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뿌리는 사람판 『호빗』 리뷰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사에서 나온 소설 『호빗』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반지의 제왕』 사이에 끼어져 있어 처음 도서관에 이 책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시리즈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탓인지 표지 삽화의 분위기나 디자인이 『반지의 제왕』과 흡사했기 때문에 혼동했었거든요. 그런데 유달리 책이 두껍다고 생각했던 이 책의 제목은 떡하니 『호빗』이라고 쓰여있고 잘됐구나 싶어서 책을 빌려오게 되었습니다. 일단 영화 『호빗 : 뜻밖의 여정』을 정말 즐겁게 보고 그것도 두 번이나 관람해서 더 즐거웠던 영화의 원작소설을 보게 된 것은 행운이랄 수 있겠는데 영화랑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고, 소설 자체의 재미도 있고,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파악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즐거웠습니다.
다만 분위기 자체는 동화에 가까운 것인지라 『반지의 제왕』 시리즈보다 밝은 면이 많은데 『호빗』이 먼저 나온 작품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반지의 제왕』이 『호빗』에서 여러 소재를 취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난쟁이들과 요정들의 해묵은 갈등이나, 마법사 간달프의 수수께끼스러움, 여행 중간에 얻게 되는 마법의 반지는 말할 것도 없이 절대반지, 고블린 굴에서 만난 골룸의 존재, 요정인 엘론드의 등장, 레골라스의 아버지는 『반지의 제왕』시리즈에 나오지 않지만 그 아들이 주인공 중 하나로 등장하니까요. 거기다 강령술사=사우론의 존재도 희미하게 지나가듯 언급되기도 합니다. 아직 최종보스로서의 이미지는 없고 결말 부분에 갑자기 사라진 간달프의 원래 목적이 강령술사를 내쫓기 위한 마법사들의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언급되더군요. 아마 영화상에선 리벤델에서 갈라드리엘과 사루만을 만나는 것으로 묘사된 그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특히 이 소설에서 중요한 점은 탐욕에 대한 시사랄까요. 여기서 마법의 반지 즉, 절대반지는 빌보가 여러 위기에서 탈출할 때 예를 들면 어둠숲의 거미들을 무찌르거나 붙들린 난쟁이들을 구해준다거나, 스마우그를 맞대면했을 때 도와주는 아이템 정도의 역할 밖에 없고 그 정체도 옛날 전설로 전해지는 몸을 투명하게 하는 마술을 가진 반지 정도로만 언급되지만, 반지 시리즈의 절대반지와 유사한 도구로 존재하는 것은 난쟁이들의 산에 남겨진 아르켄스톤입니다. 영롱하게 빛나는 이 보석은 소린과 빌보가 그동안의 모험 속에서 호의를 쌓아가다가 막판에 그들을 틀어지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심지어 탐욕이 적은 편인 빌보마저도 자신이 요구할 보물의 몫으로 아르켄스톤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스마우그의 폭주 탓에 호수마을이 붕괴하고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보물을 요구한 바르드의 조건과 갈까마귀의 현명한 조언마저 무시할 정도로 소린은 아르켄스톤의 마력에 그 조부와 마찬가지로 지배당했고 죽기 직전에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빌보와 화해하지요.
결국 아르켄스톤은 소린이 죽어서야 같이 묻히게 됩니다만... 여기선 빌보는 상황을 해결할 열쇠로써 과감하게 자신의 손에 들어온 아르켄스톤을 포기하는 것이 놀라운 점입니다. 왜냐면 반지시리즈의 주인공은 그렇게 못했기 때문에요. 물론 두 물건의 차이가 명백하긴 하지만요.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지만 드워프들의 개성은 명백하게 영화 쪽이 압도적입니다. 잘생긴 필리킬리 형제는 큰 대사 없이 이름이 자주 언급되다가 마지막 결말에 소린을 지키다 죽었다는 설명이 나오며, 오히려 빌보와 엮이면서 비중이 있는 것은 도리이고 나름 민폐를 끼치는 덕에 존재감을 어필하는 건 봄부르라고 할까요. 읽으면서 영화 속에 나온 난쟁이가 누가 누구였는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 영화만을 봤다면 쾌활하고 정 많은 전사 같던 난쟁이들이 의외로 비굴한 면과 이기적인 면도 많다고 느끼게 됐고, 특히 소린은 소설 상에서 많이 깨는 측면이 있습니다. 등장부터가 영화와는 달리 봄부르의 육중한 몸에 깔리면서 등장하고 그 성격도 짜증을 유발하는 답답한 구석이 있습니다.
거기다 요정들도 어딘가 미묘하게 웃긴 성격들을 가지고 있는데 엘론드의 영토에서 요정들이 좁은 다리를 건너는 난쟁이들과 빌보를 놀리지 않나, 어둠숲 요정들은 술에 진탕 취해 자신들이 붙잡아둔 난쟁이들이 탈출할 계기를 주지 않나 뭔가 상상과는 많이 달라서 놀랐습니다. 난쟁이라고 다 용감한 것은 아니고 요정들이라고 다 고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었어요. 하나 더 눈여겨볼 점은 고블린들의 등장인데 소설에선 딱히 오르크와 고블린의 구분을 두지 않는 거 같더군요. 큰 고블린을 오르크라고 한다는 설명이 나왔던 것도 같고요. 오르크 수장 아조그가 원정대를 쫓는 것은 영화상의 각색이고 이미 그는 죽어서 그의 아들 볼그가 원한을 가지고 막판에 보물을 두고 싸우는 인간과 요정, 난쟁이들을 침략하고 그것들을 격퇴하느라 저절로 화의가 성립됩니다. 역시 공동의 적을 두면 어제의 적은 친구가 되는 걸까요.
그것말고도 영화상에서 잘린 독수리왕일행도 위급할 때마다 빌보 일행을 돕는데, 특히 마지막 전쟁에서 이들의 활약이 가장 큽니다. 여기서 이름은 언급되지 않아서 분명 과이히르인 줄 알았는데 『반지의 제왕』의 독수리왕과는 다르다는 설명을 본 기억이 있는 듯. 소설 『호빗』은 결말에서조차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데 빌보는 미스릴 갑옷과 약간의 금은, 돌이 된 트롤들이 숨겨둔 보물을 가지고 금의환향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미 그를 죽었다고 생각 그의 친족들이 그의 집과 물건을 경매에 맡겨버립니다. 이 부분에서 특히 폭소했습니다. 물론 빌보가 버젓이 살아 돌아오면서 무효화되지만요. 평화로워진 뒤 빌보의 집엔 난쟁이와 요정 그리고 마법사가 종종 들리면서 그는 마을의 별종으로 여겨지게 되며 『반지의 제왕』과는 다른 감흥을 주지만 훈훈한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