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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2권 리뷰

0I사금 2025. 6. 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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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그토록 각오하던 '인조실록'입니다. 솔직히 '선조실록'도 그렇지만 이번 '인조실록'도 엄청 열받을 것을 각오하면서 봤는데, 왠 걸요? 분명 화나긴 화나는 내용이 상당수이되 인조가 곤란할 상황이 되면 희한하게도 통쾌함이 느껴지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할까요. 인조반정 끝에 왕위에 올라섰지만 광해군을 제거하지 못한 이유는 전권 리뷰에서 언급했듯이 인조반정의 명분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폐모론이니 명과의 의리니 떠들어대도 어쨌거나 광해군은 선조 시절에 세자로 책봉되어 수순대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보니 당연하겠는데, 애초에 초반에 인조반정을 일으킨 인물들을 묘사하는 것만 봐도 뭔가 거창한 그런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름 한몫을 챙기기 위해서 반정을 일으켰다는 게 고대로 드러납니다.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는 쩔쩔매며 피난을 갑니다. 다른 왕족이 난을 일으킨 게 한두 번이 아니고 태종이나 세조는 성공한 인물이기에 아예 인조와 대비되어 자신들은 반정의 최고사령관이지만 인조는 반정의 주역 중 하나일 뿐이라고 비웃는데 참 같은 핏줄이라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 이괄의 난이 앞부분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그야말로 쩔쩔맨다는 게 고대로 드러나 민간에서조차 비웃는 노래가 돌아다녔다고 하네요. 이번 인조실록의 내용은 그야말로 허세와 열폭으로 점철이 되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데 후금(청)에 대한 대비만 해도 그런 것이 명과의 의리를 지키든 말든 일단 후금이 조선을 침략할 여지가 있었다면 그것에 대비하여 현실적으로 방어를 할 대책을 세웠어야 했어요. 


임진왜란 직후라고 했지만 이미 이 시기를 본다면 어느 정도 전화의 피해가 가라앉은 것으로 보이는 데다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민심을 안정시켜 재정을 확보하고 군사를 정비했어야 옳았습니다. 한번 전쟁이 끝나면 전쟁무기는 발달하기 마련인지라 그것을 바탕으로 뭔가를 이룩했을 법도 한데 책에 따르면 당시 인조정권은 그야말로 '생각'만 했다고요. 거기다 이 와중에 인조는 왕권강화한답시고 자기 아버지를 추숭 하느니 마느니로 신하들과 싸우고 있었으니 참으로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대비도 안된 상황에서 전쟁을 도발하는 듯한 문서를 보내는 등의 일을 하는데 그나마 주위에서 현실적인 최명길과 같은 몇몇 인물들이 제동을 걸었기에 망정이지...


그러고 보니 표지를 장식한 인물도 김상헌과 최명길로 인조는 표지장식할 필요가 없다는 걸지도? 후에 사대부들의 존경을 받은 인물은 척화파인 김상헌이고 주화파로 분류되는 최명길은 매도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후대 사람의 입장에선 최명길이 택하자고 한 방식이야말로 현명해 보이더군요. 거기다 최명길이 정말 친청파도 아닌지라 정말 애꿎게 매도당한다는 느낌인데, 후반 인조가 진짜 매국노인 김자점을 아꼈다는 언급이 나와서 어이가 없을 지경. 책의 설명에 의한다면 인조는 제대로 된 반청파도 아니었던 것으로 후금배척도 그저 왕위에 오르기 위한 명분 중에 하나였음이 고대로 드러나는 게 이 진짜 친청파인 김자점을 싸고돌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뭐 다른 이야기로 김자점은 우리나라의 설화 중에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도 있고 후대의 사극에서 비중 있는 악당으로 탄생하는 듯 미묘하게 사랑을 받고 있군요. 인조도 악역으로 많이 나오긴 하지만. 왜 김자점이 인조실록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나 싶더니만 바로 다음 권인 효종실록에 죗값을 치르긴 합니다. 인조 하면 소현세자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그 아버지완 다른 포스를 만화상에서도 보인달까요. 왕자로써의 책임감도 투철하고 현실적인 안목까지 갖춘 데다 미모보정도 주어져서 막장스러운 인조실록을 그나마 훈훈하게 만들어줍니다만 소현세자 이야기에서 인조는 그야말로 선조 복제판 아니, 선조에서 더 꼬여서 선조를 능히 뛰어넘는 열폭덩어리가 되었달까요. 


흔히 청나라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청의 문물을 받아들인 소현세자를 미워했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조는 제대로 된 반청론자도 아니었고, 소현세자에 대한 감정은 그야말로 열폭에 그가 자신을 밀어낼지 모른다는 의심뿐이었던 지라 그것 때문에 친아들과 친손자는 물론 며느리의 일가까지 박살 내는 데, 며느리를 박해한 데에는 후궁인 조씨의 입김이 있었다고도 하니 여자의 말에도 쉽게 흔들리는 인간이었단 건지 계속 실망스러운 면모만 드러난다고 밖에. 다른 책에서 본 거지만 중전이 죽고 나서 새로 들인 중전 장렬왕후는 효종보다 어린 나이에다 중전 시절엔 조씨 세력에 눌리다시피 산 소극적인 여성이었지만 효종이 정말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는 이야기를 본 적 있습니다. 근데 이분은 다음 권 효종/현종실록에서 다른 의미로 문제를 일으킵니다. (* 예송논쟁)


민회빈 강씨 이야기로 돌아가면, 소현세자를 적극 내조하면서 청나라에 붙잡힌 조선인들을 구해 와서 농사를 짓게 하고 무역을 하는 등 진취적인 여성상인지라 현재에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인물이기도 한데 당시 사람들도 그에게 동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조가 강씨를 박해하여 죽인 것에 대해 사관들이 비판하는 글귀를 실었는데,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그가 신원된 것은 숙종 대의 일이고 다음 왕인 효종은 정통성의 문제 때문에 강빈의 일을 언급할 경우 매우 노하며 금기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가분은 소현세자 부부가 죽지 않았더라도 성리학 일변도의 조선에서 광해군처럼 고립되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시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충격은 주었으리란 대목에서 그 안타까움이 느껴지곤 합니다.



본문에 미처 첨부하지 못하고 나중에 생각나서 덧붙이는 건데 '환향녀' 이야기도 이번 권에 나옵니다. 최명길은 피해자인 여성들을 내치는 건 옳지 못하다고 항의했지만 사관을 비롯 당시 사대부들은 오히려 최명길을 욕하더군요. 애초에 호란을 자초하고 백성을 구제 못한 것이 누구 탓인지는 생각도 안 하고. 임진왜란 때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그때는 여성들을 탓하진 않았다고 하는데 한세기도 안 가서 반응이 극으로 바뀌었더군요. 인조만 병든 게 아니라 그냥 당시 사회 전체가 병들어있었던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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