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북』 리뷰
책을 읽기 전에 디즈니 실사 영화 『정글북』을 보게 되었는데, 이게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해준 만화와 꽤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원작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졌는데 도서관에 가 보니 공교롭게도 신간 서적 중에 『정글북』이 들어 있더군요. 예쁜 삽화가 많이 들어간 데다 양장본인지라 왠지 소장 욕구도 들 정도로 디자인이 좋았습니다. 책 속에 들어있는 삽화는 대강 다음과 같은 이미지에요.
소설은 하나로 쭉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편의 단편이 같은 세계관으로 엮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문
모글리의 형제들
카아의 사냥
“호랑이다! 호랑이!”
하얀 물개
리키-티키-타비
코끼리들의 투마이
여왕 폐하의 신하들
이 중에서 우리가 아는 모글리의 이야기는 서문 포함 총 4편에 해당하는 단편에 등장하며 나머지 단편들은 각기 다른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이야기입니다. 나머지 단편들은 하얀 물개가 인간들의 사냥을 피해 사람이 닿지 않는 섬으로 종족을 피신시키는 이야기나 몽구스가 정원을 지키기 위해 코브라와 혈투를 벌이는 이야기, 아무도 보지 못한 코끼리들의 춤을 목격하는 인도 소년 이야기, 열병식에 참가하는 동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 등 우리가 흔히 아는 모글리의 모험과는 관련 없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TV에서 본 애니메이션 『정글북』의 원제가 어째서 『정글북 소년 모글리』인지 이해가 되는 부분. 기본적인 설정이나 세계관은 비슷하지만 실사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세부적인 면에서 상당히 각색이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어린 시절 본 KBS에서 방영한 『정글북 소년 모글리』는 야생에서 살아온 모글리의 정체성 문제와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심도 있게 다뤘다면, 디즈니 실사영화 『정글북』은 호랑이 시어칸과 모글리의 갈등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들의 설정도 약간 다른 부분이 있는데 디즈니 실사영화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비단뱀 카아는 원작에선 원숭이들에게 납치된 모글리를 구하기 위해 곰 발루와 흑표 바기라를 돕는 선한 역할로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시어칸은 디즈니 실사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선 마치 정글을 자기 뜻대로 주무르려는 독재자와 같은 이미지였고 디즈니 실사영화에서 인간에 의해 한쪽 눈을 잃었기 때문에 인간인 모글리를 증오한다면, 원작의 시어칸은 날 때부터 절름발이에 사냥을 쉽게 하려고 정글의 규칙을 어겨 인간이나 인간이 키우는 가축을 사냥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두려움과 멸시의 대상이 동시에 되는 느낌입니다. 독재자보단 비주류 아웃사이더에 가깝달까.
시어칸이 모글리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자신이 놓친 사냥감이라는 점 때문이며 그 죽음도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달리 인간 마을에 정착한 모글리가 목동이 되어 물소 떼를 이용해 밟혀죽게 만드는 등 차이가 있습니다. 모글리의 스승이 되는 바기라에는 좀 더 상세한 설정이 존재하는데 바기라는 원래 인간들 손에서 자란 흑표범으로 자신이 인간의 노예가 아니란 것을 자각하고 탈출을 했다고 하며, 부모를 시어칸에 잃고 늑대 무리로 들어온 모글리를 지켜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어느 정도 자란 모글리의 스승이 되어주는데 모글리가 후에 인간 마을에 정착하고 난 다음에는 큰 비중이 없어집니다.
모글리가 인간 마을에 정착하게 된 사정도 애니메이션과 다른데 (실사영화는 아예 이 부분이 등장하지 않았고) 원작에서는 모글리를 받아들여준 늑대 수장 아켈라가 늙어서 힘을 잃게 되자, 시어칸의 이간질에 넘어간 젊은 늑대들이 배척을 하게 되면서 모글리 스스로가 늑대 무리를 나와 인간 마을을 찾아가는데 그 인간 마을에서조차 모글리가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받습니다. 배척받는 이유가 말이 어눌하다거나 차별의식이 없어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사람이나 동물을 도와준다거나 하는 이유인데 유일하게 모글리를 챙겨준 인물은 시어칸에게 아들을 잃은 여인 메수아 뿐이고요.
모글리가 인간 마을에서 쫓겨난 이유도 시어칸의 가죽을 뺏으려다 실패한 사냥꾼 볼데오가 모글리를 마법을 부리는 자라고 선동한 탓으로 결국 모글리는 정글로 돌아가 늑대 형제들과 사냥을 하며 지내다가 어른이 되었을 때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짤막한 후일담이 나옵니다. 어른이 된 모글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으므로 어떻게 정글에서 지내고 어떤 인간과 결혼을 하는지는 결혼을 하고 난 다음 행복하게 살았는지 어땠는지는 분명 다른 단편이 있겠지만 여기 소설 속에선 설명이 되지 않으므로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