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리뷰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영화 평이나 리뷰 글들을 찾아보고 있으면, 직접 보진 않았어도 꽤 인상적인 영화들 몇몇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아무래도 영화의 내용이나 감상들을 보았을 때 이 영화는 왠지 내 취향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고, 이런 경우는 궁금해서 스포일러라던가 캡처본이라던가 하는 것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같은 경우는 개봉 당시엔 마케팅 미스로 악평을 받았다가 나중에 마케팅과 상관없이 영화를 보게 된 분들 같은 경우 굉장히 호평을 내린 경우를 많이 봐서 궁금해진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마치 어린이 대상 판타지 영화인 것처럼 홍보가 되어서 영화의 분위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거나, 어린아이가 보기엔 부적절한 장면들이 종종 나오는데 애들이 봐도 괜찮을 것처럼 홍보했단 이유로 화를 내는 분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꿈과 희망이 가득 찬 그런 내용이 아닌 굉장히 암울하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가득한 영화라는 것이 핵심.
이런저런 영화 평이나 해프닝으로 말미암아 보고 싶어졌는데요. 희한하게도 보통 영화 채널에서 한 번은 해 줌 직도 한데, 영 소식이 없는 데다 나중에 DVD를 주문할 때 한번 찾아볼까 했지만 정작 사이트에서 파는 DVD들은 한국어 무자막 판인지라 사봤자 소용이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볼 기회가 없는 건가 했는데 당시 LTE 비디오 포털(현 유플러스 모바일 TV)의 영화들을 살펴보니 무료로 서비스하는 영화 목록이 있던데 그 영화들 사이에 바로 이 영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가 있었습니다. 유료로 서비스하는 영화들 말고 무료로 볼 수 있는 영화들은 왠지 인지도가 낮거나 흥행이 덜 된 영화들인가 싶었는데, 그중에서 볼만한 영화들은 이미 OCN 같은 영화 채널에서 방영을 해서 감상을 한 영화들이라 굳이 다시 볼 필요는 없어서 이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선택해서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상영시간을 보면 꽤 긴 시간인 데다 판타지적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을 배경으로 한 내용에, 꽤나 잔인한 장면들이 곳곳에 나오더군요. 영화의 몇몇 장면들 예를 들면 비달 대위가 끌려온 농부를 술병으로 내리쳐 살해하는 장면이나 얼굴이 베이는 바람에 직접 시술하는 씬이라거나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피가 흥건한 장면들도 가끔 나와서 어른이 봐도 섬뜩한데 이것을 어린이 판타지 영화처럼 홍보했단 것은 암만 생각해도 마케팅 에러. 하지만 영화가 담은 내용대로 솔직하게 마케팅을 했다 하더라도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흥행을 했을까는 좀 의문인데 그도 그럴 것이 내용이 상당히 암울하더군요. 영화의 배경은 1944년 스페인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데다 주인공인 오필리아의 상황도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었고요. 그리고 간간이 영화상에서 암시되는 바깥의 전쟁 이야기도 그렇고.
봉제공인 오필리아의 아버지가 죽은 이후 어머니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비달 대위에 강요에 의해서인지 그와 재혼을 하고 임신을 한 상태에 계부인 비달 대위는 아들만 얻으면 그만이라며 만삭의 산모인 부인을 자기가 있는 반군과 대치한 전장에 부르지 않나, 그 와중에 오필리아는 의지할 상대 없이 소외당하며 동화책에 빠져 사는 등 여러모로 불길한 전개가 암시되면서 영화가 시작됩니다. 오필리아는 반군과 대치 중인 숲에서 오래전부터 있었다던 유적에 요정의 인도로 들어가 거기서 오필리아를 기다렸다던 숲의 신 판을 만나 세 가지 과제를 부여받습니다. 영화 프롤로그에선 오필리아는 지하국 요정나라의 공주로 인간세계에 나왔다가 자신의 기억을 잃었고 판의 과제를 보름달이 뜨기 전에 수행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과연 정교하게 짜인 오필리아의 상상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는 좀 미묘하며 결말에서도 오필리아가 과연 과제를 이루고 그 영혼이 고향 왕국으로 돌아간 건지 아니면 그것이 죽기 전 오필리아의 환상인지 매우 모호하게 끝나더군요.
이런 모호함이 감독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지만 영화의 전개를 보았을 때 차라리 좋은 쪽, 오필리아는 진짜 요정 왕국의 공주였고 비록 현실에서 죽었지만 그 영혼이 무사히 아늑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믿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모든 것이 오필리아의 상상이라 하더라도 그 상상은 참혹한 현실과 대비되어 당시 참혹한 스페인의 상황을 암시하는 효과가 있어요. 묘하게도 오필리아가 판에게서 받은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그 상황은 정부군과 반군의 대치 상황과 교차되기도 하는데 첫 번째 관문에서 오필리아가 열쇠를 얻는 것을 성공할 때는 반군은 정부군의 추격을 피하고 반군의 협력자들인 의사나 하녀인 메르세데스 역시 정체가 발각되지 않는 등 좋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두 번째 과제 괴물의 방에 들어가 음식을 먹지 말라는 금기를 깨뜨리는 바람에 요정도 잃고 자격도 잃어버리는 부분에선 반군은 결국 정부군의 습격에 패배하고 반군의 말더듬이 청년은 포로로 끌려와 고문 끝에 죽고, 협력자였던 의사 역시 비달 대위에게 살해당하는 등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지요.
그리고 막판 마지막 과제에서 오필리아가 그 관문을 통과했을 때는 (표면적으론 죽음이었지만 실은 그 죽음 자체가 관문으로 결국 오필리아는 무사히 과제를 수행한 셈) 반군의 승리로 끝납니다. 즉 영화상에서 오필리아의 행동은 반군의 이야기와 묘하게 얽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이 이야기가 오필리아라는 아이가 환상의 세계에 발을 디디는 것만이 아니라 당시 스페인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곳의 사람들이 어땠는지를 어느 정도 영화가 전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자료들을 찾아보면 이 반군의 앞날도 그리 희망적이진 않았단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리고 인물들 역시 오필리아를 중심으로 대비를 이루는데 비달 대위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무력한 오필리아의 어머니와 반군 협력자이자 비달 대위와 맞선 메르세데스, 아들을 얻을 수 있다면 부인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비달 대위와 오필리아 모녀를 신경 써주며 '아무 의심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당신(비달 대위)뿐'이라는 말을 남기며 죽는 의사는 서로 상반된 위치에 있습니다. 왠지 지하 왕국 이야기와 상관없이 오필리아와 같은 어린아이 옆에 있어줬어야 하는 어른들은 저 사람들이었단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