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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따라갈까』 리뷰

0I사금 2025. 5.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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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를 편집한 책인 『이야기의 힘』을 예전에 리뷰한 적이 있습니다. EBS다큐는 상당히 유용한 정보들을 담고 있는 경우들이 많은데, 특히 이 『왜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따라갈까』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그리고 굳이 아이를 두지 않은 사람이라도 주변에 아이들이 있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더군요. 아마 리뷰를 쓰다 보면 약간 분노가 솟구쳐서 공격적인 말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는데 그것은 이 다큐에서 다루는 질 나쁜 범죄 중 하나인 아동성범죄자들의 행태와 우리나라 법집행의 한계점을 똑똑히 볼 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여기 등장한 성범죄자들 중 하나는 예전에 인터넷에 돌아다녔던 보는 이들의 분노를 유발한 종류의 그것들이 많습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아이들이 유괴범죄에 취약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위험에서 지키기 위해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라고 어른들이 충고했지만 그 충고가 실은 무용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는 어른들의 사고와 아이들의 사소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있는데,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하면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라도 친근함을 가장하거나 선물을 주며 호의를 베풀거나 주위 사람(부모)의 친구나 동료라고 말하면 그것을 곧이곧대로 듣는 경우가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는 가끔 어른들 사이에서도 발생하는 일이기도 해요.  그리고 더 문제점은 매체에서 범죄자들을 그릴 때 항상 특이한 외모, 사회에 부적절한 모습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분별하게 그것을 수용하여 낯선 사람하면 으레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리고 겉으로 보아도 수상쩍다는 이미지를 상상하는데 실제로 낯선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현세대의 교육방침도 문제가 되는데 왜냐면 아이들은 늘 착한 아이가 되어라, 어른들의 말을 잘 들어라라는 교육을 수시로 받고 자라며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하거나, 착한 아이 혹은 똑똑한 아이임을 입증하기 위해 그 요청을 받아들여서 피해를 보는 케이스가 상당하는 겁니다. 


여기서 책은 아이들에게 "어른은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라는 충고를 해주라고 하고 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훨씬 잘 도와줄 수 있는 어른들을 두고 더 힘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한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물론 요새 같은 세태에서는 어른들이 도움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반박하는 인간들이 있을지 모르는데 어린애한테 의지하기보단 일단 어른이라면 알아서 하는 자세를 길러야 할 필요가 있을 듯. 그리고 그런 요청을 거부한다고 해서 나쁜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며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을 지킬 권리가 있음을 숙지합니다. 여기서 자존감이 강한 아이와 자존감이 낮은 아이가 구분되는데요. 사랑받는 집안에서 인정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존감이 강하여 자신을 지키는 법을 터득하지만, 소외받거나 애정을 못 받은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낮아 가장된 어른의 호의나 도움을 거부하지 못하며, 아동대상 범죄자들은 이런 자존감이 낮고 순종적인 아이들을 타깃으로 삼기 쉽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책의 중반 이후 부분은 아동성범죄자들의 실태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지적하는데 읽으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고 화가 나는 부분이 여기입니다. 아동성범죄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은 자신에게 잘못이 없고 아이들이 자신을 유혹했거나 아이들의 옷차림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회피하는데, 이런 사이코패스적인 특성을 가진 자들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으며 이들이 교정이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즉, 사회에 나왔을 경우 거의 백프로 확률로 이들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는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법집행입니다. 선진국의 사례들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 아동보호에 대한 실제적인 체계를 갖추고, 형집행에서도 언제나 '재범 가능성'을 두고 무거운 형벌 최소 '종신형'을 내리는 데 반하여 우리나라의 법은 '재범 가능성'보단 범죄의 숫자나 피해자의 숫자로 판단하여 형을 내리기 때문에 그 형벌이 매우 가벼워집니다. 이렇게 아동성범죄자들은 가벼운 형을 받고 다시 사회에 나오면 또다른 표적을 찾아 범죄를 저지르는데 이때 그들이 잡힐 경우 전과로 인해 형이 무거워질 것을 두려워하여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살인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또 하나 읽으면서 문제점은 피해자의 치유보다 가해자에게 더 신경쓰는 듯한 구조가 문제인데, 예전에 리뷰한 책 『현시창』에서도 언급되었듯,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에 대해서 어떤 심리치료나 도움이 없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거의 사회에서 방치되고 소외된다는 점입니다. 생각해 보니 더 화가 나는 일은 가해자에 대해 제대로 된 형벌을 내리는 것도 아니면서 어설프게 그들도 학대받은 가엾은 인간이라며 동정론을 호소하는 인간들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이것은 범죄자가 활개 치게 내버려 두는 것은 사회시스템의 문제지만 과거에 학대받았다는 이유로 범죄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는 당연한 부분을 간과하는 이야기입니다. 가정이 중요하다고 언급되는데 가정의 일을 실제로 국가에서 일일이 간섭할 수는 없는 것도 현실이다 보니 결국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동학대범과 아동대상성범죄자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주는 것과 그들이 다시 범죄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 최선이 된다는 거죠. 

 

한때 사회에 충격과 분노를 동시에 안겨주었던 '조두순 사건'도 어린 아이를 무참하게 상처 입힌 데다 이미 여러 번의 전과가 있었음에도 겨우 '12년'형을 받은 것에 대해 사람들의 분을 삼키지 못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법이 줄 수 있는 최고형이라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거라고 봅니다. 이 사건은 책에서도 언급이 되는데, 그야말로 아동성범죄에 대한 인식 부족과 우리나라 법이 가진 한계를 뚜렷이 안겨준 사건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근데 법이 문제라면 뜯어고쳐야 하는게 맞는데 오히려 사회의 법이 가해자를 더 배려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니 사람들이 우리나라 법에 대해 불신과 조소를 보내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책에선 덧붙이기를, 아동대상 범죄를 막기 위해선 법의 변화만이 아니라 시민의식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가 나와요. 우리나라와 같이 지역공동체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가족과 이웃이 합심하여 아이들을 지키고 수상쩍은 인물을 감시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마지막 결론에서 해결책을 주는 것은 으레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직은 산 넘어 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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