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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권 리뷰

0I사금 2025. 6.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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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권 리뷰입니다. 이번 9권의 바탕은 분명 '인종'과 '명종' 실록이지만 오히려 주인공은 문정왕후입니다. 오죽했으면 책의 부제도 '문정왕후의 시대, 척신의 시대'겠습니까만은... 문정왕후를 다룬 드라마로 유명한 것이 SBS의 드라마 『여인천하』가 있었고, 단편이긴 했지만 인상적인 이야기를 다룬 2008년도 『전설의 고향』 시리즈의 '귀서'가 있었습니다. 드라마 『여인천하』가 문정왕후를 카리스마적인 여걸로 묘사했다면 『전설의 고향』의 '귀서'편에서는 야망을 위해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마 시대가 달라지면서 문정왕후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도 달라진 것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싶은데요.


책의 해설에 따르면 실록에서 문정왕후가 '악녀'나 다를 바 없는 존재로 기록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 당시 유교적 입장에서 여자가 정치에 너무 나선 것이 거슬렸거나 측근들의 부패가 심한 것 등등이 있지만 명종 전에 보위에 올랐던 인종이 성군의 자질이 강한 왕이라는 것 때문에 죽은 왕의 그림자가 강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설명됩니다. 인종 편을 읽게 되면 느끼는 것이지만 좋은 왕의 조건은 능력, 카리스마, 포용력, 결단력 이런 것뿐만이 아니라 적당한 수명도 필요한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문종이 오래 살았다면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고 인종이 오래 살았다면 문정왕후도 야심을 어느 정도 거두고 조력하는 입장이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어디까지나 만약이지만 인종의 죽음에 대해 야사에서는 문정왕후가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실제론 인종이 거식증에 걸렸고 그 때문에 병약해진 탓이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 야사는 당시 문정왕후의 이미지가 세간에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문정왕후가 야심차고 카리스마 있고, 대신들을 제압할 정도로 강단있는 여성이었음은 분명 하나 그 한계도 있었습니다. 일단 불교 숭상 문제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의외로 겹쳐져 있어서 제외시키더라도 자신의 측근들을 너무 의지했기 때문에 측근들의 부패를 막을 수 없었던 게 가장 큰 단점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문정왕후는 그렇다고 민생에 등 돌린 정치가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다만 자신의 지지자들을 지나치게 감싸안을 수밖에 없는 환경, 어쩌면 세조처럼 정통성이 약한 상황에서 같은 편을 끝까지 붙들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설령 이것이 분명 비판의 대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실록에선 지나치게 문정왕후를 깎아내리는 측면이 있다고요. 이는 앞서 열거한 당시 시대적인 상황 탓이기도 하지만, 책에서는 이미 그때 조선시대는 당시 제도적 모순이 서서히 절정에 다다르기 시작한 때였고 이것의 원인을 문정왕후나 명종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명종은 어머니가 죽은 후 나름 자신의 색을 내보려고 하지만, 역시 수명이 따라주지 않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단명하고 맙니다. 


문정왕후가 살아있던 때에는 그 그림자에 눌리고, 후에는 대신들의 목소리에 눌렸고 비로소 자기 주장을 낼 수 있었던 시기에 요절하게 된 꽤 불운한 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후사가 일찍 죽은 탓에 그 왕위는 조카였던 하성군, 훗날의 선조가 물려받게 됩니다. 명종에게 뚜렷한 무언가가 없기 때문인지 이번 명종실록에서는 당시 백성들의 피폐한 삶과 그 환경에서 나타난 임꺽정이라거나, 철학 분야의 획을 그은 이황과 조식등 정치사에서 제외된 개인들의 이야기가 한 파트를 차지합니다. 전 시리즈에 비하면 백성들의 이야기도 이번 실록에서 제법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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