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도서관 : 미다스의 노예들』 리뷰
"성서는 인류의 모든 혼돈의 기원을 바벨이라 명명한다. '바벨의 도서관'은 '혼돈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은유이지만 또한 보르헤스에게 바벨의 도서관은 우주, 영원, 무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암호를 상징한다. 보르헤스는 '모든 책들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단 한 권의 '총체적인 책'에 다가가고자 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런 책과의 조우를 기다렸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보르헤스가 그런 총체적인 책을 찾아 헤맨 흔적을 담은 여정이다. 장님 호메로스가 기억에만 의지해 『일리아드』를 후세에 남겼듯이 인생의 말년에 암흑의 미궁 속에 팽개쳐진 보르헤스 또한 놀라운 기억력으로 그의 환상의 도서관을 만들고 거기에 서문을 덧붙였다. 여기 보르헤스가 엄선한 스물아홉 권의 작품집은 혼돈(바벨)이 극에 달한 세상에서 인생과 우주의 의미를 찾아 떠나려는 모든 항해자들의 든든한 등대이자 믿을 만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이번에 읽은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야성의 외침』을 쓴 작가 잭 런던의 단편집입니다. 잭 런던의 대표작인 『야성의 외침』은 번역본에 따라 『야성의 절규』 또는 『야성의 부름』 등 다양하게 제목이 번역되는데 몇 번 블로그에서 리뷰를 한 바 있습니다. 여러 번 읽게 되는 것이지만 그 소설 자체가 워낙 매력 있고 흡입력이 강해 내용을 뻔히 알면서도 빠져드는 셈인데요. 실은 잭 런던의 소설은 이 『야성의 외침』을 빼면 많이 접한 적은 없고 가끔 『야성의 외침』 뒤에 같이 실려있는 단편을 몇 편 더 읽은 기억은 나는데 대표작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좀 내용이 가물가물한 게 탈입니다. 물론 제가 읽은 잭 런던의 대표작들이 흥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나름 소설의 메시지도 또렷하여 인상적인 구석도 없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야성의 외침』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고 이 작품을 좋아하다 보니 나머지 소설들에는 너무 기대를 갖거나 아니면 너무 기대를 낮추어서 그런지 다르게 접한 잭 런던의 단편에는 큰 인상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바벨의 도서관에는 제 취향의 소설이 많아서 기대를 하면서 빌려온 경향이 있습니다. 현재 도서관에 비치된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 이제 제가 친숙하게 느끼는 아는 작가들의 단편집은 거의 빌려본 지라 이제 알만한 작가들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책 시리즈를 발견하고 빌려온 것이 바로 잭 런던의 『미다스의 노예들』입니다. 하지만 역시 『야성의 외침』 때문에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걸까요? 생각보다 몰입도가 약간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용 자체로만 보면 흥미로운 구석은 많은데, 다만 『야성의 외침』 같은 스릴감을 느끼기에는 좀 부족한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실려있는 소설은 총 다섯편인데 여기선 잭 런던의 태어난 곳과는 달리 그의 방랑적인 생활 탓인지 원주민들 관련 이야기가 제법 실려있었습니다. 첫 번째 소설 「마푸히의 집」은 호수 근처에 진주 채집을 업으로 삼는 어느 원주민 일가가 커다란 진주를 발견하여 그것으로 집을 마련하는 단꿈을 꾸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진주를 발견한 마푸히는 빚 때문에 그 진주를 강탈당하고, 가족들에게 비난을 받지요. 하지만 허리케인이 들이닥쳐 마푸히의 집을 비롯 모든 것이 휩쓸리고 진주를 사간 배도 풍랑을 만납니다. 마푸히의 어머니도 허리케인에 휘말려 바다에 떠밀려갑니다.
마푸히의 어머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겨우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와중에 죽은 선원의 시체에서 빼앗긴 진주를 발견하여 되찾아오고 가족들에게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무시무시한 허리케인의 묘사와 힘든 생존 묘사가 태반이지만 의외로 해피엔딩을 맞는 소설이지요. 이어지는 두 번째 소설 「삶의 법칙」은 한 원주민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내용입니다. 살기 위해서 동물- 커다란 수사슴을 사냥하여 죽이는 기억이 그 생애에 크게 각인되어 있는데, 사람의 삶이란 좋든 싫든 죽음을 곁에 두지만 결국 살고 싶어 한다는 인생의 교훈이 느껴지는 단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세번째 소설 「잃어버린 체면」은 모피 도둑이 어떤 원주민 부족에게 붙잡혀 고문위기를 겪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고문으로 인해 인간의 바닥까지 떨어지는 고통은 겪고 싶지 않았기에 꾀를 내어 자신에게 피부를 단단하게 하는 특별한 약이 있다고 그들을 속입니다. 그는 엉터리약을 조제하여 자신의 목에 바르고 그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고문할 원주민더러 자신의 목을 도끼로 쳐보라고 하지요. 원주민은 약을 얻을 욕심에 그 말대로 하다가 모피도둑을 편하게(?) 죽게 만들고 그 일로 부족 사람들에게 체면을 잃어 그동안의 이름을 잃고 '잃어버린 체면'이란 이름이 되었다는 뭔가 굉장히 오싹한데 웃긴 이야기입니다.
네번째 소설 「미다스의 노예들」은 잭 런던이 생전 사회주의 쪽으로 관심을 가졌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게 해주는 소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미다스의 노예들'이란 여기서 거부를 협박하는 어떤 무정부주의자 조직을 일컫는데 다만 이들의 행동은 조직적이고 위협적이긴 하데 자신의 타깃이 된 대상의 약점을 잡기 위해 어린 아이나 자식들을 인질로 삼는 등 하는 짓은 거의 갱단의 그것이랑 다를 바 없어서 영 읽다 보면 께름칙한 소설이기도 해요. 결국 그 조직에 맞선 인물은 자살을 하고 친구에게 그 조직의 실체를 밝혀 사람들에게 위험성을 인지하게 하고 그들을 타도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깁니다.
다섯번째 소설 「그림자와 섬광」은 화자인 나가 절친한 두 친구의 싸움에 말려드는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두 친구의 삶을 '나'의 입장에서 풀어주는데, 경쟁도 적당한 것이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할까요? 처음엔 잘생긴 흑발과 금발의 청년들이 어린 시절부터 무모할 정도로 투닥거리는 수준으로 나오더니 나중에 이 둘이 자기들 몸에 화학실험을 해서 아예 몸을 안 보이게 한 뒤 싸움을 벌여 주위 사람들을 미치게 하다가 결국 둘 다 존재가 증발하고 마는데요. 두 청년의 경쟁 모험담처럼 시작하더니 결말은 왠지 『지킬박사와 하이드』나 『투명인간』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되어 좀 기묘하다는 느낌을 받은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