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 라그나로크』 리뷰
영화 『토르 : 라그나로크』는 개봉 전 보게 된 시사회 평을 살펴보니 호평이 좀 많은 것 같고 『토르』 시리즈 중에서 제일 낫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좀 기대를 하면서 극장을 찾아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토르』 시리즈가 심각하게 나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다른 마블 히어로 시리즈에 비하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았거든요. 막상 영화를 직접 보게 되니 기대와는 다른 전개라던가 호불호가 갈릴 요소가 좀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장단점이 확실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른 히어로물 영화에서 영웅의 존재 의미나 영웅과 평범한 사람 사이의 고뇌를 제법 다룬 것에 비하면 『토르』 시리즈는 그런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찌 보면 『토르』 시리즈의 이런 한계는 제작진들의 재량 문제가 아니라 토르라는 캐릭터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수저 CEO에 천재 발명가 출신이지만 비극적인 가정사와 안 그런 척해도 인간으로서 약한 면모를 많이 숨기고 있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나, 전쟁터에서 소중한 연인과 헤어지고 친구를 잃은 뒤 충격적인 해후를 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있을 시간대마저 잃어버린 캡틴 아메리카, 자신의 파괴적인 면모(헐크)를 두려워하며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조심스러워해야 할 브루스 배너에 비하면 토르는 인간이 아닌 초인적인 종족 - 신이라 여겨지는 아스가르드인의 왕자라는 배경 설정이 상당히 화려한 데다 기본적인 성격도 고뇌하는 히어로 타입과는 먼 혈기 넘치는 성격이라는 것부터가 내용을 좀 더 무거운 주제로 끌고 나가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토르 : 라그나로크』는 심오한 테마보다는 좀 더 경쾌한 톤의 모험극으로 장르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일단 영화의 장점부터 차근차근 늘어놓자면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 영화의 개그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선 작정하고 관객들을 웃기려고 맘을 먹은 건지 여러 군데서 웃음을 터뜨릴 요소가 많이 배치되어 있는데 캐릭터들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마블 전작 시리즈의 자체 패러디라 여겨지는 부분이 많아 그것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영화의 장점으로는 영화상에서 불필요한 러브라인을 배제하여 몰입도를 높였다는 점입니다. 러브라인이 몰입도를 방해하는 경우는 러브라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제작진이 러브라인을 만든답시고 여성 캐릭터를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만들어 능력을 깎아내리거나 다른 활약을 할 수도 있을 여성을 굳이 사랑 타령하는 캐릭터로만 고정시킨다는 점인데 『토르 : 라그나로크』에선 이런 단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는 마블 시리즈에서 보기 드물게 여성 빌런을 최종 보스로 설정했다는 점인데 굳이 무리하게 입체적인 설정을 추가하려 하지 않고 강한 악녀로서의 힘을 어필하며 심지어 최종보스의 대결도 흔한 동료들의 힘을 모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닌 다른 독특한 방법을 쓴다는 점입니다. 헬라의 최후 부분은 그 느낌이 『닥터 스트레인지』 1편의 클라이맥스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빌런인 헬라의 캐릭터는 원래 북유럽 전승에서 로키의 막내딸로 나오는 것과는 달리 오딘의 첫째 딸이자 그 힘을 두려워해 아버지인 오딘이 봉인했다는 설정으로 등장하는데 아스가르드에 있을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는 설정으로 보아 원래 아스가르드의 정식 후계자는 토르가 아니라 헬라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며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의외였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라의 행적이나 『토르』 전작 시리즈에서 오딘의 아들들이 사고를 치고 다닌 것을 본다면 오딘은 자녀 교육에 많이 실패한 아버지 같다는 뜬금없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나마 토르랑 로키가 정신을 차렸으니 반은 성공했다고 해야 하나... 반면 영화상에서 장점과 단점 둘 다 될 수 있는 요인으로 보이는 것이 로키와 배너의 캐릭터 활용인데 로키는 전작에서 마지막 엔딩을 강렬하게 장식함에 따라 뭔가 무시무시한 음모를 꾸미는 카리스마 빌런으로 재탄생할까 싶었지만 오히려 이번 『토르 : 라그나로크』 에서는 완전히 선역으로 대신 전승의 트릭스터적인 면모가 강한 개그 캐릭터로 변화한 것으로 보이더군요. 영화에서 개그씬이 절반은 헐크고 절반은 로키가 담당하는데 저는 이 부분을 나름 좋게 보았지만 빌런인 로키나 혹은 그의 과거사에 얽힌 비극적인 면모를 좋아하는 팬분들이라면 반대로 아쉽게 여겨지지 않을까 싶었던 부분.
배너는 『토르 : 라그나로크』 개봉 때까지 단독 시리즈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나오지 않았던 고로 팬들이라면 그 얼굴을 여기서 많이 볼 수 있어 반갑기도 하겠지만 배너가 본래 갖고 있는 두려움이나 고뇌 측면은 토르와 있을 때는 많이 등장하지 않아 캐릭터성이 좀 얇아 보이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대신 비중은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브루스 배너의 캐릭터가 갖는 자신이 가진 양면적인 면모에 대한 고민이나 두려움은 토르와 있을 때보단 오히려 토니 스타크와 있을 때 훨씬 더 잘 드러난다고 보이는데, 토르와 잘 맞는 부분은 배너 자체보단 헐크 쪽으로 이것은 어찌 보면 지능 수준이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고요. 배너의 캐릭터를 생각보다 깊이 파고들지 않았던 이유는 일단 이 영화가 '토르'가 주인공인 영화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중심축이 자칫 조연 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해석도 됩니다.
또 하나 영화에서 아쉬운 면으로는 새로운 동료인 발키리가 처음 아스가르드를 증오하다가 맘이 바뀌어 토르 일행을 돕는 부분에서 설명이 좀 부족해 보인다는 점으로 헬라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싸움에 참전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만 과거의 트라우마나 오딘에 대한 악감정을 보인 것에 비한다면 설명이 불충분해 보인다고 할까요.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으로 토르의 동료들인 워리어즈 쓰리 같은 캐릭터들이 굉장히 소모적으로 변했다는 점인데 새 캐릭터들이나 비중이 커야 할 로키와 배너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쪽은 신경 쓰지 못하고 급하게 퇴장시켰다는 생각이 들 정도. 러브라인의 불필요성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제인과 토르와의 사랑이 서로 차였다는 수준으로 간단하게 정리된 점도 그렇고 삼각관계의 한 축이자 여성 전사였던 시프는 아예 등장이나 언급조차 없었던 점은 전작의 요소들을 너무 가볍게 흘려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영화 『토르 : 라그나로크』 의 결말은 토르가 아스가르드의 왕으로 등극하는 최종 과정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아스가르드라는 중세적인 분위기와 미래적인 SF 분위기가 혼합된 공간 활용이 극히 적었다는 점은 확실히 단점으로 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아스가르드인 자체가 영화 속에서 충분히 조명은 되지 않았다고 보이더군요. 이야기의 전반이 그랜드 마스터의 투기장이 있는 사카아르라는 행성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북유럽 신화의 이미지를 차용했다기보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복사판과 같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그런데 그동안 마블 영화를 보면서 딱히 OST 부분은 인상적인 게 없었는데요. 이번 영화 『토르 : 라그나로크』 클라이맥스에는 Led Zeppelin의 Immigrant Song이 쓰였는데 영화의 연출과 북유럽 신화에서 따온 영화의 배경과 너무 잘 어울려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