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국기 3 : 동의 해신 서의 창해』 리뷰
벌써 『십이국기』 새 시리즈도 3권까지 왔습니다. 예전 구 번역본에서 다른 시리즈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나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이 두 권으로 나누어져 나왔던 것에 반해 이 '달의 해신 서의 창해'는 당시 번역본으로도 한권으로만 나왔고 이번 새 시리즈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다른 시리즈에 비하면 두께가 좀 더 얇은 느낌이 나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담긴 내용까지 가볍다 이런 것은 아닙니다. 『십이국기』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선 내용의 중심이 요코에게 많이 쏠려 있어서 상대적으로 연왕과 엔키 로쿠타는 조력자 내지 조연으로 비춰지기 십상인데 반해 이 소설 시리즈에선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그들의 심정이 어땠는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고 할까요? 생각해보니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선 이 둘이 과거에 어떤 식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안국의 반란을 어떻게 평정했는지를 과거 회상으로 요코에게 들려주는 식으로 애니메이션 초반과 후반에 나누어서 보여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엔키와 쇼류의 비중이 좀 줄어든 느낌이 났던 것일지도.
소설 속 삽화는 언제나 섬세한데 컬러 페이지는 물론이거니와 소설 속에 삽입된 이미지 역시 새롭습니다. 그림 속에 엔키 로쿠타와 쇼류는 다정해보이지만 저런 모습을 보이게 된 것도 두 사람이 만나고 난 뒤 여러 일을 겪은 후에 신뢰를 쌓고 난 뒤의 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뭐랄까 요코 이야기에서도 그렇지만 기린이라고 해서 다 왕을 믿는 것도 왕이라고 해서 기린을 믿는 것은 아니며 이것이 엇나가면 ‘실도의 병’이라는 최악의 상태로 다다를 수도 있고 기린과 왕 사이의 신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특히 이번 '동의 해신 서의 창해'는 엔키를 주연으로 내세우면서 그의 속내를 파헤치기 때문에 거의 십년을 봉래(일본)의 인간으로 살았기에 자신을 인간에 가깝게 느꼈던 타이키완 달리 엔키가 ‘기린’으로써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나온 편입니다. 물론 엔키 로쿠타 역시 봉래에서 전란에 휩싸인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버림받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의 심정이랄지 군주들이란 게 왜 백성을 지키지 않고 백성을 괴롭히는 건지 의문을 느끼기도 하며 자신이 그런 놈들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에 상당히 불만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리고 결정적인 건 대개 소설 상에서 기린은 민의의 구현, 백성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존재라고 칭해지는 것과 달리 엔키 자신은 그런 백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어 자신의 임무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따지고 보면 기린이 선택한 왕 중에서 나라를 말아먹는 왕이 한 둘도 아니었고요. 대표적으로 소설 내에 등장하는 안국을 멸망에 가깝게 만든 전대 효왕이라든가. 효왕의 이야기는 짤막하게 실려 있는데 멀쩡히 잘 나가던 왕이 갑자기 미쳤다는 평이 있는 걸 봐서 대체 무슨 연유가 있던 걸까 의문이 생기더군요.
『십이국기』 세계에서 기린이 왕을 선택하는 것은 하늘이 내리는 계시임과 동시에 백성의 바람을 반영한다고 나오는데 반해 선택한 왕들 중에는 암만 봐도 왕 그릇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닌지라 엔키처럼 태과 출신으로 기린 없는 세상에선 여러 군주들이 피바람을 일으키는 꼴을 보고 그것도 모자라 기린이 있는 세상에서조차 미쳐서 나라를 기울게 하는 왕이 있단 것을 보았다면 왕이라는 존재 자체가 하늘이 정하고 백성이 정한다는 것에 의문을 품을 만도 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심지어 방국 같은 경우는 암군을 대대로 선택했단 이유로 기린이 사람들 손에 살해당한 케이스도 있으니.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나라를 망하게 할 작정이라면 애초에 멀쩡한 놈을 뽑지 왜 암군을 천계로 뽑냐며 반란군인 원주후 아쓰유의 입으로 직접 언급되기까지 하는데 아쓰유란 캐릭터 자체는 위선적이고 표리부동한 캐릭터일지도 몰라도 그 대사는 『십이국기』 시리즈를 보면서 독자들이 품었던 의문을 대변하는 거란 말이죠. 멀리 갈 것 없이 방국 같은 경우 켓케이 같은 존재가 있는 왜 공포정치로 나라를 기울게 한 봉왕이 왕이 되었는지 재국 같은 경우도 훨씬 훌륭한 존재가 있는데 다른 자가 먼저 왕이 되는지 등등.
하지만 결국 이것은 『십이국기』 세계관도 태강이라던가 천계의 섭리를 베이스로 한, 심지어 이번 <동의 해신 서의 창해>에선 내용이 내용인지라 군 체제까지 태강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등 어떤 시스템인지 자세하게 언급되는데 이런 걸 보면 꽤 세밀한 세계라 생각되어도 결국 그곳을 다스리는 것은 인간인지라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고 인간이 어떻게 할지는 결국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는 그런 세계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기린 같은 것 없는 현실에서는 훌륭하다 생각되어 기대를 모은 인물 혹은 사람들이 추대한 인물이 알고 보면 리더 그릇은 아니라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경우가 많은 것을 본다면 이런 현실의 실망감 같은 것이 소설 내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더 정확하게 따지고 보면 인간들이 사고를 치지 않는다면 ‘서사’를 중요시하는 소설 입장에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쓰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런데 이번 '동의 해신 서의 창해'를 본다면 쇼류 같은 경우는 본인의 비상함도 비상함이지만 당시 안국의 백성들 입장에서 이제 겨우 편한 시기를 얻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왕을 잃을 수 없다는 이유로 직접 왕사에 가담하여 반란을 제압하려 하는 등 쇼류 자체가 가진 두뇌와 리더십 등과 더불어 백성들까지 자체적으로 움직여주는 상당히 행운이 따랐단 생각도 드는데 기질이 좋은 왕이 나와 봤자 주변 상황이 아주 나쁘게 돌아간다면 자칫 대국처럼 헬게이트가 열릴지 모르니 왕 하나만 잘났다고 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드는 편이었습니다. 더불어 좋은 왕이라면 자기 목숨 줄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백성들 입장에선 역시 연왕 같은 왕이 제일 좋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십이국기』 시리즈에서 그려진 왕들 중에 가장 정도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 이와 비슷하게 경국 왕인 요코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아도 비슷하게 걸어가려는 듯도 싶은데 보면 다음 시리즈에 나올 요코의 행보를 보면 쇼류와 많이 겹치는 것도 있어 보이고요. 경국 칸타이 입에서 실종되는 일 같은 거 없으니 자기 나라 왕이 더 낫다는 말도 있고 결국 무능한 왕이나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왕은 비슷한 존재라는 거죠. 그런데 쓰다 보니 묘하게 태왕 까는 글이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