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리뷰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유플러스 모바일 TV에서 다른 영화들을 감상하다가 우연히 목록을 통해 제목을 확인하고 접하게 된 영화였습니다. 『케빈에 대하여』같은 경우는 다름 아니라 영화의 주연 배우 '틸다 스윈튼'한테 흥미가 생긴 부분도 있었는데, 아마 영화를 접했을 당시 다른 영화 『설국열차』나 『나니아 연대기』 보고 난 다음 인상이 깊어서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었고요. 틸다 스윈튼의 필모를 찾아보다가 그가 나온 유명한 영화 중에 이 영화 『케빈에 대하여』가 자주 언급되길래 기억을 하고 있었고 텍스트로 짤막하게 요약한 영화 줄거리를 본 적도 있었는데 내용이 꽤 우울해 보이는 데다 영화의 상영시간도 111분이나 되니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끝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에바 캐처도리언(틸다 스윈튼 분)이 젊었을 적 스페인 토마토 축제에서 한껏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곧이어 그를 악마라느니 살인자라느니 질타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분위기가 전환되더군요. 영화는 액자 형식으로 에바의 현재 처한 상황과 과거의 일을 교차하면서 보여주는데 붉은 페인트가 뿌려지는 테러를 당하거나 직장을 구하려다 마주친 사람에게 뺨을 맞기도 하고 그의 겉모습도 젊었을 적 깔끔하고 즐거워 보이던 모습과는 달리 어딘가 초췌한 모습으로 비치는 등 과거와 현실을 굉장히 대비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줄거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아들이 저지른 대량 살상 사건 때문에 에바가 그 피해자들로부터 보복을 당한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요.
이런 걸 보면 그런 사건이 벌어졌을 경우 피해자들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영화상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별개로 연좌제(실제 존재하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적인 부분)의 문제점이랄지 그런 게 눈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에바의 아들 케빈이 저지른 짓은 과거와 현실을 지속적으로 교차하다가 영화 후반에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줄거리를 모르고 봤더라면 대강 짐작은 가면서도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앞부분에서부터 이런 케빈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보여줬더라면 케빈이 왜 그랬는지는 생각할 여지없이 그냥 사이코패스라던가 그런 아들을 둔 어머니의 고통이라든가로 내용을 이해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물론 영화에 그런 내용도 있긴 합니다만) 영화의 배치가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영화의 내용을 유심히 보자면 케빈이 마냥 범죄자 같은 놈이라서 그랬느냐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엔 그렇고 케빈과 에바 사이에 짙은 갈등이 너무 원인이 된 지라 오히려 이 둘을 보면서 다른 데서 본 글이긴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맞는 사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사이가 있다거나 하는 내용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애초에 에바와 케빈이 삼신할머니 실수인지 준비된 상황에서 만나게 된 인연도 아니라 에바 역시 어머니로써 지독하게 서투른 점도 있었단 것을 부정할 수도 없고요. 그런데 이 모자가 그토록 부딪히게 된 원인에는 이 두 모자가 지독하게 서로를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일단 배우들의 이미지를 비슷하게 캐스팅한 것도 있겠지만은) 그 성격이나 성향에서부터 이 모자는 모자 사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았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비슷한 사람끼리 있으면 죽이 잘 맞거나 아니면 잘 싸운다는 흔한 이야기들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에바와는 많이 달랐던 남편이나 딸인 실리아가 실제로 에바와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딸인 실리아를 에바가 많이 챙겼다는 점을 보면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약간 의도가 엿보인 점도 있었지만 아들인 케빈이 엄마인 에바와는 달리 아버지에겐 특별히 적대감을 품지 않았단 점도 그렇고요. 그렇다면 만약 비슷한 기질을 가진 두 사람이 모자 지간이 아닌 상황에서 만났더라면? 그랬다면 어쩌면 결과가 상당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영화의 제목은 『케빈에 대하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상에서 비치는 케빈의 모습은 어머니인 에바의 시점에서지 케빈이 어떤 심정을 품었는지는 보는 이들의 추측이나 상상에 맡기고 있는데 묘하게도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나오는 노래의 가사, 애정을 갈구하거나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그 노래들이 역으로 케빈의 그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에바 역시 나중에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그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미 그때는 상당히 늦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는데 차라리 이렇게 시기를 놓친 이해보다는 애초에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라 접점을 만들 수 없다면 아주 갈라져 버리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그러지 못하는 것은 일반 남녀 사이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정말 소통도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면 어설프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이라도 서로 삶에 터치를 하지 않았던 게 게 둘 사이에 앙금은 남아도 파국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에바의 어설픈 시도가 암만 생각해도 케빈의 막판 행동을 부추기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묘하게도 주인공인 에바를 이해해 주었던 사람들은 에바의 남편도 딸도, 아들도 아닌 오히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로 케빈이 저지른 일 때문에 하반신 마비가 되었지만 회복할 수 있다고 오히려 에바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 케빈의 동급생이나 법률 사무소 같은 곳(나중에 케빈이 열여덟 살이 되어서 성인 교도소로 옮겨진단 언급을 보면 아무래도 그 같은 장소인 듯) 우연히 만난 에바와 비슷한 사정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 여겨지는 여성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후반 케빈이 저지른 일 정도를 제외한다면 뭔가 특정한 큰 사건은 터지지 않고 오히려 에바가 과거와 현실에서 겪는 일상이 주된 내용이긴 하나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것 마냥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긴장감이 돌아서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케빈이 뭔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서가 아니라 한번 파국이 스쳐간 사람한테는 일상적인 상황도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어찌 보면 에바의 심리 상태가 외상 후 스트레스와 유사한 것은 아닐까 했는데 아들이 학교에서 저지른 짓을 목격한 데다가 막판에 남편과 딸의 시체를 발견한 것도 있으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더 이상할 일이었을 듯. 또 영화를 보면서 눈에 띄는 점이라면 묘하게도 붉은 색깔이 두드러진다는 점이었는데요. 초반에 등장한 토마토 축제라던가 붉은 페인트, 잼 등이 많이 등장하며 때로는 피 같은 연출이 나오기도 하는 등 앞으로 터질 사건을 예고하듯 불길하게 인상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