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국기 6권 : 제4부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리뷰
『십이국기』 제6권입니다. 『십이국기』 시리즈 처음 부분은 요코의 험난한 모험기였고 그 다음에는 다른 나라 대국이나 안국의 이야기가 있어 한동안 요코가 다시 나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선 요코를 하나의 주인공으로 통일했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연결이 되는 형식으로 등장하여 아쉬운 점이 없었지만 소설은 각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 다르기 때문에 요코의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된 것이 매우 반갑다고 할까요? 다만 이번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편의 서장은 요코가 아니라 다른 주인공들인 스즈와 쇼케이, 그리고 요코와 얽히게 될 소녀 란쿄크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애니메이션을 봤을 때 미완으로 끝나 궁금증을 많이 남겨뒀단 점에서 인상이 깊었던 대국 이야기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말고 인상깊었던 에피소드가 바로 소설의 4부에 해당되는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이었습니다. 일단 내용의 스케일이 요코 개인의 고난을 다룬 1부와는 다르기 때문이며 요코와 얽히는 인물들이 대폭 늘어난 덕도 있겠지만요. 거기다 요코의 성장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했고요.
주인공도 요코 오로지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주는 것처럼 이번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은 각각 다른 소녀의 이야기들을 교차 진행하면서 다양한 시점이 등장합니다. 스즈의 이야기-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부잣집에 팔려가다 폭풍에 휘말려 십이국에 떨어지고 거기서 유랑예인들과 지내다가 말이 통하는 비선 리요우를 만나 그녀의 하녀가 되지만 거의 백년이나 되는 시간 동안 구박을 받고 큰 맘먹고 탈출 채왕과 사이린을 만난 뒤 경왕인 요코에게 막연한 환상을 품고 그녀를 만나러 떠나는 것까지는 소설과 애니는 많이 비슷한 전개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경국으로 돌아가는 소년 세이슈를 만나는 부분부터 애니가 약간 다른 면을 보이는데 원작에서는 다른 캐릭터가 없이 세이슈와 동행하며 세이슈와의 만남을 통해 스즈는 남에게 동정받기만을 바라고 스스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 자신의 나약함에 대해 서서히 깨달아가는 반면 애니에서는 오리지널 캐릭터인 요코의 친구이자 같이 십이국 내로 휘말려온 아사노와도 만나는데 아사노는 머리를 다쳐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급기야는 몸이 아픈 세이슈를 방치하여 죽게 만들기까지 하지요. 그리고 아사노의 이런 불안한 모습은 스즈의 변화와 좋은 대비를 이루며 오리지널 캐릭터이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의 흐름에 섞여들었다는 점에서 애니가 훌륭한 각색을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쇼케이의 이야기에서도 원작 소설과 애니메이션에서 약간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쇼케이의 아버지이자 방국의 봉왕이 어떤 식으로 나라를 말아먹었는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묘사되는 편이라고 할까요? 소설 서장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방국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공포정치를 편 봉왕과 왕비를 처형하는 장면부터 나오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공국의 보물을 훔치고 달아난 쇼케이가 라크슌을 만나면서 쇼케이가 모르고 있던 방국의 실체에 대해서 드러나는데요. 여기서 공주에게는 공주의 책임과 도리가 있으며 라크슌이 예를 든 교국 각왕의 자식들이 아버지의 잘못을 알고 선적을 반납하여 일반 백성이 된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이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에서 요코가 그들을 만나는 장면을 대체된 것이 떠오르더군요. 이 장면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던 이유가 부모의 잘못을 자식이라고 무조건 감싸지 않으며 설령 자신이 저지른 게 아니라 부모가 저지른 잘못이라도 그것을 말리지 않은 것엔 자신들의 잘못이 있을 수도 있음을 인정한 각왕의 자식들의 모습이 짧게 나마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인데 이 건 라크슌 말마따나 부모의 과보호에 안주하면서 아무것도 알려하지 않은 쇼케이에 대비됩니다. 더불어 방국 사정을 잘 알고 쇼케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공왕 슈쇼우의 통쾌함은 덤. 소설에선 아예 방국의 사자에게 쇼케이 보는 앞에서 겟케이더러 정 꺼림칙하면 공왕인 자신이 옥좌에 앉으라 권한다고 전하라는 등 속시원한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아직 읽지 않은 '도남의 날개'편이 궁금해지더군요.
소설을 읽어가면 스즈는 원래 가난하고 힘든 집안에서 태어나 비굴하고 수동적인 면이 강한 것이 조금 이해가 되었으나 중반에 사람들이 자신만 괴롭힌다고 징징거리는 태도나, 공국에 가서까지 상당히 철딱서니 없이 구는 쇼케이의 모습 때문에 아마 앞의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다면 첫부분만 보고 이 둘을 비호감으로 낙인찍을 뻔 했을지도 모릅니다. 실은 애니로 첫 부분만 봤을 때도 이 두명이 많이 짜증났던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십이국기』 시리즈는 각종 사건과 사고를 경험하면서 이런 소녀들의 변화를 납득이 가도록 진행한다는 사실입니다. 캐릭터의 변화나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면이 이런 부분인데 그 캐릭터의 심리와 그 심리변화가 과연 타당한지, 가상의 이야기이긴 하더라도 현실적인 부분인지, 독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는지 여부로 지금까지 본 몇몇 창작물들에서는 이런 변화에 대해서 자세한 모습을 설명하지 않아 캐릭터의 변화가 개연성이 떨어지고 많이 생뚱맞은 경우를 본 게 생각이 나더군요. 그리고 일단 이 캐릭터들이 성장에는 각각 다른 조언자나 스승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필수적인데 스즈는 세이슈에게서, 쇼케이는 라크슌에게서 요코는 초반엔 라크슌 이번엔 엔호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즈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세이슈를 만나서, 쇼케이는 인격이 성숙한 라크슌을 만나서 변화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알고 보면 성격이 다르더라도 초반 요코의 모습을 많이 나눠가졌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스즈는 눈치를 보며 자기 주장이란 것을 하지 못했던 일본에서의 요코의 모습을, 비뚤어진 부모의 보호 때문에 생긴 페쇄적인 성향과 낯선 환경에서 배움의 기회가 적었다는 점은 쇼케이가 서로 닮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소녀들의 변화는 이번 편에 새로 등장한 두 주역인 스즈와 쇼케이만이 아니라 요코에게도 적용되는데 1부인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에서 남의 눈치를 보며 자기 주장을 못하는 소녀인 요코가 각종 고난과 배신을 겪으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내용이라 처음엔 주인공이 힘없고 의기소침한 모습에서 매우 답답함을 느꼈던 것도 있었어요. 아무래도 이것은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했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감상이었을 싶은데, 후반으로 갈수록 요코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후련함을 느꼈지만 다시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편이 시작되면 요코의 성장과는 달리 환경은 그다지 변한 게 없다는 것이 드러납니다.요코 스스로도 태과 출신이라 얕보이며 관리들의 눈치를 살피는 자신의 모습이 봉래(일본)에서 있었을 때와 뭐가 다른 것이냐며 외치고 자신이 뭔가를 알아야 하는지 직접 살펴보겠다면서 민가에 숨어들게 되지요.
애니에서도 약간 오리지널 이야기들을 첨부하여 시청자들에게 이런 소설 내의 위기의식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일단 요코의 행동이 전 시리즈에 비하면 매우 적극적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인데 여기서 엔호라는 장로의 집에 거주하면서 란쿄크 남매와 만나기도 하고, 거기서 자신이 잘모르는 십이국의 사정에 대해 배우는 부분들이 소설에서 애니보다 자세하게 나오는 편입니다. 요코가 궁에서 왕의 위험을 갖추기 위해 여관들이 권하는 화려한 복장과 장신구 때문에 난감해하는 장면이나 축하를 하러 온 연왕과 엔키와 대화를 하면서 태과로써 겪는 십이국의 너무 다른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나오고요. 일단 요코가 왕이고 십이국 내의 제도나 환경에 대해 무지하다보니 엔호를 통해 토지 제도나 세금 제도 등 왕이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 배워가는데 이 부분은 작가분이 세세한 데에도 많이 신경을 썼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사귄 친구인 란쿄크에게선 십이국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 배워가는데 보면 십이국에서 옛 중국처럼 이름 말고도 자나 다른 이름을 쓰기 때문에 요코가 꽤나 골치 아파하는 장면도 나오더군요. 그리고 일본에서 사람들의 직장이나 학교 생활로 고단하게 사는 것이나 십이국 내의 사람들이 부역을 담당해야 하는 점이 많이 비슷하게 묘사되는 등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재밌습니다. 이번 6권의 내용은 스즈와 동행한 세이슈가 스즈가 여관을 알아보러 간 사이 탐관오리 쇼코우의 마차에 치여죽게 되면서 다음권의 파란을 예고하면서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