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권 리뷰
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권 드디어 세종대왕 편 리뷰입니다. 보통 문종과 세종은 시기가 많이 겹치기 때문에 만화에서도 같이 다루고 있습니다. '황금시대를 열다'라는 부제답게 세종대왕의 대단한 업적들을 제도/문화/발명/훈민정음 창제 등 여러모로 살펴가고 있습니다. 만화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축약 설명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 축약된 묘사만으로도 세종대왕의 능력에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조선의 많은 군주들 중에서 '대왕'이란 호칭이 붙을 수 있는지를 능히 짐작케 하는데요. 종종 하늘이 내린 군주라는 묘사가 만화 내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이 묘사가 납득이 갈 수밖에 없다고 할까요.
능력도 능력이지만 특히 이편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그 특유의 포용성과 부드러운 면모일 것입니다. 아버지 태종과는 다른 방식으로 결코 신하들에게 밀리지 않고 왕권을 강화해나가면서 그렇다고 신권을 무시하지 않고 신하들과 토론과 소통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는데 피바람을 불러들이지 않는 세종대왕의 국정운영방식이야말로 그 인간미가 탁월한 수행능력과 어우러져 옛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태종 시기의 피바람은 혼란기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그 비정함에서 인간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에 따라 나라가 안정된 것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합니다만... 확실히 태종실록 편을 보면 정치는 함부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게 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세종/문종실록 다음권인 단종/세조실록 특히 그중 세조실록을 본다면 오히려 공신들을 끝까지 끌어안고 가는 방식이 더 문제점을 일으키는 게 있어 차라리 비정하단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공신세력을 말끔히 숙청해 버린 세조의 할아버지 태종의 방식이 낫다고 여겨지니 이런 변화도 참으로 읽으면서 묘하달까요. 그렇다고 만화가 무조건적인 찬양 일색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외교적으로 명에게 저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고 - 이건 시대적인 상황이 불리하니 어쩔 수 없다 쳐도-, 우리가 예상하는 태평성대에 꼭 이 시대가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는데 역시 기록은 기록자의 편의대로인 측면이 있어서인지 당장 백성들의 생활이 나아진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세종대왕 당시에 시행된 수령고소금지법이 가져온 폐해도 그렇고 신하들 중에서 문제를 일으킨 이들도 없지 않았고요. 보면 이 시대의 다양한 업적은 좀 더 후대의 평화를 위한 토대를 단단히 갖춘 것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훈민정음만 하더라도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더 유용하기까지 하니... 흔히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을 때 사대부들의 반발이 컸다고 알고 있는데 만화에선 약간의 반발이 있었으나 곧 신하들이 그 실효성을 깨닫긴 깨달았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황금기 내에서도 비극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는 게 보이는데 바로 수양대군의 존재입니다.
세계사에서 비극성이 없는 왕실이 어디 있겠냐 싶긴 하지만요. 그래도 세종대왕은 한많은 인생을 살다 간 어머니를 위해 간접적으로나마 장례와 능문제로 아버지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고, 이건 솔직히 원경왕후에 동정적인 입장에서 좀 통쾌한 면이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또 폐세자가 된 형에게도 너그러웠으며 억울하게 집안이 몰락한 부인 소헌왕후를 지극히 사랑한 데다 전대완 달리 그 아들들도 생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국정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아들들이 모조리 잘난 것도 문제가 되는 걸까요. 어디서 하는 이야기론 세종대왕의 자식복이 없는 이유가 태종의 업보가 미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던데, 조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극의 씨앗이 다음 권에서 두드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