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도서관 : 아서 새빌 경의 범죄』 리뷰
"성서는 인류의 모든 혼돈의 기원을 바벨이라 명명한다. '바벨의 도서관'은 '혼돈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은유이지만 또한 보르헤스에게 바벨의 도서관은 우주, 영원, 무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암호를 상징한다. 보르헤스는 '모든 책들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단 한 권의 '총체적인 책'에 다가가고자 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런 책과의 조우를 기다렸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보르헤스가 그런 총체적인 책을 찾아 헤맨 흔적을 담은 여정이다. 장님 호메로스가 기억에만 의지해 『일리아드』를 후세에 남겼듯이 인생의 말년에 암흑의 미궁 속에 팽개쳐진 보르헤스 또한 놀라운 기억력으로 그의 환상의 도서관을 만들고 거기에 서문을 덧붙였다. 여기 보르헤스가 엄선한 스물아홉 권의 작품집은 혼돈(바벨)이 극에 달한 세상에서 인생과 우주의 의미를 찾아 떠나려는 모든 항해자들의 든든한 등대이자 믿을 만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로 시리즈를 처음 접하였고 다음 허버트 조지 웰스의 『마술가게』로 두 번째 접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집까지 합치면 세 번째로 접하게 된 셈입니다. 일단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가 좋은 점은 실린 소설들이 왠지 환상적인 소재들을 품고 있어서 제 취향에 맞았던 것도 있지만 일단 단편들 위주인 것도 호감이고, 책이 얇은 편이라 빌려올 때는 가볍고 읽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 있었어요. 참고로 이번 시리즈인 오스카 와일드의 『아서 새빌 경의 범죄』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14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집이며 역시 가장 처음 위와 같은 문구가 실려있었습니다.
또 책의 서장 보르헤스의 글에는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다사다난한 인생 이야기가 짤막하게 실려있는데요.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라고 제대로 읽었다 할 수 있는 작품은 실은 「행복한 왕자」 정도에 불과한데 이것도 제대로 된 번역본을 읽은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유아대상으로 나온 삽화 위주의 동화책을 처음 접하고 철인 든 다음 이것이 유명한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란 것을 알고 도서관에서 우연히 단편집을 찾아봤다가 이 「행복한 왕자」 부분만 제대로 읽어봤다고 할까요?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기억으로는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외국의 애니메이션이 특집으로 어느 채널에서 방영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바로 해당하는 이야기가 이 단편집에 실린 「나이팅게일과 장미」와 「저만 아는 거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책에 첫번째로 실린 「행복한 왕자」는 워낙 유명해서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을 내용이지만 왠지 읽다 보면 여러 가지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여기선 왕자의 동상의 과거가 마치 살아있던 사람처럼 묘사되어 설마 죽은 사람을 동상으로 만들었나 했는데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과거 요절한 왕자의 모습을 본 딴 동상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 「행복한 왕자」가 살아있을 시절에는 굉장히 행복하게 지냈기 때문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 같아 보였지만, 그가 죽고 나서 동상이 된 뒤에는 도시 곳곳에 숨겨져 있는 사람들의 불행이 보였기 때문에 슬프고 괴롭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타인의 괴로움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데서 왠지 역사 속의 성자가 생각났다고 할까요. 또 지나가는 이야기지만 왕자가 사파이어를 나눠주게 된 성냥을 파는 소녀는 왠지 동화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나더라고요.
두번째 「나이팅게일과 장미」는 앞서 언급한 애니메이션으로 접한 적 있는 내용입니다. 그때도 애니메이션 결말을 보고 화를 낸 적이 있는데 원작도 실은 애니완 다른 내용이 없어서 황당했다고 할까요. 좋아하는 여성에게 데이트신청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을 위해 나이팅게일이 목숨을 바쳐 붉은 장미를 피웠더니 여성은 다른 남자랑 데이트 약속을 잡아버리고 학생은 붉은 장미를 쓰레기처럼 던져버리며 한심하다고 이야기하지요. 도대체 목숨을 걸고 장미를 피워낸 나이팅게일은 뭔 죄인가 이러면서 봤는데 생각해 보면 학생이 나이팅게일에게 꽃을 달라고 요구했던 것도 아니었고,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 헌신을 해봤자 그것을 상대방이 늘 알아주거나 받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먼저 요구한 것도 아닌데 멋대로 나서서 헌신하면 그것에 대해 상대방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자기만족이라도 남으면 모를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희생도 봐가면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번째 「저만 아는 거인」은 앞의 「나이팅게일과 장미」에 비하면 훈훈한 미담 같은 소설입니다. 거인이 자신의 정원을 소중하게 여겨 아이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원하는 봄이 찾아오지 않고 쓸쓸하게 생각한 거인은 한 약해 보이는 아이에게 친절을 발휘하여 정원에 데리고 옵니다. 그 일 이후 정원에는 많은 아이들이 놀러 오게 되고 거인의 거친 성정도 아이들과 만나면서 풀어지게 되는데 거인은 자신이 처음 친절을 베풀었던 아이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거인도 나이를 먹고 어느 겨울날 흰꽃이 핀 자리에서 거인은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어 아이와 함께 천국으로 떠나는 결말인데 아이의 존재는 말할 것도 없이 신적인 존재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사람과의 교류와 친절을 통해 봄과 같은 사랑이 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겠지만 결국 친절을 베풀면서 거인이 애정충만한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은 예전에 읽은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에서 거친 호랑이를 가족의 사랑으로 받아주어 더 이상 흉폭한 맹수가 아니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동질성이 느껴졌습니다.
네번째 「아서 새빌 경의 범죄」는 바로 책의 제목을 장식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사랑하는 약혼녀와 결혼을 앞둔 청년 아서 새빌 경은 손을 보고 관상처럼 그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는 수상술사 포저스로부터 그에게 살인의 운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의 운명이 살인범이라는 이야기에 공포에 질린 아서 새빌경은 자포자기를 한 것인지 기왕 운명인 거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짓겠다는 심보인지 두건의 살인을 계획하는데 -처음은 독살을 목적으로 독을 약으로 속였고 두 번째는 테러용 폭발 시계를 구함- 두 건 다 절묘하게 실패함에 따라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됩니다. 절망한 아서 새빌은 길을 가다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포저스를 만나 그를 물속에 밀어 떨어뜨려버리고 다음날 신문엔 수상술사가 자살했다는 기사가 뜨지요. 운명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아서 새빌 경은 약혼녀와 결혼식을 올리고 친하게 지내던 귀부인에게 실은 그 수상술사가 사기꾼이나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를 듣지요.
이 소설은 책에 실린 단편들 중에서 가장 분량이 긴데, 내용은 어딘가 폭소를 유발하는 블랙코미디스런 부분이 많은 단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언이 예언을 실현하게 만드는 신화 속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뒤틀었다고 할까요. 분명 살인을 다루는 이야기인데도 찜찜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소설 「캔터빌 유령」은 유령이 직접 등장하는 소설임에도 앞의 '아서 새빌 경의 범죄' 못지 않게 재미난 어찌 보면 유머 코드가 한가득인 단편입니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미국 공사인 오티스 씨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인과 네 자식들과 함께 유령이 나온다는 집으로 이사를 옵니다. 진짜 집에는 아내를 살해하고 그 벌로 아내의 오라비들에게 살해당한 남자의 유령이 나오는데 이사를 온 오티스와 그 부인, 그리고 자식들의 멘탈이 워낙 튼튼한지라 유령에게 도무지 겁을 먹지 않습니다.
유령이 있단 걸 받아들이긴 받아들이되 그것을 공포로 여기진 않습니다. 당황한 유령은 어떻게든 이 가족들을 내쫓으려고 수를 쓰나 번번히 골탕을 먹고 이 집안의 딸인 버지니아가 유령을 동정하며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걸 그만두길 요청하지요. 결국 유령은 버지니아의 착한 마음씨에 움직여 성불을 하고 버지니아와 그 가족들은 유령의 보답으로 선물도 받고 버지니아는 사랑하는 공작과 결혼한다는 내용으로 소설집에 실린 내용 중 가장 밝고 재밌는 단편이었습니다. 앞의 소설이 살인이 나와도 안 찜찜하다면 이 단편은 유령이 나와도 안 무서운 단편이었어요.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블랙 코미디 소설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