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 리뷰
『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은 참 흥미로운 책이라는 생각에 빌려온 책입니다. 제목도 그렇고 책에 딸린 부제를 보면 "시대를 풍미한 도적인가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가"라고 붙어 있어 기존의 생각에 좀 도전적인 느낌도 나더군요. 책을 처음 훑어봤을 때 등장하는 인물들이 홍길동, 임꺽정 이런 인물들이라 예전에 읽은 세계의 의적(義賊)과 관련된 역사적 진실을 파헤치는 책도 생각나고 아무래도 눈길이 갈 수밖에 없더군요. 하지만 책의 제목이 저래서 그렇지 이 책은 무조건 역사적 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결론부터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적인 기록들을 찾아 우리가 영웅이라 알고 있는 인물들의 더 정확한 실체를 찾아보려고 하는 책이지요.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흔히 의적이라 알려진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같은 인물들과 난을 일으켰던 홍경래, 동학군 지도자였던 전봉준, 실학파로 알려진 박지원과 정약용, 그리고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입니다.
앞에 언급된 의적들 중 임꺽정은 예전에 한문 수업을 배울 때 임꺽정에 대한 한문기록을 해석하면서 교수님이 그 실상에 대해 알려주신 적이 있는데, 임꺽정은 실제로 의적이 아니라 매우 위험한 도적으로 그가 의적으로 기억에 남게 된 것은 소설 『임꺽정』이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시더군요. 홍길동이나 장길산도 실제 역사 기록에서는 의적 노릇을 했다는 기록은 없으나 사람들 기억 속에 의적으로 남겨진 이유는 소설의 영향력이 실제의 기록보다 더 크기 때문이라고 추측이 가능할 수 있는데, 여기서 약간 의문점이 하나 생길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 들은 것을 기억한다면 소설 『임꺽정』은 미완인 상태에다 임꺽정의 의적 행위에 대해서 소설에서 자세히 알려주는 바는 없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임꺽정을 의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과, 이 책에서도 언급하길 홍길동은 한문소설 『홍길동』이 민간에 영향을 끼치기도 전에 대중들이 먼저 의리의 화신으로 받아들인 경향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결국 실제 역사적 인물들을 모티브로 삼은 의적 소설들은 먼저 민중들에게 영향을 준 게 아니라 오히려 민간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지연의』처럼 소설의 등장 덕에 민간에서의 확신이 더 강해질 수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의적활동을 행한 적이 없음에도 왜 사람들이 그들을 의적으로 받아들였느냐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추측해 볼 수 있는 이유 중 가장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게 바로 당시 사회의 혼란상입니다. 당시 조선시대의 모순점과 부패한 권력층에 의해 흩어진 민심이 지배층을 거리낌 없이 공격할 수 있던 인물에게 투영되었다는 점이지요. 두 번째는 지나친 빈부격차입니다. 백성들의 빈곤이 심화될수록 부유층에 대한 반발심리는 커지게 마련인데, 당시 도적들은 부유층만을 상대로 약탈 행위를 벌였기 때문에 그들의 목적이 의로운 데 있지 않았어도 당대의 사람들이 통쾌함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종의 돌파구로서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과는 관련 없는 자신들의 의적 신화를 형성했을지도 모릅니다.
의적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가서 책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개혁자/혁명가의 신화 역시 꼬집고 있는데요. 그 사례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후반에 열거되는 홍경래, 전봉준, 실학파 학자, 흥선대원군 같은 인물들입니다. 당시 조선시대의 모순점에 항거하여 난을 일으켰다는 '홍경래의 난'의 실상은 당시 조선시대의 제도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주체를 바꿀 뿐이었다는 지도층의 한계점과 실제 빈곤층이 자발적으로 협력한 것이 아닌, 반란 주도층이 제시한 수당 때문이거나 관군의 횡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란에 가담한 것으로 농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홍경래의 난은 그렇다 쳐도 사람들 사이에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 큰 전봉준이나 실학자 지도자, 흥선대원군은 어째서 이 항목에 들어가느냐 의문을 가지실 분들이 많을 텐데, 저자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사상이 개혁적이긴 했으나 그 개혁의 의미가 근대적인 것이 아닌 조선사회를 옹호하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노선은 각각 달랐다 해도 당시의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토지 독점, 권력가들에 의한 수탈에 가까운 정책들은 사회의 불안을 유발하기 충분했기에 각기 개혁의 방안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며 분명 그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을 경우 사회적인 안정을 이루기도 했지만 그것이 당시 제도의 모순(신분제와 같은 것)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던 것은 아니라고요. 즉, 그들의 개혁은 눈에 보이는 불안을 잠재울 수 있으나 사회적으로 변혁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진보적인 사상이 깔린 것은 아니었으며 어디까지나 조선왕조의 유지를 위했다는 점이 후대에 자꾸 간과되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그들이 사회의 불안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백성을 안정시키기 위해 애썼다는 점에서 그들의 업적 자체를 깎아내릴 이유는 없으나 그들에게 진보자/선구자적인 이미지를 덧씌울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지요. 다만 이런 보수적인 사상에 따른 행동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닌 당대의 다른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영향력이 컸더라면 정말 나중에 진보적이면서 민중적인 사상이 태어났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