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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 10권 : 제6부 황혼의 물가 새벽의 하늘』 리뷰

0I사금 2025. 1. 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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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십이국기』 드디어 10권입니다. 10권째에 돌입했으니 이제 도서관에 놓인 『십이국기』 시리즈도 한 권만 남기고 다 읽은 셈입니다. 한번 읽은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흥미를 가지고 다시 읽어내려갔는데 읽은 지가 좀 오래되어서 그런가 잊어버린 내용들도 있고, 어떤 부분은 새로 읽으면서 느낌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나 궁금해했던 대국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마무리된 - 그렇다고 완전히 결말이 난 것은 아니라 역시 이번 편도 앞날은 종잡을 수 없이 열린 결말로 끝나버리지만 - 셈인데, 일단 봉래로 돌아가는 바람에 행방을 알 수 없던 타이키가 돌아왔다는 것부터가 꽤 큰 수확이라서요. 『십이국기』 시리즈를 찔끔찔끔 읽기 전에 한 권짜리 소설인 『마성의 아이』를 읽어서 이번 편 '황혼의 물가 새벽의 하늘'에서 어느 정도 생략된 타이키 - 다카사토 카나메 -의 일본 내 생활에 대해선 충분히 파악이 가능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마성의 아이』에서 인명피해가 점점 더 커지고 타이키가 원흉이라 주목을 받는 상황이 되어서 완전히 난감해졌을 무렵 식이 일어나 타이키가 사라지는 결말로 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마성의 아이 때에는 타이키를 찾으러 온 여자가 아무래도 당시엔 렌린 같던데 여기선 타이키를 찾아내어 데리고 갈 때 허해를 넘어간 인물은 바로 연왕 쇼류입니다. 뿔을 잃고 일반 사람이나 다를 바 없이 되어버린 타이키를 이쪽 세계로 데리고 오기 위해서 쇼류가 타이키를 임시로 자신 나라의 태사로 삼아 신선으로 만드는데 이 십이국 세계관에선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가 섞여선 안되며 설령 기린 정도가 건너가더라도 뭔가가 일그러지는 느낌이라는 온전치 않은 모습이라는 묘사가 나와요. 이건 꼭 괴담 속에서 죽은 자와 산자는 사는 세계가 달라 서로 접촉하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금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니 저자인 오노 후유미는 바로 공포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던 분이라는 게 떠올랐습니다. 어쨌거나 쇼류는 500년 만에 일본으로 넘어와 타이키를 데리고 가는데 이때 심리가 변해버린 일본을 보면서 자신의 나라도 친족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땅이며 이젠 완전한 '이국(異國)'이라고 여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태과인 이상 쇼류에게도 어느 정도 봉래 땅에서의 그리움이나 미련이 남아있었고 이번 일을 계기로 그것을 묻어버릴 수 있던 것 같았습니다.

같은 태과 출신인 요코도 이번 '황혼의 물가 새벽의 하늘'을 보면 알겠지만 점차 십이국 세계에 익숙해져가고 저쪽 봉래에서의 생활을 마치 '꿈'처럼 여기는 부분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본질은 십이국 사람이다 보니 본능적으로 고향에 섞이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같은 태과 출신인 쇼류나 그의 기린 로쿠타라던가 역시 같은 태과이고 한동안 봉래에서 지낸 타이키를 보면서 반가움을 표시하는 걸 보면 그래도 한때 자신의 세계라고 여기며 살았던 땅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던 모양인 것 같더라고요. 미묘하지만 봉래에서의 요코의 삶은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던 것이었음에도요. 그렇다고 십이국으로 돌아온 요코의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지만. 이건 그래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 대한 차이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저번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편에서 그 고생을 하면서 사건을 정리하고도 아직도 경국이 안정되지 않고 요코를 얕잡아보거나 싫어하는 이들이 있어 대놓고 궁에서 왕 시해를 시도하는 인간들이 나오는 장면은 참 보기 뭣하달까요. 반란을 주모한 천관들이 하는 소리를 보면 꼭 현실의 차별주의자를 소설에서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또 십이국 내의 세계관을 보면 가질 수 있던 의문에 대해서도 이번 '황혼의 물가 새벽의 하늘'에서도 어느 정도 실마리를 준다고 해야 될까요. 소설적 오류같은 걸 빼면, 십이국 내에서 존재하는 규칙이 어딘가 이중적이거나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데 문제의 발단이 된 '준제의 고사'도 그렇거니와 현재 등장한 십이국 중 가장 나락으로 떨어진 대국의 상황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무신론자가 될 법한-십이국은 천제가 있고 신선도 있는 세상이니까- 상황으로 흘러갔는데 여기선 그에 대한 대답이라도 되듯 '하늘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요코의 말이 나옵니다. 즉 십이국 세계도 완벽하진 않으며 초월적인 무언가에 의지하기보단 뭘 어떻게 할지는 결국 인물들의 행동 나름이라는 게 소설 속에서 계속 보이는데 리사이는 자신이 하는 짓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실행했고 그것에 죄책감을 가졌고, 결국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기억이 돌아온 타이키의 말을 듣고 대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물론 그 앞날이 밝지만은 않습니다만...

그동안 쭉 십이국 세계관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작가가 신이 존재하는 판타지적 공간을 마련해두긴 했어도 거기서 그려내는 세계는 결코 등장인물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그곳이 현실이 싫다고 결코 도피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신의 뜻이니 하늘의 뜻이니 체념하지 말고 지금 있는 곳에서 어떻게 할지를 스스로 생각하라는 게 이번 편의 주제가 아니었나 싶어요. 어찌 보면 경왕 나카지마 요코의 이야기에서 계속 이어져온 주제이기도 하고 이번 편에선 리사이의 그 처절한 고생을 보아도 어렴풋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요코가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이라는 나라의 왕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의 마지막 대사에서처럼 리사이는 자신의 대국 백성이라서가 아니라 '대국'이 자신의 것이기에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는 것을 막판에 보여줍니다. 보면 경왕인 요코가 십이국의 세계에서 어찌 보면 정체되었다 할 수 있는 부분에 변화를 가지고 온 것처럼 타이키 역시 다른 의미로 십이국 내에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기린이지만 더 이상 기린은 아니게 되었다고 말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뭔가 실마리를 던져주는 마지막 행동을 보면 말이죠.

그리고 이야기의 초점이 거의 왕들과 기린들에게 맞춰져 있어 전작의 주인공들이 스즈나 쇼케이는 간간히 등장하는 정도인데 범왕과 쇼케이가 아웅다웅하는 모습은 간간이 등장하는 개그씬이라고 할까요? 애니화되었으면 참으로 볼 만했을 부분 같은데.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 중 가장 완성된 인물 같았던 쇼류가 범왕 때문에 난감해하는 모습도 그렇고요. 어차피 대국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끝났으니 애니에서도 비슷하게 진행해주었어도 좋았을 법 한데 참 아쉽습니다. 그리고 엔키 로쿠타의 비중이 엄청 커졌는데 거의 모든 일을 중심에서 주도하는 인물이 이 로쿠타라서 처음 소설을 접했을 때 소설의 중심인물 중 여자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이 요코라고 생각했다면 남자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은 로쿠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케이키와 요코보다는 로쿠타와 요코가 얽히는 부분이 많아서 의외로 로쿠타가 요코의 기린이었어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이렇게 해서 『십이국기』도 큰 줄기는 다 읽은 셈인데 이번 편은 이름 번역이 좀 아쉽습니다. 범린이라거나 염린이라거나 기린 이름이 통일되지 않은 편이에요. 이제 남은 건 단편 '화서의 꿈'인데 조만간 읽어서 리뷰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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