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부모들』 리뷰

예전에 선물 받은 책 중에 사람들의 고민이나 응어리를 작가가 들어주고 풀어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서적이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그 책을 다시 뒤적거리다가 그 책 중간중간에 인용된 글을 보았는데 그중에서 『흔들리는 부모들』이란 책에서 쓰인 구절이 특히 많이 나오더군요. 책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원래 『흔들리는 부모들』의 원제는 『Toxic Parents』인데 번역을 하면 '유독한 부모들'에 가깝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흔들리는 부모들』로 번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굳이 분류를 하자면 심리/카운슬러에 속하는 책이지만, 좀 더 넓게는 아동인권 향상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상담자들은 20대에서 50대까지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성인들이지만 그 성인들의 유년기에 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생겨난 응어리들을 살펴보며,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 자식이 성년이 된 후에도 어떻게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고찰하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항상 언급되는 것은 성년이 된 자식들은 현재의 자신이 가진 문제점이 어린 시절과는 크게 상관없으며, 명백한 학대를 받았음에도 그럼에도 부모님은 좋은 분이었다며 옹호하는 측면을 보이는 건데요.
저자인 수잔 포워드는 어째서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심리학적인 설명을 곁들여 그 모순적인 행동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책은 크게 14단원으로 각각 일곱단원을 일부와 이부로 분류하여 일부에서는 학대하는 부모의 유형과 그 유형의 부모밑에서 자란 자녀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이부에서는 성년이 된 후에도 부모의 학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립할 수 있는 방법과 학대에 맞서는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동인권 개념이 미약한 우리나라에서 알게 모르게 학대를 받았으면서 그 응어리를 풀지 못한 사람에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이 아닐런가 싶어요. 책에서는 미리미리 이 세상에 완전한 부모도 완벽한 부모도 없다는 사실을 언급하여, 모든 부모가 흔들리는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부모도 인간인 이상 실수나 잘못을 하지 않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다만 책에서 지적하는 흔들리는 부모들이란 문제 행동이 지속적이며 그것을 애정에 의한 행위였다고 위장하거나, 자신들의 잘못을 자식에게 돌리는 행동을 하는 부모들을 일컫는 겁니다.
설명을 읽다보면 예전에 리뷰한 서적 『이중인격』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거기서 등장하는 이중인격 부모들은 자신의 정신적인 불안과 불만을 주위 사람에게 투사하여 그들의 잘못으로 돌리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등장하는 부모들이 딱 그와 같다고 해야 할까요. 다만 제삼자인 경우는 그들의 행동이 이상하고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어린아이들인 경우 그런 판단력이 없으므로 부모의 문제행동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게 되며, 그것이 자녀가 커서 독립한 이후로도 무의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학대당한 자녀들이 커서도 부모를 옹호하는 경우에 해당하는데, 문제는 단순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녀들도 부모의 행동을 내재화하여 주위 사람에게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에 의하면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오래된 격언은 실은 맞는 말이 된다고 하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는 학대당한 자녀들인 경우, 부모의 잘못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 컨트롤을 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어린아이에게 화풀이를 한 부모에게 있는 것이며, 자신의 응어리가 풀리기 전에 섣불리 그들을 용서한다거나 그들과 좋은 가정을 이루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문제행동을 스스로 인식하지 않는 한 그 부모들은 자식들이 지적해도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앞서 말한 애정이 있어서 그랬다거나 자식이 잘못해서 그랬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데 흔들리는 부모들은 상황을 왜곡시켜 받아들이는 게 특징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콤플렉스가 된 유년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그 부모의 잘못에 대응하는 '대결'은 필요하지만 그 부모와 함께 정상적인 가정을 만들겠다는 기대를 버리는 것은 좋다고요. 왜냐하면 부모가 정신을 차리고 좋은 가정을 이룬다는 환상에 대한 기대가 끝내는 부모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재미나게도 책은 단순 학대하는 부모의 문제행동과 학대받은 사람들의 문제 행동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흔히 가지게 되는 편견에 대해서도 꼬집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이는 스스로 큰다는 사람들의 믿음이나 자식을 키울 때 체벌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교육방침, 부 혹은 모가 행하는 학대 행위를 바로잡지 못한 다른 쪽 역시 피해자라고 믿어지는 것들을요.
특히 세번째 편견을 지적하는 부분이 와닿았는데, 흔히 가정폭력 현상- 대개 아버지가 폭력행위를 저지를 경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어머니를 학대받은 자녀들은 물론이요, 주위 사람들마저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요. 보통 이런 경우는 어머니들이 자식을 방패막 삼아 자신에게 행해지는 폭력을 막는 경우가 태반이며 결과적으로는 폭력의 협조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을 폭력적인 상황에서 피신시키거나 아이들을 위해서 경제적 자립을 하려는 일말의 노력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모친의 학대행위를 보면서도 부친 측은 아이들 양육에 끼어들 수 없다는 이유로 방관하는 경우. 하여간 어느 쪽이든 결코 어른이 아이보다 약자는 아니라는 사실과 부모에게 자녀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곱씹어본다면 이런 학대행위를 방관하는 부모의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지 동정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미성숙한 어른을 가엾이 여기면서 아이들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은 씁쓸한 현실이라지요. 특히 죄질이 심각한 가정 내 성폭력 사건인 경우 부모의 방관이 일을 더 키운 경우가 많음에도 말이지요.
도리어 자식더러 이해하라든가, 너만 입다물면 집안이 평화로워진다거나 하면서 폭력을 받아들이길 강요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더군요. 그런데 자식을 지키는 행위를 방기한 부모가 자식더러 고통을 대신 감내하라고 했을 경우에는 어떤 이유로도 그들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책에 의하면 상담치료 끝에 부모의 그림자에서 서서히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찾아간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신이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끝까지 부모에 대한 환상을 간직하기 위해 치료를 거부한 사람도 더러 있다는 겁니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약한 쪽이라고 여기는 것을 거부하며 강자이길 자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것을 자신이 약하다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거 같은데요. 자기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의 실마리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부모가 되려는 사람들이 이 책을 미리미리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책이 나온 연도는 1989년인데 미국에서도 아동인권에 대한 인식 또한 상당히 늦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우리나라는 그보다 더 늦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고 할까요.
아동학대를 다룬 작품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카운셀러 류의 책 말고 아동학대를 형상화한 작품들은 현실을 비판하기보단, 결국 부모의 애정이나 화해로 어영부영 결말이 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모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부모의 행동이 명백한 아동학대임에도 이것을 애정에 의한 것이라고 합리화하는 사례가 떠올랐는데 문제는 이런 작품을 보고 감동적이라느니 모정은 위대하다느니라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 나네요. 학대와 폭력을 애정과 혼동하는 경우는 대중적인 심리에도 존재하는 거 같습니다. 저 소설의 사례도 그렇고 대다수의 막장 드라마나 영화도 자식을 막는 부모와 억압하는 부모, 자기 뜻대로만 하는 부모들이 나옴에도 결말은 결국 애정이나 화해로 어물쩍 처리됩니다. 모 칼럼에서는 이런 경향을 사회구조가 잘못된 것을 알아도 이걸 고치느니보단 그 구조에 편입되길 원하는 사람들의 보수성에 가까운 심리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하던데요. 오히려 현실적으로 파탄이 날 수밖에 없는 가정, 화해가 불가능한 부모자식 간을 그려낸 작품들은 도리어 외면을 받는다고요. 근데 생각해 보면 이건 그만큼 사회가 학대에 길들여졌다는 소리도 되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