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설과 만화

황금가지판 『반지의 제왕』 4권 리뷰

0I사금 2025. 5.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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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지의 제왕』 3권의 중심인물이 프로도와 샘이 아닌 메리와 피핀 그리고 아라곤 일행이었다면, 이번의 중심인물들은 단연코 프로도와 샘입니다. 영화상의 그것처럼 일행과 헤어진 그들은 모르도르의 운명의 화산으로 향하는 거친 길에서 여러모로 고생을 하고, 골룸의 습격으로 당황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를 제압하지만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소설 내내 골룸의 스토커 행각을 일행이 다 눈치채고 있고 어느 정도 샘과 프로도 둘 다 대비하고 있었다면 영화상에선 골룸은 갑작스럽게 그들을 덮치는 것처럼 나오지요. 골룸이 요정의 렘바스빵이나 요정밧줄에 거부감을 표현하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나 크게 다를 바 없고, 골룸이 프로도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잡아온 토끼를 어떻게 잡아먹느냐는 문제로 샘과 다투는 것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샘이 프로도에 대한 무한한 애정도 수시로 드러나는데 직접적으로 '저분을 사랑해'라는 속내도 드러나서 깜짝 놀랐거든요. 뭐 충심에 기반한 애정이겠지만요. 거기다 프로도의 얼굴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와서요. 프로도가 매우 차분한 모습으로 많이 나와, 샘은 대조적으로 굉장히 발랄해 보입니다. 영화상에선 반지에 의해 자제력을 잃어가는 프로도보다 오히려 샘 쪽이 골룸 때문에 신경질적이 되어도 더 차분한 모습을 보였던 거 같은데 말이지요. 또 이번 3권에서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인물인 '파라미르'가 등장하는데 프로도와 샘이 파라미르와 만나는 장면이 영화와 약간 다르게 묘사돼요. 영화상에선 하라드림이 지나가는 것을 목격한 프로도 일행이 주춤거리다 파라미르와 맞닥뜨린다면 소설상에선 샘이 점심을 먹고 불씨를 제대로 꺼뜨리지 않아 그것을 수상쩍게 여긴 파라미르의 군사들이 그들을 발견합니다. 


소설 상의 인물과 영화 상의 인물들이 성격이 약간씩 다른 경우가 있는데 파라미르도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포지션 자체는 똑같은데 성격이 약간 달라졌다고 할까요? 소설에선 반인족인 프로도 일행을 보고 당황해하지만 이내 차분하게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프로도가 반지에 대한 것은 함구한 채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자 자신의 형이 어떤 유혹에 흔들렸을 거라고 추측까지 합니다. 반지에 대해 드러나는 계기도 약간씩 다른데 영화상에선 파라미르의 군사에게 붙들린 골룸이 배신당했다는 착각에 멋대로 실토한 것이라면 소설 상에선 샘의 실언으로 반지의 정체와 보로미르가 반지를 빼앗으려 했다는 것까지 드러납니다. 물론 파라미르는 충격을 받지만 오히려 프로도 일행의 의지를 존중하여 그들을 보내주고 그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데요. 


영화의 모습에 비하면 소설에선 프로도 일행과 우정을 쌓았다고도 할 만큼 돈독합니다. 그리고 파라미르에게 붙들린 프로도 일행 앞에 나즈굴이 나타나는 것도 영화의 각색. 골룸을 경계하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나 똑같습니다. 파라미르의 성숙함이나 차분함은 일단 소설 쪽이 압도적이며 그 묘사에 있어서도 보로미르보다 인격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뭐랄까요? 영화상에선 고집스러움이 결국 아버지의 질책도 감수하겠다는 희생적인 면을 더 돋보이게 해서 그런 건지 차별받는 아들의 입장이 동정심이 간 건지 소설의 파라미르못지않게 영화상의 파라미르도 엄청 애정이 갑니다. 제가 좀 불쌍한 캐릭터 취향인 듯. 영화상에선 파라미르 덕택에 샘의 굳고 희생적인 마음씨가 훨씬 극적으로 드러났으니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할까요.


골룸은 묘하게 웃기고 또한 짜증을 유발하면서도 이상하게 동정심이 가는 것이 사실인데 이런 점도 소설에서 잘 드러납니다. 샘의 무릎을 베고 잠든 프로도의 무릎을 조심스레 만지는 골룸을 가족과 친척, 친구를 먼저 보내고 초라하게 늙어버린 가엾은 인물로 묘사하는데 예전에 읽은 『철학으로 반지의 제왕 읽기』에 실린 한 평론에 의하면 저자인 톨킨은 이때가 바로 골룸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였으나 그때 잠에서 깬 샘의 의심으로 그 기회가 날아가는 비극적인 장면이라 설명했다고 한 글이 기억납니다. 우습고 짜증스러우면서도 불쌍하고 그렇다고 마냥 좋게 볼 수 없는 인물인 골룸은 『반지의 제왕』이 만들어낸 정말이지 가장 독특한 캐릭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영화상에서 『왕의 귀환』에 삽입된 실롭의 동굴에서 겪는 이야기로 메워지는데요. 영화상에선 골룸의 이간질 탓에 샘과 프로도가 서로 떨어지고 프로도 혼자 거미의 덫에 걸리자, 뒤따라 온 샘이 그를 용감하게 구출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 소설상에선 샘과 프로도가 동시에 덫에 빠지고 프로도가 실롭에게 물리는 것을 보자 샘이 분노하여 실롭을 요정의 검으로 격퇴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어느 쪽이든 용감한 호빗인 데다 프로도가 죽었다고 착각한 것은 똑같아서 샘이 반지를 따로 빼놓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여기엔 심리묘사가 더 추가되어 혼자 떠나야 할 운명에 압박감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오크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반지를 끼는 씬마저 등장합니다. 반지를 한번 쓰기 시작하면, 점점 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은데 말이지요. 다음 권은 프로도 구출로 시작되려나요?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한 캐릭터의 재미있는 점은 샘이 실수하거나 망설일 때마다 스스로의 이름을 부르며 꾸짖는 대사가 나온다는 겁니다. '이런 바보 같은 샘'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틈틈이 아버지(노친네라고 부르지만)를 언급하며 츤데레스러운 아들의 애정을 보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호빗이 작다는 거야 다 아는 이야기지만 조금 귀여운 묘사가 나오는데, 호빗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인간 남자들이 그들을 아이처럼 들어 올리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호빗이란 종족의 모티브는 어린아이가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또 4권의 부록을 보니 왠지 실마릴리온을 다시 읽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하는데 좀 애먹었거든요. 마지막 난쟁이족 이야기를 읽으니 영화 『호빗』이 생각나서 괜히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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