 읽으면서 제가 예전에 어떤 식으로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읽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는데, 『반지 전쟁』이란 제목의 번역본으로 주인공 일행이 톰 봄버딜과 만나는 장면과 로한의 국경지역에서 에오메르 일행과 만나는 부분을 대충 읽었던 게 기억났습니다. 왜냐면 『반지 전쟁』에서 에오메르와 에오윈 남매의 이름을 '요머'와 '요윈'으로 번역했던 것을 제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아마 그 사이에 엄청난 텀이 있고 제가 다른 번역본으로도 그 빈 부분을 읽지 않았던 거고요. 그리고 후에 황금가지 번역본을 대충 접했을 때는 아무래도 4권 부분부터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개의 탑'은 영화로도 자주 접했으므로 영화의 내용도 전반적으로 잘 기억하고 있어서 이번에 소설을 읽으며 영화의 그것과 머릿속으로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영화는 샘과 프로도 일행이 모르도르로 향하며 겪는 이야기와 아라곤 일행이 피핀과 메리를 구하기 위해 로한에 다다르는 내용을 교차로 보여주는데 이번 3권은 오로지 아라곤 일행과 메리/피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샘과 프로도의 이야기는 다음 4권에 몰려있습니다. 나름 영화의 전개방식은 현명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래도 샘과 프로도 이야기는 아라곤 일행이 겪는 것만큼의 스펙터클함이 없기 때문에 교차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금세 지루해질 것이 뻔할 거 같으니까요.


3권의 시작은 보로미르가 메리와 피핀을 구하려다가 화살받이가 되어 죽고 유언으로 아라곤에게 곤도르를 부탁하는 것으로 열립니다. 프로도를 존중하는 아라곤의 행동은 아무래도 영화쪽 각색. 개인적으로 보로미르의 죽음도 영화 쪽이 좀 더 강렬한 인상이었어요. 소설 상에선 사루만 휘하의 우르크하이들과 나즈굴 즉 사우론 휘하의 오크들의 메리와 피핀을 납치하면서 대립하는 이야기가 상세하게 나오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별거 아닌 거 같아도 후반에 나오는 사루만의 속내와 관련이 깊습니다. 즉 사우론과 협력하여 배신을 했으면서도 나름 야망을 가져 사우론도 쳐낼 생각을 했으며 사우론도 사루만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였죠. 


오크들이 로한 기마대의 습격으로 전멸하고 숲으로 도망간 메리와 피핀은 엔트들에게 구원받는데 영화상에서 오크로 오인한 엔트에 의해 약간의 위협을 받는 것과는 달리 엔트는 그들의 '귀여운' 목소리를 듣고 오크가 아닌 다른 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나옵니다. 이 엔트의 숲 이야기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데 영화상엔 나오지 않던 엔트 '나무수염'의 집에서 그들의 음료를 대접받는 이야기도 등장하며 그들의 반려인 엔트부인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나옵니다. 영화에서는 호빗들의 계획으로 전쟁에 나서길 꺼려하던 엔트들이 사루만을 징벌하기로 맘먹은 것관 달리 여기선 처음부터 사루만의 악행에 분노한 그들이 전쟁을 준비했다는 차이점이 있네요.


이번 3권은 어찌보면 사루만의 몰락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사루만에게 세뇌당한 로한왕 세오덴이 백색의 마법사로 부활한 간달프[간달프의 부활도 영화상과 차이가 있는 것이 영화에선 마치 초월적인 힘이 그를 인도한 것처럼 나오지만 여기에선 독수리왕이 발로그와의 싸움에서 지친 그를 로스로리엔까지 옮기고 부활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의 설득으로 제정신을 차리고, 사루만의 수하인 뱀혓바닥 그리마를 내칩니다. 이 장면도 어떤 마력적인 힘에 의해 세오덴을 일으키는 것처럼 나오는데 영화상에선 세오덴에게 빙의한 사루만과 간달프의 알력싸움처럼 묘사되었죠. 헬름협곡에서의 전투도 영화와는 다른 묘사가 나오는데, 영화에선 병력을 상당히 손실한 로한이 절망적인 심정으로 요새로 피신하다가 와르그의 습격을 받는 등 우울하고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깔렸었다면 여기선 세오덴이 스스로 싸우기 위해 헬름협곡으로 떠나는 것으로 나오며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추방된 에오메르가 막판에 간달프의 부름에 따라 그들을 지원 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세오덴을 보좌하며 다음 왕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에오윈은 남은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해 왕궁을 맡는 것으로 나옵니다. 에오윈과 아라곤의 만남과 에오윈이 아라곤에게 반하는 것은 똑같은데, 아라곤이 에오윈을 보며 아름답다고 여기는 감정묘사가 나와 안될 걸 알면서도 괜히 설레기도 했습니다. 이후 헬름협곡의 처절한 싸움에서 엘프궁수들이 지원 오는 것도 영화의 오리지널이고 오히려 간달프가 싸움 이전에 로한의 영주들에게 지원요청을 하여 그들이 막판에 오크 군사들을 쓸어버립니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는 엔트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간달프가 마법을 썼다고 착각하기도 하는데요.


사람들이 아이센가드(소설 상의 번역은 이센가드)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엔트들이 그곳을 쓸어버린 직후고 메리와 피핀이 일행들을 반기지요. 그리고 생략된 엔트들의 활약은 메리와 피핀이 아라곤 일행에게 해주는 이야기로 자세하게 설명이 됩니다. 그리고 소설 상에선 세오덴이 호빗과 엔트를 경이롭게 여기는 장면도 묘사되어 있구요. 아이센가드가 몰락하면서 사루만은 고립되는데, 여기서 그의 마법은 목소리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라고 설명이 됩니다. 엔간히 면역이 되지 않는 이들은 사루만의 목소리에 넘어가기도 하지만, 간달프의 호통에 사루만이 꼬리를 내리지요. 재미나게도 사루만의 몰락 부분은 영화에서 『반지의 제왕 2 : 두 개의 탑』이 아닌 『반지의 제왕 3 : 왕의 귀환』 확장판에 나오는데, 거기선 패배한 사루만이 물레방아 위로 떨어져 죽음을 맞더군요. 소설에선 좀 더 오래 살아남아 그리마와 함께 민폐를 끼치지만.


마지막엔 그리마가 간달프를 맞추려고 집어던진 팔란티르의 돌을 피핀이 줍고 간달프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호기심 때문에 기어이 손을 대는데, 그때문에 피핀은 미나스 티리스로 가는 간달프와 동행합니다. 『반지의 제왕 3 : 왕의 귀환』 영화판의 시작 부분이 소설 '두 개의 탑' 상권 마지막장에 실려있는데, 팔란티르의 돌의 역사에 대해서도 소설에서 간달프가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요. 아무래도 영화상에선 카리스마적인 신비로움을 어필하기 위한 탓인지 생략된 사우론의 대사도 피핀의 설명으로 등장하고요. 영화상에선 간달프가 미나스 티리스로 향하는 것은 피핀이 사우론의 침공계획을 엿본 덕으로 나오던데, 여기선 아직 그런 설명이 나오진 않습니다. 아마 5권을 읽어봐야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올 듯? 보면 이 팔란티르의 돌은 어떤 유혹과 삶에 대한 철학을 은유하는 거 같은 의미심장함이 있습니다.


영화쪽의 이미지가 좀 더 와닿는 것이 많긴 합니다만 소설을 읽으면서도 새롭게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보로미르나 아라곤, 레골라스의 이미지는 영화 쪽이 좀 더 좋지만 김리는 왠지 소설 쪽이 매력적인 게 갈라드리엘에 대한 애정이 수시로 드러난다는 점 때문에요. 처음 에오메르가 갈라드리엘을 의심하거나 그리마가 그를 매도하자 발끈한다거나, 살아 돌아온 간달프에게서 그의 전언을 듣고 좋아한다거나 하는 장면들. 심지어 4권 부록에서 그가 바다를 건넌 것도 갈라드리엘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하니 순정남이 따로 없습니다. 그리고 또 눈여겨보게 된 인물은 에오메르인데 영화상에선 아라곤-레골라스-김리가 너무 돈독하다 보니 이 셋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데 비해, 소설에선 헬름협곡에서 두 사람이 같이 활약하는 씬이 많더군요. 에오윈을 아끼는 거야 영화나 소설이나 비슷하니 나중에 고생하는 사람은 파라미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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