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파는 가게』 1권 리뷰
책 『악몽을 파는 가게』의 서문에는 스티븐 킹이 왜 계속 단편을 쓰느냐는 질문에 (그러니까 스티븐 킹은 걸출한 장편도 많이 썼고 성공도 많이 한 작가인데 왜 계속 작품 활동을 하는가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을 테고) 자신이 재미있기 때문에 쓴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본편의 내용보다 이게 더 인상적이었는데 스티븐 킹이 진심 성공한 작가라고 느껴져 내심 부럽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재미있고, 또 그것이 남들 보기에도 재미있고, 거기다 플러스로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부러운 솔직한 심정으로 저 경지에 다다르고 싶기도 했고요.
이 『악몽을 파는 가게』 1권에 실린 단편은 총 10편으로 한편 씩 간략하게 리뷰를 써 보았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떠오른 느낌은 스티븐 킹 본인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인지 그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는 부분이 좀 있었다는 것이고, 공포소설과 죽음은 떼어놓을 수 없는 소재겠지만 이 죽음에 대해서 좀 더 깊게 파고드는 느낌을 받았다는 거였죠. 단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나 대비하는 자세 비슷하다고 할까요.
01. 130킬로미터
어린아이의 모험과 사람 잡아먹는 자동차 이야기를 합친 건데, 말 그대로 사람을 잡아먹는 자동차 괴물이 나옵니다. 이 괴물을 물리치는 건 다름 아닌 어린아이인데 어린아이들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어린아이라는 게 특이점이에요.
02. 프리미엄 하모니
월마트 쇼핑을 가던 중 갑작스럽게 닥친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남편 이야기. 이건 공포보다는 현실에 있을 법한 사건이라 여러모로 꿀꿀한 내용. 근데 어떤 의미에선 이것이야말로 현실적이기에 진짜 공포가 아닐까 싶었단 생각이 들었을 정도.
03. 배트맨과 로빈, 격론을 벌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외식 나온 아들의 이야기인데, 이 아버지가 젊었을 때 한 성깔 하시던 분이었는지 아들에게 시비를 털고 두들겨 패는 조폭의 목을 나이프로 찌르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작가의 말에 이 단편의 소재가 된 목격담은 워낙 훈훈한 것인지라 단편 내용과 비교하면 좀 묘한 느낌을 받아요.
04. 모래 언덕
죽음을 앞둔 판사가 어린 시절 몰래 가던 섬의 모래 언덕에 앞으로 죽을 사람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을 알고 자기 이름을 확인하러 간다는 내용인데 결말만 보자면 과연 판사가 누구의 이름을 봤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내용. 만약 영상이었다면 속 터져 죽었을 결말이에요.
05. 어느 못된 꼬맹이
단편 중 제일 재밌게 읽은 소설로 어린아이를 살해한 죄로 사형 판결을 받은 죄수의 이야기입니다. 죄수는 자신이 죽인 게 어린아이가 아니라 그가 어린 시절부터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사고를 일으키고 불행을 조롱하여 주변 사람을 죽음으로 몬 악마라고 주장하지요. 변호사는 그것을 망상이라 생각하다가 죽기 전 남긴 그의 고백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증거물인 악마의 예고장을 받게 되는 것이 소설의 결말.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백인 남자아이를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이 사회에서 그런 아이가 실종되면 당장 수색에 나서는데 자신이 죽인 아이는 어떤 신원도 확인할 수 없다'라는 뼈 때리는 대사였어요.
06. 죽음
스티븐 킹의 장편 소설 『그린마일』의 일종의 반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짧은 단편입니다.
07. 납골당
일종의 시인데 코끼리 무덤을 발견하기 위한 정글 탐험을 하다가 차례차례 죽어가는 인간들 이야기를 비유한 것.
08. 도덕성
돈이 궁한 부부가 인간의 죄에 대한 탐구를 하려는 한 목사로부터 죄짓는 실험, 놀이터의 어린아이를 때리고 그 영상을 담은 뒤 튀는 짓을 하고 20만 달러를 받는 내용입니다. 큰 죄 아니니 별거 아니라고 합리화하다가 나름 찔리는 게 있어서인지 결국 이 양심불량 부부가 구질구질하게 싸우다 헤어지는 것이 결말이며 약간은 사이다였어요.
09. 사후 세계
전편의 부부처럼 죄지은 인간들 이야기예요. 주인공 중 하나는 자기 공장에 화재가 났을 때 문을 잠그는 바람에 직원들을 떼죽음으로 이끌었고 하나는 젊은 시절 자기랑 관계 맺은 여자애를 다른 친구들이 윤간하게끔 만든 놈인데 이 인간들에게 내려진 벌은 결국 새로운 기회 없이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인 듯.
10. 우르
책 마니아에 나름 구식 취급(?) 받고 싶어 하는 강사가 여친과 책 문제로 말다툼한 뒤 전자책을 보기 위해 킨들을 구입하는데 그 킨들이 정상적인 것이 아닌 평행세계의 물건이 오게 되어 생기는 해프닝입니다. 그 킨들을 이용해 여자 친구를 죽일 뻔한 교통사고를 막는다는 내용으로 그 킨들로 인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파악하고 사고를 일으키는 음주운전자를 운전을 일시적으로 못하게끔 두들겨 패는데 재미있는 부분이 이 음주운전자가 불행한 생애를 보낸 여자라는 점 때문에 동정했다가 앞에서 교통사고를 여러 번 일으킬 뻔하자 주인공의 심리가 바뀌는 것이 좀 현실성 있어 보였다는 것.
그렇게 주인공은 여자 친구와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막지만, 결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 '역설을 관리하는 경찰'들에게 들켜서 혼 좀 나고 킨들을 압수당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역설을 관리하는 경찰'들이 타워를 위해 존재한다는 대사로 보아 작가의 전작 장편인 『다크 타워』 시리즈랑 같은 세계관인가 추측을 해봤습니다. 묘하게 판타지는 취향이 아니라 못 읽겠던 소설인데 이 소설 세계관이 스티븐 킹 소설의 한편을 지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던 부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