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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권 리뷰

0I사금 2025. 6. 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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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게 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권입니다. 늘 읽어보려고 맘은 먹었지만 도서관에 나타나지 않아 내심 포기하고 있던 책이 드디어 들어온 셈이었는데 기다린 값을 한 모양인지 책도 좀 두꺼운 감이 드는데요. 책에는 버젓이 '고종실록'이라고 표지에 적혀있긴 합니다만 책은 거의 흥선대원군의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종의 이미지가 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부인인 명성황후 사이에 끼어 있는 것 같은 이미지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국정의 대부분은 아버지가 도맡아 했기 때문인데 책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조선의 권력중심은 왕이어야 하고 그것의 균형을 잡지 못한 흥선대원군의 실각은 필연적이었다고 하나 고종 초반의 개혁정책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것도 흥선대원군이었고 이것으로 민생이 많이 안정된 것도 사실입니다. 책에서 이 개혁의 성공이 영정조대에도 가능하지 않았던 거라고 설명이 되더군요. 다만 교과서에서도 많이 나오고 일반적인 인식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개혁정책들이 유교적 테두리 안에서 행해진 것이라 당대의 급변하는 시대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도 어김없이 지적됩니다.

 

작가 후기에 본다면 딱히 새로운 해석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고 스스로 말씀하셨지만, 의외로 몰랐던 사실들이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수렴청정을 했던 신정왕후 조씨(효명세자빈)는 주위에 휘둘린 것이 아니라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파트너로서 그 역할을 잘 수행했던 여성인데 반해 남성위주의 사관들에 의해 폄하되었다는 것. 또한 흥선대원군이 과거에 초라하게 살았다거나 파락호처럼 굴었던 것은 정말 가난해서가 아니라 세도정치 시기 자신의 야심을 감추기 위해서라거나, 그가 실각한 직접적인 원인이 서원철폐에 따른 사대부의 반발과 경복궁을 중건으로 당백전을 무리하게 발행한 것 때문에 민심을 잃어서가 아닌 당시 개화를 앞둬야만 했던 조선의 복잡한 시대상황과 고종이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던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됩니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로 부인과 손을 잡은 것도 있고요. 하지만 보통 역사 속에서 아버지만 한 아들이 없는 것처럼 대원군 실각 이후 고종의 행적이 유달리 두드러진다거나 뭔가 업적이 있다든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번 고종실록 편에서 인용되는 야사에서 보면 대원군 실각 후 사람들은 오히려 대원군 시절을 살기 좋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고요. 고종 스스로도 개혁정책에 신경을 썼고, 유자들의 반발도 있었으나 개화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인식은 어느 정도 퍼진 편이었습니다. 책 후반부에 갑신정변에 대해서도 언급되지만 결과적으로 고종대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민심을 아우르고 그들과 함께 가기보단 오히려 외세에 의존하는 편이었고 거기다가 개혁을 이끌어야 할 수뇌부도 굉장히 무능했다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거기다 중간중간 자주 언급되는 당시 조선 지배층의 전형적인 정신승리법은 뭐랄까 전형적인 엘리트의 한계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당시 국제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도 보이고 무엇보다 개혁을 내세우면서도 그것에 동참할 필요가 있는 대다수 민중은 배제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이번 고종실록편 마지막은 예상대로 다시 피 조선의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으로 마무리됩니다. 작가후기에 따르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순종실록인데, 이 비극적인 끝부분을 어떻게 마무리지으실지 상당히 기대됩니다. 

 

 

참고로 책을 보다가 재밌는 걸 발견했는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천주교 탄압에 대해선 계속 언급됩니다. 중간에 탄압 와중에 애꿎은 피해자가 속출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얼굴에 십자가가 있다고 천주교도로 오인받아 목이 잘리는 인물은 일본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의 스카 패러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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