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武士)』 리뷰

『무사(武士)』는 예전에 유플러스 모바일 TV(구 LTE 비디오 포털)에 들어갔더니 무료 업데이트된 영화 목록 중에서 발견하여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2001년도에 개봉한 영화니까 상당히 오래전 영화인데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본 것은 아니었지만 두 어번 본 기억은 있는 영화이기도 했고요. 기억이 매우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명절 특선으로 TV에서 해 준 것을 본 것이 아니었나 싶은데 나중에는 가까운 이(언니)가 역사 소재 영화를 보고 역사적인 사건과 연관 지어 쓰는 과제물을 내기 위해 이 영화를 선택했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 더 영화를 보게 되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꽤 오래전에 본 영화지만 내용을 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가 당시 언니가 쓰던 과제물의 오타나 어색한 문장을 잡는 걸 돕기 위해 쓴 글을 읽느라 영화 줄거리를 더 새길 수 있었고, 당시 영화 관련 프로그램에서 이상할 정도로 영화를 혹평하는 영상을 보았는데 정작 영화를 제대로 봤을 땐 그 혹평이 영화 본편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더 내용을 기억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2001년도 작품이라 화질은 지금 영화들보다 떨어지지만 몰입도나 재미는 현재 영화들 못지않았던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중간중간 잔인한 장면들은 편집된 것 같은 느낌이 든 부분이...?
게다가 고려 무사들이 원나라 병사들을 전멸시키긴 하지만 고려 무사들 중에서 살아남은 이도 (배우 안성기가 분한) 진립이라는 인물 한 명이며, 그 혼자 바다를 건너 고려로 귀환하려는 열린 결말이되, 그 끝이 반드시 희망적이라 판단할 수 없는 묘한 결말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여운이 남기도 했고요. 진립이 혼자 살아남아 고향으로 귀환하는 여정에 대해서는 언니가 당시 과제물에서 썼던 해석이 상당히 인상 깊게 남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맨 아래에... 그리고 제가 본 영화 혹평에 대한 반박도 같이 감상에 넣을 생각입니다. 물론 이 혹평에 관해서도 어린 시절 기억이라 좀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요. 영화의 줄거리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명 교체기 (우리나라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던 시기)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장군 최정(주진모 분)이 이끄는 사신단은 명나라의 오해를 사 사막에 버려지고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사막을 횡단하게 됩니다. 사신단의 부사였던 이지헌(송재호 분)은 횡단 중반 사망하면서 자신을 호위하던 노비 여솔(정우성 분)을 양인으로 해방시켜 줍니다. 하지만 여솔은 노비라는 신분 탓인지 사신단에게 일원으로 인정을 못 받는 분위기. 사막 횡단 도중 색목인 상인들을 만나 식량과 물을 구한 사신단 일행은 명나라 공주(장쯔이 분)를 납치한 원나라 군사들과 마주치게 되고 장군 최정은 명나라에게 자신들이 간첩이라는 오해를 풀고 외교적으로 공을 세우기 위해 공주를 구한 뒤 남경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한편 여솔은 주인이 자신에게 남겨준 패물을 색목인들의 창과 바꾸고, 주인의 시신을 모욕하던 색목인들과 싸우면서 원나라 장군인 탐불화의 눈에 띄게 됩니다. 탐불화는 여솔이 대단한 무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를 자기 휘하로 만들기 위해 그를 제압, 같이 원나라로 끌고 가려하는 도중 공주를 구출하려는 고려 사신단이 원나라 군사들을 습격하면서 같이 해방됩니다. 그리고 고려 사신단은 남경을 향해 거친 여정을 시작하게 되고요. 탐불화는 자신이 모시던 장군 쿠쿠테무르의 여동생을 명나라가 납치한 것에 대한 보복 때문에 명나라 공주를 끌고 오라는 명령을 받고 명나라 공주와 함께 도망친 고려 사신단을 쫓게 됩니다. 그 와중에 고려 사신단은 원나라 병사들에게 습격당한 한족 난민들과 합류하게 되고, 명나라 군사가 남긴 토성에서 원나라 군사들과 결전을 치르게 됩니다.

어릴 적에 제가 본 영상에서 이 영화를 꽤 비판했었는데 기억나는 비판 이유가 뭐였냐면, 그 영상에선 마치 장군 최정이 명나라 공주한테 반해 그를 독단적으로 구하겠단 식으로 묘사를 했고 고려 사신단 일행이 한족 난민들을 끌고 다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본편을 보면 알겠지만 장군인 최정이 명나라 공주를 구한 이유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온 자신들이 오해를 사서 사막에 버려졌기 때문에 어떻게든 오해를 풀고 귀국하려면 명나라 공주를 구하는 공 정도를 세워야 한다 판단을 했을 뿐이며 심지어 최정과 공주 사이에는 러브라인이란 게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는 점이에요. 최정의 판단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망정, 명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진 이상 일행 중 지휘자였던 최정은 무모하긴 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인 판단을 내려야 했던 것뿐이었고요.
오히려 이성적인 호감은 노비인 여솔이 원나라 군사들에게 탈출할 때 명나라 공주를 덩달아 구해주면서 여지가 생기는데 다만 이 러브라인도 뚜렷한 것이 아닌 어느 정도 호감이 있다 정도로 암시될 뿐이며, 명나라 공주의 초반 제멋대로 오만한 행동이 여솔의 심기를 거스르는 등 갈등 요소도 많아 보였단 사실. 게다가 여솔을 형처럼 따르는 일원인 단생이 산모와 아이를 씻길 물을 구하려 밖으로 나갔다가 원나라 군사들에게 살해당했을 때 차라리 공주의 목을 내걸어 원나라 군사들에게 보여주자는 격한 반응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후반부에는 명나라 공주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고려 무사들만이 아닌 한족 난민들에게까지 엄청난 폐를 끼치면서 점차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고, 여솔에 대한 태도도 부드러워지는 등 둘 사이에 뭔가가 있긴 있을까 생각도 들긴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 뭔가를 말해준다고 생각되지는 않더라고요. 여솔이 극 중 내내 공주를 보호한 이유는 딱히 이성적인 호감보다는 양인으로 해방된 뒤에도 죽은 주인의 시신을 지켰을 정도로 의리가 깊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공주 때문에 야기된 상황에 분노를 하기는 했지만 일단 자기가 보호해야 할 대상을 내치지는 않은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그의 그런 면모는 후에 원나라 장수 탐불화가 그를 납치한 뒤 자신과 함께 원나라로 가자고 회유했을 때 그것을 거부하고 다른 일행들을 구하기 위해 토성으로 향한 점을 보면 이해할 수 있기도 했고요.
또한 공주를 구한 고려 사신단 일행이 한족 난민을 이끌게 된 것은 그들의 판단이 아니라 사신단 일행이 가야 하는 방향과 한족 난민들의 피난 방향이 우연히 겹친 셈이며 난민들이 명나라 백성이라는 것을 안 공주가 그들을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을 했기 때문에 어쩌다 합류가 된 것이지 이유 없이 그들을 끌고 다닌 것은 아니었단 점이죠. 고려 사신단 일행은 난민들과 방향이 겹치게 되자 원나라 군사들에게 들킬 수 있다고 오히려 그들을 쫓아내려 했지만 후반부에는 그들을 통해 고향에 있는 가족을 떠올리기도 하는 등 인간적인 감정을 느껴 그들을 지키게 되는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는 편이며 극적인 상황에서 인간적인 호감을 느낀 인간들을 지키는 이야기는 딱히 새로울 것은 없어도 납득 가는 묘사가 나온 이상 이상할 것도 없었던 사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 혹은 관계는 원나라의 장수 탐불화와 주인공 여솔의 관계일 것입니다. 탐불화는 초중반까지 같은 고려인들에게조차 노비라는 이유로 같은 일원 취급도 받지 못한 여솔의 자질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한 인물입니다. 여솔이 양인이 된 이후에도 그를 노비 취급했던 최정은 영화 후반부에 다다라서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여솔을 일원으로 인정한 것과 달리 탐불화는 여솔을 높이 보며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집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탐불화는 극상에서 주인공들과 적대적인 입장이기에 빌런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악당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고요.
탐불화의 여솔에 대한 호의는 단순 재능 있는 자를 높이 본다는 수준이 아닌 인간적으로 여솔에게 애정을 느낀 것 마냥 절절한 느낌까지 주기까지 하는데요. (물론 여솔의 철벽으로 인해 이뤄지진 않지만.) 재미있게도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탐불화가 토성 안에서 명나라 공주를 발견한 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공주라고 분노하며 공격했을 때 여솔이 공주를 보호하면서 탐불화가 던진 창에 맞고, 탐불화가 그에 충격을 먹은 사이 최정이 칼을 날려 탐불화를 찌르고 자신 역시 탐불화가 던진 칼에 맞아 죽는 등 주요 인물 셋의 죽음이 서로 긴밀하게 엮여서 연출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경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처절한 싸움을 치르고 고려 무사들은 진립(안성기 분) 한 사람만을 남기고 전멸, 원나라 병사들도 전멸 그나마 한족 난민들과 공주는 살아남게 됩니다. 진립은 다른 고려 무사들과 다르게 여솔을 처음부터 인간적으로 대우해 준 인물이며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하는 인물이기에 작중에서 동료들에게 존경을 받고 보는 관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영화 마지막에 한족 난민들은 자신들을 구해준 고려 무사 진립을 위해 그가 고향으로 떠날 수 있는 나룻배를 만들어주는데, 공주는 떠나기 전 그에게 '그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긴 어렵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진립은 그런 걱정을 뒤로 한채 난민들의 이별 인사를 받으며 동료들의 유품을 가지고 배에 몸을 띄우게 되는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자, 가장 여운을 깊게 남기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언니의) 학교 과제물을 작성하는 걸 도우면서 이 영화의 내용을 실제 역사 속 사건, 원나라가 멸망하고 명나라가 건국된 상황과 더불어 당시 한반도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던 시기라는 점과 엮어 비유적인 결론을 내린 걸 봤는데요. 재미있게도 그 해석이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원나라 장수 탐불화의 입으로도 여러 번 원나라는 이제 끝이라는 것이 언급된다는 점이며 원나라 군사들이 난민 일부와 공주, 그리고 고려 무사 몇 명이 갇힌 토성을 함락시키지도 못하고 무너진 것은 원나라의 역사가 결국 거기까지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보여졌습니다. 또한 고려 무사들이 한 명만을 남기고 쓰러진 것 또한 고려 역시 멸망을 피할 수 없었음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고요.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이 한족 난민들과 명나라 공주였다는 사실은 당시 시대가 원나라가 아닌 명나라를 선택했다는 것을 영화 속에서 암시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비록 고려 무사들 중 진립 하나만은 살아남았고 그가 고향으로 떠나게 되었지만 그가 앞으로 도달할 고향은 더 이상 '고려'가 아닌 '조선'이었으리란 (언니의) 추측은 그럴 싸 했는데 만약 진립이 거친 바다를 건너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고려의 멸망을 함축하는 비극이긴 하겠지만 만에 하나 그가 고향땅에 도착하게 된다면, 그곳이 더 이상 '고려'가 아닌 '조선'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끝이 아니라 조선은 결국 고려의 땅에서 태어난 나라라는 점에서 진립의 생존은 비극적인 당시의 상황에서 약간의 희망은 남기는 존재라고 해석을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