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 : 오토기조시』 리뷰
일본 근대소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바는 없지만 일문과를 다닌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혹은 우연히 본 일본 영화 자료 같은 데서도 한 번은 언급되었던 이름이라 그 이름은 들어본 기억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흥미가 생겨 딱히 책을 찾아본 것은 아닌데 이번에 도서관에서 다른 책들을 좀 두꺼운 것들로만 빌리다 보니 좀 가볍게 읽을 책은 없을까 찾아보다가 발견한 책이에요. 거기다 동화책이라고 하니 왠지 빨리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빌려왔는데 웬걸 읽어보니 창작 동화는 아니고 원래 일본에서 전해오는 전래동화를 베이스로 한 데 다가 거기에 나름 작가의 재해석이나 창작이 들어간 것도 있어 그것대로 흥미로운 내용이 전개되더군요. 책에 실려있는 동화 중 동화라 할 만한 것은 앞의 네 이야기 '혹부리 영감'과 '우라시마 이야기', '카치카치산'과 '혀 잘린 참새'이며 나머지 두 편은 작가의 미리 밝히길 중국의 기담 소설 『요재지이』와 유사한 풍의 소설이라고 쓰여 있는데 확실히 읽다 보면 소재가 그 소설과 유사한 구석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일본의 전래동화는 한국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지만 암암리에 영향을 주고받은 건지 비슷한 이야기도 있는데 예를 들면 첫 번째 이야기인 혹부리 영감은 그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것과 많이 비슷합니다. 우라시마 이야기는 아예 같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전래동화 중에서 나무하러 갔다가 신선세계를 구경하고 돌아왔더니 이미 시간은 백 년 정도 흘러서 가족도 사라지고 집도 사라졌더라 하는 이야기와 비슷하고요. 혀 잘린 참새 이야기는 우리나라 식으로 따지면 흥부와 놀부하고 비슷한데 여기서 복을 받는 인물은 할아버지 벌받는 인물은 할머니라는 차이가 있고 카치카치산과 같은 동화는 할머니를 해친 너구리가 영리한 토끼에 보복당하는 내용으로 좀 오래전에 한국에 번역된 일본 동화책을 본 적 있어서 내용을 알고는 있지만 우리나라하곤 많이 다른 분위기라고 할지 작가도 지적하기를 원문에서 너구리가 자신을 잡은 할머니를 탕으로 끓이는 잔인한 장면이 있어서 최근 나오는 동화책은 할퀴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로 바꿀 정도로 좀 섬뜩한 내용입니다.
네 편의 동화는 작가가 살던 시대가 시대인지라 방공호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시작되는데 어린아이한테 들려주는 것치고는 풍자성이 상당히 강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일본의 혹부리 영감은 우리나라 이야기와는 달리 두 번째 영감님은 딱히 잘못한 것 같지 않은데 춤을 잘 못 춰서 도깨비들의 흥을 깨는 바람에 그냥 애꿎게 혹을 더 붙이고 오는 이야기인지라 상당히 동정적인 시선으로 그려집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혹부리 영감 이야기도 두 번째 영감님은 그냥 혹을 떼고 싶어서 간 것뿐인데 앞의 영감님의 속임수가 들통 나는 바람에 도깨비들이 애꿎은 할아버지한테 화풀이를 한 셈이었거든요. 결국 이 이야기의 결론은 남이 쓴 속임수를 함부로 따라 쓰지 말라는 이야기일까요? 반면 우라시마 이야기는 풍류 타령이나 하면서 실은 속물적인 서생을 비판 대상으로 삼는 것 같으면서도 원래의 호호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결말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구원을 얻었다는 식으로 묘하게 해피엔딩으로 전환해주고 있습니다.
제일 재미있던 이야기는 카치카치산의 토끼와 너구리의 이야기인데 작가는 할머니를 탕으로 만든 것 때문에 응징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일단 제쳐두고 이 토끼를 발랄하고 젊은 미소녀로 너구리는 주책없이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자에게 분수 모르고 들이대는 눈치 없는 개저씨 남자로 설정하여 토끼의 교활한 복수가 남자답지 못하다거나 무사도에 어긋난다는 비난을 피하면서 바보 같은 너구리의 어리석은 행각을 비판합니다. 보면 제대로 꾸미지도 않고 지저분한 짓을 하면서 자기를 싫어하는 여자에게 억지로 들이대고 연서복 심지어 그 여자가 결혼할 맘이 없는데 벌써 결혼할 거라고 장담하며 손재주가 좋으니 일은 여자한테 시키고 자신은 편하게 지내겠다는 뻔뻔한 계획을 세우는 등 너구리는 그야말로 현실에 있으면 여자들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로 설정하여 지나치게 눈치가 없고 멍청한 행동을 되풀이하여 주변 사람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까요. 동시에 현실 남녀에게 토끼와 너구리가 있다는 결론과 함께. 반면 혀 잘린 참새는 죽은 할머니가 좀 불쌍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요재지이』 풍을 따른 다음 이야기에선 이런 할머니와 비슷한 아내를 둔 남자가 결국 허상의 세계를 헤매다가 현실로 돌아와 아내와 해로한다는 내용으로 가더군요.
『요재지이』 풍의 첫 번째 이야기는 국화의 정령인 남매와 만나 자신의 허세를 깨닫는 남자의 이야기로 그 소재가 확실히 중국 소설 『요재지이』에서 많이 보던 형식이지만 두 번째 이야기는 앞의 이야기보다 더 메시지가 강한 편이라 인상이 깊게 남았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능력도 변변찮고 현실도 싫은 인간이 차라리 까마귀가 되고 싶단 생각으로 까마귀가 되어 암까마귀 정령인 지쿠세이와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실은 자신은 못났다는 이유로 싫어한 아내에 대한 애정이 있고 현실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까마귀 정령인 지쿠세이로부터 신은 인간을 버리고 금수의 행복을 택하는 인간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인간은 힘들더라도 자신이 속한 곳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견디어야 한다는 충고를 듣고 현실로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후반에 미워했던 아내의 얼굴이 곱게 변한 것은 소설적인 설정이지만 실은 두 부부 사이에 응어리가 사라지자 그 얼굴이 사랑스러워 보이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맘에 든 것은 보통의 설화라면 꼭 마지막에 장원급제니 하는 작위적인 설명을 붙이는데 반해 이 소설에선 남자는 헛된 욕망을 버리고 농사꾼으로 살면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이 맘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