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권 리뷰
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권 리뷰입니다. 이번의 주역은 당연하게도 '태종' 이방원입니다. 실질적으로 1권에서부터 그의 비중이 남달랐으니 정도전과 함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봐도 될 인물이지요. 태종실록 편을 다루니 당연히 태종의 비중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요. 정치가로서의 그 면모도 면모지만 그 주위의 인물들의 삶도 한번 살펴볼 수 있게 기회가 되지 않았으려나 싶습니다. 3권의 서막은 태조와 태종 사이의 응어리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개국 초만 하더라도 민중들에게 반감을 샀던 이성계는 왕자의 난이 있은 후부터 점차 동정론을 얻기 시작했는데, 전권이나 이번 3권에서 누누이 보였듯이 어떤 영웅적인 업적을 남겼다고 해서 그 보상이 언제나 달콤할 리 없고 어쩌면 단순 자신의 죽음만이 아닌 더한 불행이 찾아올 수 있다는 교훈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함흥차사같은 야사에서 보면 결국 부자지간의 응어리가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만화에서는 결국 이 부자간의 감정이 해소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다수의 각색된 소설에선 결국 화해하는 것으로 그려진다지만 실제로는 이쪽이 더 현실적으로 보여요. 영웅으로 태어났지만 결국 한만 남기고 이성계가 세상을 떠나고 정종이 전권에서 이미 왕위를 물려주었으므로, 왕으로써의 태종이 그려지는데 태종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자 도리어 화살을 맞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부인 원경왕후 민 씨입니다. 왕권강화를 위해 태종은 서서히 공신들을 정리해 나가고, 그 와중에 그를 계속 내조해 온 원경왕후는 자신의 집안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예전에 조선시대 왕비들의 삶을 고찰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조선의 왕비가 되었던 여성들은 대개 순탄치 못한 삶을 산 경우가 많더군요. 태조의 부인 신덕왕후도 그러했고, 태종의 부인인 원경왕후도 그러한데, 그나마 왕자들의 피바람이 신덕왕후 사후에 일어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알려진 것과 달리 원경왕후 민씨의 가족들이 딱히 교만했다거나 위세를 자랑했다거나 하는 일은 없이 오히려 원경왕후의 부친 민제는 굉장히 겸손한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재미나게도 이 정치싸움에선 과거의 사소한 언행이 큰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높은 자리에 있으면 역시 말도 가려서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도 있으려나요.
이번 3권을 통틀어 가장 불행한 인물은 바로 원경왕후 민씨입니다. 어려울 때에는 남편에게 내조하고 그녀의 형제들도 태종을 도왔지만 그녀의 형제들은 숙청의 바람을 피하지 못했으므로 그대로 동생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외척을 견제하려던 태종의 마음이 왕비에게서 떠나면서 여자로서 수모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사랑했던 막내아들마저 요절하고 세자로 봉해진 첫째 아들은 결국 행실 때문에 폐세자가 되었으니까요. 태종이 뛰어난 학식과 탁월한 정치적 능력, 현실주의에 입각한 안목 등이 여과 없이 그려지면서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지만 그 이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비정함은 고개를 젓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비정함이 개국의 혼란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위해서 필요한 거라는 생각을 해도 말이지요.
어떤 의미에서 평범한 게 제일 좋은 거라는 교훈을 얻게 된달까요... 반면 이득에 밝았던 하륜의 경우는 태종의 비호에 의해 천수를 누리면서 살았으니 진짜 사람은 순하게 사는 것보다 모질게 사는 것이 낫다는 건지. 그리고 마지막에 바로 조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충녕대군 즉 세종대왕이 등극하면서 3권의 막을 내립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만화에선 왕자시절부터 충녕대군이 왕자리에 관심이 있던 것처럼 간간히 암시되는데요. 보통 이야기책에선 왕자리에 관심없는 호탕한 성격의 양녕이 의도적으로 세자자리를 물려준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론 그런 거 없다는 느낌입니다. 좀 재미있는 게 세종대왕은 좀 비만 체질로 알려져 있는데 반해 만화책에선 조금 호리호리하게 그려져 있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