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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귀신』 리뷰

0I사금 2025. 2. 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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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국의 귀신』은 제목만으로도 눈에 띄는 책이었습니다. 정확하게 이 책은 한국 설화 속에 등장하는 귀신 이야기를 다양하게 엮은 것인데 제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번 책은 91년도에 나온 낡은 책이었어요. 하지만 책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이런 민담 설화 류의 책은 뻔한 패턴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그 와중에도 여태껏 몰랐던 특이한 소재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서문에 『성호사설』이나 『금오신화』와 같은 옛 서적의 구절이나 불교의 개념을 인용하여 귀신의 의미를 찾는데 과학적인 점을 굳이 따지지 않고 옛사람들이 생각한 귀신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귀신은 사람이 죽어서 된 것으로 본디 인간과는 다르지 않고, 귀[鬼]는 음에 속하는 기운, 신[神]은 양에 속하는 기운으로 귀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만 신은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고 여겨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신보단 귀가 월등히 많고 억울하게 혹은 원통하게 죽은 사람의 원혼이 원귀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또 금오신화에서는 귀신과 요괴가 비슷하지만 실은 다른 데서 연유한다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손각시, 즉 원통하게 죽은 처녀귀신인데 아랑과 같은 죽임 당한 여성 이야기가 책의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겁탈당하여 죽은 기생이나 양반의 딸, 혹은 남편에게 맞아 죽은 아내, 계모에게 살해당한 소녀, 사랑을 이루지 못해 죽고 만 처녀 이야기들이 많은데요. 특이한 것은 이 귀신들의 행동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며 단순히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하소연하고 시신을 거둬달라고 부탁하는 온순한 여인들이 있는 반면 사랑에 배반당하거나 원통한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구렁이 등으로 변하여 복수하는 처절한 여성원귀들도 있으며, 원한이 해소되자 오히려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풍년이나 큰 수확을 안겨줘서 나중에 신령의 지위로 올라가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의 산신령이나 해신들 중에 여신들이 종종 있는 경우가 이런 설화들이 뒷받침되기 때문은 아닌가 싶어요. 뿐만 아니라 특이한 동물들이 인간으로 변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천년 묵은 쥐가 신부들을 강탈하다 신령스러운 금고양이에 의해 처단되거나 여우가 인간 흉내를 내다가 기지가 빠른 사내에 의해 혼쭐이 나는 이야기도 있으며, 죽임 당한 구렁이가 인간에게 해코지하려다가 스님에게 퇴치당하는 요괴 이야기도 제법 등장합니다. 특이한 것은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쥔 사람들의 신분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인데요. 

 

여성원귀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이는 공정한 관리들이 많은 반면 사람을 홀리는 요괴를 혼내주는 것은 농부나 소금장수 같은 일반 평민인 남성들이고, 인간을 해코지하는 요괴의 재앙을 막는 것은 스님들인 경우가 많더군요. 하지만 여자를 겁탈하고 살해하는 행위는 대개 몸종이나 하인과 같은 천민 출신인 남성들이 행하는데 이는 과거의 신분제가 설화에도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또 이와 다르게 여인들의 사랑을 배반하거나 모욕하는 것은 양반들인 경우가 많더군요. 어느 쪽이든 설화에선 다 처단당하는 결말이지만요.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 중 특이한 것은 설화에도 신분제의 영향력이 끼침에도 천민들의 원한이 보이는 이야기도 더러 있다는 건데, 신분을 넘는 사랑을 하다가 생매장당한 남녀의 원혼이 등장하는 이야기나 밤에 양반흉내를 하며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맞아 죽은 백정의 원귀 이야기는 신분제 사회의 잔혹함을 꼬집는 대표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결국 옛날에도 가장 무서운 것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런 옛이야기 들은 현재의 괴담처럼 옛사람들이 유희성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들인 감도 없지 않지만 어떤 의미론 당시의 세태를 반영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탑삭골의 달걀귀신 이야기나 임진왜란 때 학살당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죽은 정월 16일 밤에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는 옛이야기지만 오싹한 면모가 강하기도 합니다. 또 이런 옛사람들의 귀신관이나 요괴관을 살펴본다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무진장 많이 나올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사후세계나 귀신, 요괴의 이야기는 시대가 변하더라도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이야기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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