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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2비사』 리뷰

0I사금 2025. 3.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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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2 비사』는 책 표지에 크게 쓰여 있는 '그들이 밝히지 않는 의혹들'이라는 문구나 제목의 '비사(秘史)'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 등장하는 12가지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다 해결이 속 시원하게 되지 않은 어떤 의미로 미스터리로 끝나버린 사건들입니다. 만약 조선시대의 사건들을 다룬 거였다면 역사공부도 할 겸 옛이야기도 읽는 겸 재미 위주로 읽어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 등장하는 사건들은 현대사와는 떼어놓을 수 없는, 어쩌면 현재진행형인 사건들이 대다수인지라 읽으면서 좀 암울하다는 생각도 들곤 했어요.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사건들인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죄사건 또한 있고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정치 스캔들도 있습니다. 단순 정치적 스캔들이 아니라 살인 특히 책에 실린 백백교 사건이나 오대양 사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성연쇄 살인사건과 같이 규모가 큰 대형 살인 사건 같은 것으로 들어가면 옛 사건이라 하더라도 어딘가 오싹한 면모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책의 첫 장을 가장 먼저 장식한 것이 다름 아닌 백백교 살인 사건이라서요.


책 『경성기담』때보다 당대의 상황을 희생자들 측면에서 더 상세히 각색을 한 지라 더 생생하게 와닿게 되는데, 정치적 스캔들과 같은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런 흉악한 살인 사건들 역시 당대의 사회 분위기와 뗄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어서 조금 씁쓸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백백교 살인 사건의 마지막에는 전용해가 자살한 시신이 실은 가짜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실려있어서 다른 사건들보다 배로 소름이 끼치더군요. 


그런데 후대에 일어난 오대양 사건도 백백교 사건 희생자에는 못미치지만 역시 많은 사람이 죽었고 게다가 그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하나 그들의 집단 자살에는 의문점이 많이 남았다는 점에서 백백교 못지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외에도 정인숙 살인사건과 같은 것은 당대의 일그러진 정치 문화의 희생양이란 생각이 들었고, 사북탄광사건에서 임금체불당한 광산노동자들의 급박한 사정이나 또 그들에게 린치를 당한 노동조합 지부장의 아내였던 김순이 여사 이야기는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되어 결국 폭력으로 모든 것이 귀결되고만 당시 상황이 빤히 보여서 답답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외에도 조금 제삼자적인 시점으로 보자면 귀빈들의 밤시중 들어주는 섹스 스캔들 같은 경우에는 정치판의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곁들여지는 이야기도 종종 있어 이 부분은 좀 웃기기도 했단 생각. 하지만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거의 모든 사건들이 당대 어둔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지라 또 마냥 재미로 읽기만은 그렇다는 생각도요. 거기다가 저자분이 첨가하시길 당대의 사회분위기를 설명하면서 소문이 파다했던 봉고차납치 같은 도시전설이나 간호사 출신 계모가 전처 아이의 피를 빼서 죽였다는 괴담이 당대 사람들에게 파다하게 퍼져서 근거가 확실치 않았음에도 믿어졌다고 하는데요.


예전에 『경신대기근』을 리뷰하면서 썼듯 사회가 흉흉하면 흉흉해질수록 유언비어가 많이 퍼지거나 그럴싸한 괴담들이 많이 퍼지기 마련이라는 공통점이 그 당시에도 드러난 게 아니었나 싶어요. 도시전설이 단순 흥미위주가 아니라 당대의 사회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서 언급되는 많은 사건들은 미스터리한 결말을 남겨둔 것이 많고 그나마 진상조사도 거의 2000년대 들어서 시작된 것이 많다고 하더군요. 책의 마지막장을 장식하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이나 용의자로 잘못 몰려 고초를 겪으신 분들처럼 아마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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