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 리뷰
영화 『장화, 홍련』은 다른 사람들의 리뷰라던가 줄거리 요약은 물론 심리학 서적에서 줄거리가 인용된 케이스 등을 미리 봤었기 때문에 TV에서 방영할 때 이 영화의 줄거리와 반전에 대해서 익히 알고 시청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인 수미의 환상- 아버지의 불륜으로 인한 어머니의 자살, 어머니의 시체에 깔려 죽은 동생 수연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만들어낸 가짜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봤는데, 아마 영화의 줄거리를 모르고 봤더라면 느낌이 상당히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영화의 반전을 모르는 상태로 영화를 봤더라면 이 영화의 이야기를 원혼이 깃든 집에 들어온 사이 나쁜 계모와 의붓딸들의 대립, 원혼의 영향을 받아 미쳐가는 한 가족 이야기라고 멋대로 추측했을 게 틀림없으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계모 은주(배우 염정아 분)의 행동이 (일단 내용이 주인공 수미의 망상이라는 점은 생각하지 말고 상황만 본다면) 두 자매가 반갑지 않지만 반가워하는 태도로 보이거나 동생을 초대한 식사에서 혼자 오버하면서 어떻게든 어색한 분위기를 띄우려다가 자매와 대립하면서 히스테릭해지고 폭발하는 등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외에도 연기파 배우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인지 영화의 몰입도가 상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도 오싹한 씬은 식사에 초대된 동생 부부 중 아내 쪽이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이었습니다. 연기도 연기지만 이 상황에서 비롯된 공포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영화를 본 분들은 이 장면을 잊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장면은 수미가 간직한 진실과는 다른 또 다른 반전을 알려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집이 이상하다는 대사도 여러 번 언급되고요.
영화의 비밀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를 살펴보니 주인공의 정신분열 징후들을 감지할 수 있었는데 애초에 영화의 시작부터가 정신병원에서 주인공 수미가 상담하는 것으로 시작되기도 하고요. 별장에서 아버지(배우 김갑수 분)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치료가 어렵다는 투로 이야기한다는 점, 수미와 수연 자매와 아버지가 이야기할 때 아버지는 수미의 이름만을 부르고 동생은 부르지 않으며 화면도 수미와 아버지만을 비추고 수연은 따로 비춘다는 점, 종종 아버지가 은주에게 약을 건네주는 장면들.
또 자매들과 계모의 생리일이 겹친 점, 동생 부부를 초대했을 때 어색한 분위기와 은주가 떠드는 이야기를 동생은 전혀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중간에 미친 사람 이야기도 일종의 복선) 수미와 아버지가 감정을 드러내놓고 다투는 장면 등 반전을 모르고 봤을 때 새어머니의 존재로 인한 부녀의 갈등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론 자신의 망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이라는 것이 드러나지요.
그리고 아버지가 은주와 한 침대에서 자지 않고 몰래 빠져나와 소파에서 자는 것도 실은 그 침대에 있는 것이 은주가 아니라 은주를 연기하는 수미라는 점을 인지하고 본다면 납득이 가는 장면이었고요. 게다가 영화의 절정쯤에 아버지 입으로 수연이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도 은주가 수연의 시체가 들어있으리라 추정되는 자루를 두들기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을 끝까지 모르고 봤더라면 과거 회상씬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미와 은주가 동일인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수미와 은주의 몸싸움 장면 중 수미가 은주의 손등을 가위로 찌르는데 오히려 손에 상처가 난 쪽은 수미라는 것, 몸싸움 와중에 보라색 외투를 걸치던 은주가 어느덧 수미와 같은 하얀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드러나요.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진짜 은주가 별장에 들어서면서 진실이 밝혀지는데 아마 영화를 당시 봤던 분들이나 반전을 모르고 보셨던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암시가 된 상황이었음에도 꽤 충격적이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반전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은주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면서 제법 충격을 받았거든요. 거기다 은주는 나름 수미를 안타깝게 여기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수미의 환상 속에서처럼 악랄한 여자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마지막 과거 회상씬에서 어머니가 자살한 시체를 끌어내리려던 수연이 옷장과 시신에 깔리는 장면을 보고도 수미와의 감정싸움 때문에 목격 사실을 묵인해 버리는 장면 때문에 집안을 떠돌던 원혼이 그를 공격하는 것도 납득이 가더라고요. 아무래도 집안을 떠돌던 원혼은 죽은 수연의 영혼이었겠지요?
모 영화 리뷰를 다룬 책에서 본 글에는 이 영화의 내용은 실제 장화홍련전과는 크게 관련 없고, 죄책감을 덜기 위한 수미가 자신만의 일인극을 사실처럼 만들어 거기에다 '장화 홍련'이란 제목을 붙인 셈이라고 설명이 되던데 기본적으로 가정 비극이라는 점과 여성들끼리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고전의 그것을 충실히 이어받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영화의 OST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영화 속 쓸쓸하고 서정적인 배경과 어울려서 굉장히 잊히지 않는 음악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