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민음사판)』 리뷰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도서관에 많이 있는 편인데요. 이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같은 경우 이미 다른 번역서로 읽은 적이 있던 지라 다시 읽으려니 재미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민음사 전집에 작가에 대해 책의 뒷부분에 자세한 사정을 실어주기 때문에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이 민음사 전집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에 실린 포의 소설은 총 14편입니다. 여기 단편집에는 제가 특히나 좋아하는 단편들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일단 첫 번째 소설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는 예전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에서 「병 속에서 발견된 수기」란 제목으로 접한 바 있던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배를 타고 여행을 하다 배가 난파당하고 우연히 나타난 일종의 유령선 같은 배에 뛰어올라 살아남는데 그 배가 가진 기묘함과 물의 흐름에 이끌려 어딘가로 추락하는 공포를 드러내는 소설이에요.
포의 소설들을 최근 다시 읽으면서 느낀 거지만 뱃여행이라던가 바다와 관련된 공포심이 드러나는 것이 있던데 장편소설인 『아서 고든 핌의 모험』도 그렇고 이 책에 실린 다른 소설 여섯 번째로 나오는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도 그렇습니다. 이 소설은 예전 금성출판사 청소년문고본에 실린 버전으로 읽은 적 있는데 두 형제 어부가 소용돌이에 휘말려 동생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소용돌이에 휘말린 그 하루 동안 지독한 공포로 인해 머리가 백발이 되고 얼굴도 늙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두번째 단편인 「리지아」 같은 경우 죽은 이에 대한 광적인 그리움이 불러낸 환상이다 정도로 해석했었는데 읽다 보면 묘한 것이 화자의 죽은 아내 리지아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성이라던가 가족이나 고향 같은 것-를 화자가 전혀 몰랐다는 데 있어서 혹시 산 사람이 아니라 남자가 망상 속에서 그려낸 이상적인 여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것이 진실일지는 작가만이 알겠지요. 세 번째 단편인 「어셔가의 몰락」은 어떤 식으로 읽어도 그 음울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탓에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다른 번역본과 차이가 있다면 여기서 여동생이름이 '매들라인'으로 번역된 정도? 다른 책에선 보통 매들렌 혹은 마들렌 정도로 나와서요.
네번째 단편인 「윌리엄 윌슨」은 그 소재나 내용에 있어서 매우 독특한 이야기임에도 금성출판사 전집 정도를 빼면 다른 번역본들에서 보지 못했다는 것이 기이한 소설입니다. 일종의 도플갱어가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어쩌면 포의 다른 소설들이 정신분열적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여기의 주인공이 마주치는 자신의 선한 면을 타고났다는 도플갱어가 실존인물이 아닌 내면 속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섯 번째 단편인 「군중 속의 사람」은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에서 처음 접하고 유일하게 저를 애먹였던 소설이라지요.
여섯번째 단편인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은 앞서 이야기했고, 일곱 번째 「타원형 초상화」는 짧은 내용이지만 정말 좋아하는 포의 소설입니다. 화자가 부상으로 우연히 어떤 저택에 머물게 되고 그 저택에서 눈길을 끄는 여성의 초상화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설명을 담아주는 책자를 통해 그림에 대한 진실을 파악하는데 그림 속의 여성은 남편이 지나치게 미술에 열중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합니다. 남편이 그림에 열중하는 동안 모델이 되었던 아내는 점점 쇠약해져서 죽어가고 그 그림이 여성의 생명력을 뽑아 완성된 것처럼 그림이 다 그려졌을 때 화가의 아내는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여덟번째 소설 「붉은 죽음의 가면극」은 그 분위기나 소재로 볼 때 가장 환상적이면서 무서운 느낌이 나는 포의 단편입니다. 역시 빠지지 않고 실려있어서 좋았어요. 아홉 번째 소설 「구덩이와 추」는 다른 번역본에선 「구덩이와 시계추」 혹은 「함정과 진자」라고 번역된 소설입니다. 열 번째 단편 「배반의 심장」은 「고자질하는 심장」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소설이고요. 열한 번째 단편 「검은 고양이」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유명한 소설입니다. 열두 번째 「도둑맞은 편지」 역시 대표적인 포의 소설이지요.
열세번째 「아몬티야도 술통」과 마지막 「깡충 개구리, 혹은 사슬에 묶인 여덟 마리의 오랑우탄」 역시 접한 바 있던 소설인데 책의 역자 후기에 따르면 이 두 소설은 '복수'라는 테마를 다루는 공통점이 있지만 「아몬티야도 술통」이 복수의 이유가 모호한데 반해, 「깡충 개구리, 혹은 사슬에 묶인 여덟 마리의 오랑우탄」 같은 경우는 복수의 정당성도 노리고 있어 생전 포가 남부출신 지식인으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은 생전에 언급하지 않았으나 노예제도에 어떤 입장이었느냐를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소설이라고도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다시 읽고 리뷰를 또 쓰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다음에도 다른 번역본으로 나온다면 또 읽게 되겠지요. 역자분의 글에 따르면 포의 문체는 현대어로 번역하기 쉽지 않다고 하시던데 그때문인지 같은 내용이지만 접할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것도 같습니다. 이런 것이 또 흥미로운 데다 번역본마다 제가 모르는 포의 소설들이 실려있는 경우도 있어서 새로운 책이 나온다면 또 빌려오게 될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