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예능 및 기타

『좀비의 역사(Zombies: A Living History)』 리뷰 (2017. 12. 27. 작성)

0I사금 2024. 11. 12. 04:19
반응형

집에서 뒹굴다가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하나 보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좀비의 역사』라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재미있게 감상을 하고 나중에 자료를 더 찾아볼까 검색을 했더니 아무래도 원제는 'Zombies: A Living History'로 추정되며 Imdb의 자료에 따르면 무려 2011년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보면 외국 다큐는 참 재미있는 소재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좀비라는 가상의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다방면으로 조사한 다큐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 처음엔 좀비 소재니까 좀비 소설이나 영화, 혹은 게임 같은 가상 매체의 발전사를 다루는 다큐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역사 속의 좀비 모티브를 폭넓게 찾아가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좀비 영화 같은 참고 자료도 등장하며 여기 등장하는 좀비 전문가들은 관련 매체 종사자들이더군요. 그중에 눈에 띄는 이름은 맥스 브룩스로 바로 유명한 좀비 소설인 『월드워 Z』의 저자더군요.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대강 정리한다면 좀비의 형태나 모델은 다양한 문화권을 초월하여 비슷한 형태로 전설처럼 전해지는데요. 옛날부터 사람들에겐 망자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신앙이 있었고 설화 속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 산 자를 습격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좀비는 부두교의 약물과 주술로 꼭두각시가 된 존재를 이르는 것이지만 우리가 받아들이는 현대 좀비의 원형으로는 아랍 전설 속의 구울, 중국 전설 속의 강시, 북유럽신화 속의 드라가, 아메리카의 웬디고 전설 등등 모티브가 될 만한 존재는 많이 있다고요. 이 되살아난 망자가 산 자를 습격하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예부터 가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형상화한 것이며 옛날 사람들은 실제로 이것을 믿었기 때문에 장례 절차에서도 망자가 살아나는 것을 방지하는 과정을 지켰는데 이것 또한 각각의 문화권에서 비슷하게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즉, 좀비가 상징하는 것은 1차적으로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다음으로 좀비의 특징으로 산 사람을 습격하여 잡아먹는 것을 들 수 있으며 망자가 살아나 산 사람을 잡아먹는 일은 옛 전설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것인데 망자가 이런 행동으로 공포를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식인에 대한 인간의 거부감과 금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요.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좀비라는 소재가 각광받는 이유는 사회가 발달하면서도 그 사이에는 인간들끼리의 불신이 심해지고 어디에서 테러나 사고를 겪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심해지기 때문이라는 듯. 매체에서 그려지는 좀비의 형태는 개인이 아닌 떼로 몰려다니며 숨어있는 생존자들을 급습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다름 아닌 과거 치열한 전쟁터의 모습-포위전을 닮았기에 좀비물에는 전쟁에 대한 인간의 공포심이 반영되었다고 해석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좀비의 원인이 불분명하거나 전염성이 있다는 점은 과거 어마어마한 희생자를 낸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의 유행과 닮았다고도 하는데 좀비의 원형은 전설 속의 괴물에 가깝지만 동시에 현대 인류에게도 뿌리 깊게 남겨진 트라우마, 전쟁과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반영한다고요. 더 재미있는 점은 좀비 사태가 발발할 경우 생존자들에 초점을 맞추며, 현대에서 좀비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데요. 1퍼센트의 가능성이라고 하지만 다큐 중간중간 좀비를 맞닥뜨릴 때 살아남을 수 있게 설명해주는 생존 방법은 보기에는 일종의 유머 코드 같아도 굳이 좀비 사태가 아닌 갑작스러운 재난에도 유용할 법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다큐의 내용대로라면 좀비물은 결국 전쟁과 전염병과 같은 인간의 재난을 은유하는 거니까요. 

인상적인 것은 좀비 사태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총을 들고 싸우는 미국 영화의 마초 타입 주인공들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로 좀비 사태가 일어나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은 가장 첫 순위로 의사와 농부입니다. 특히 식량을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 될 것이기 때문에 농부가 가장 귀하게 될 것이라고요. 또한 좀비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대처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좀비 분대'라고 하는 일종의 좀비 동호회라고 할까 좀비 분장을 하면서 좀비 사태의 현장을 재현하는 일을 하는 장소가 나오기도 합니다. 여기 참여하는 사람들의 직업이나 계층도 다양하고 핼러윈처럼 좀비 분장을 하면서 놀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고에 대비하는 연습도 하고 있어 일종의 재난 대비 연습을 좀비 컨셉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가능성이 1퍼센트라도 있다는 이야기를 보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이 다큐는 좀비를 웃고 넘어갈 농담거리가 아닌 글로벌적인 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상징물이라고 해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