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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실마릴리온』 1권 리뷰

by 0I사금 2025.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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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극장 개봉하였을 당시 저도 간간히 도서관에서 원작에 해당되는 소설이나 자료집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소설 시리즈는 제대로 전권을 완독한 게 최근의 일이고, 당시 도서관에는 제대로 된 번역본이 많지 않아 듬성듬성 읽었어야 했는데 그 와중에 반지의 제왕 이전의 역사를 다룬 『실마릴리온(다솜미디어)』이 눈에 띄더군요. 흥미로워 보여서 빌려왔건만 책은 『반지의 제왕』과 달리 소설 형태라기보단 일종의 역사서 형식으로 이루어진 데다가 책의 분량이 현재 빌려온 '씨앗을 뿌리는 사람'판처럼 두 권으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한 권으로 이루어진 지라 책이 두껍기도 하고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대해서 잘 아는 바가 없으므로 여러모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도 많았고요. 참고로 당시 제가 빌려봤던 『실마릴리온』의 번역본은 다솜미디어의 책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실마릴리온』의 내용 상당수를 잊어버리고 그나마 기억하는 것이 세상이 창조될 때 다른 신들에게 반(反)하여 악신이 된 멜코르라는 신 하나와 사우론이 실은 멜코르의 부하격이었다는 것, 페아노르라는 요정이 만든 실마릴이 만악의 근원이었는데 정확하게 어떤 사고들이 일어났는지는 잊어버렸고 단순 기억하는 것은 멜코르가 반성하는 척하면서 결국 실마릴을 빼앗으려다가 거미괴물 웅골리안트에게 죽을 뻔한 사고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빌려왔을 때 애먹었던 기억은 있지만 기왕 두 번째 읽는 것이기도 하고 『반지의 제왕』도 전권을 다 읽었겠다 『후린의 아이들』도 읽었겠다 이번 도서관에서 '씨앗을 뿌리는 사람'에서 나온 『실마릴리온』을 다시 발견했을 때 망설임 없이 두권 다 빌려왔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알게 된 것이지만 책표지를 장식하는 인물은 발라들 중 한 명인 울모인데 왠지 울모는 멜코르를 제외한 다른 발라들 중에서 월등하게 비중이 많아 보이더군요. 홀로 커플이 아니라 솔로라서 더 눈에 띄기도 하고요.


책이 시작하기 전 저자 크리스토퍼 톨킨의 서문에서 이 책이 실은 아버지 톨킨 사후에 자료를 모아서 완성하여 냈다는 언급은 물론, 고유명사가 많아 따로 사전처럼 후반에 실었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그도 그럴 것이 책의 2권의 절반은 색인과 같습니다. 보면 두께가 보통이 아닌지라 여기에 등장하는 인명과 지명, 사물 이름들이 엄청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다보니 두 번째 읽는 것이라 하더라도 상세한 부분에서 이 이름이 어느 부분에서 언급되었는지, 어디를 말하는 곳이었는지 읽으면서 헷갈렸던 부분은 여전히 많았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읽었다가 잊어버린 부분들을 많이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일단 다른 건 다 잊어버렸어도 멜코르의 존재 하나만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판이었으니 이 『실마릴리온』에서 차지하는 멜코르의 행적과 개성은 확실한 편입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서 기억이 남는 만큼 다른 발라들보다 애정이 가는 편이기도 했어요.


읽으면서 묘하게 느낀 거지만 완전한 존재인 창조주 에루-일루바타르가 발라들을 창조하고 아르다(지구)의 통치를 맡겼는데 멜코르 홀로 창조에 대한 욕망과 다른 발라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타락하여 악신이 되는 과정을 보면 얘는 날 때부터 악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겠지만 창조에 대한 열망은 인간에게도 있는 지라 이것이 그토록 나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에서 역시 언급하기를 첫째 자손인 요정들은 발라들과 많이 닮았지만 둘째 자손인 인간들은 그 행동이나 성격이 발라들보다 멜코르와 더 닮았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아마 저자인 톨킨은 인간의 파괴적인 면의 근원과 형상을 멜코르라는 존재에 빗대었다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멜코르는 자신과 닮았다는 인간들을 좋아한게 아니라 미워했다고 하는데 책의 묘사에선 그들을 증오하고 두려워했다는 언급까지 나와 미묘한 느낌이 들더군요. 자신의 가장 부정적인 면모를 닮은 것은 혐오하는 본능이려나요. 다만 인간이 모르고스의 영향력 아래 타락해 가는 것을 보고도 딱히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없는 발라들의 행적은 왠지 짜증이 치밀기도 했습니다. 요정도 발라들의 말을 안 듣는데 인간이 말을 듣기야 했겠습니까만은...


물론 책속에서 보이는 멜코르의 행각은 창조보다는 파괴에 가까운 편이긴 하나 흔히 파괴 이후 창조가 있다는 격언 같은 것을 생각하거나 결국 멜코르의 행적은 모두 에루의 뜻과 계획에 부합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보면 결국 이 멜코르의 타락도 하나의 계획인 건지 애초에 멜코르가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도 예상밖의 일이었던 게 맞는 건지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보면 멜코르의 악행 자체가 처음부터 그렇게 짜인 운명이라면 멜코르의 존재 자체도 왠지 연민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아서요. 여기서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을 불로 묘사하고 있는데, 소설 상에서 묘사되는 멜코르의 이미지는 세상의 검은 적 - 후에 페아노르가 명명한 '모르고스'란 이름 - 이란 이름과 함께 요정들이 사는 곳을 화염으로 뒤엎어 파괴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화산 폭발의 이미지가 떠오르더군요. 즉 멜코르는 파괴적인 불의 이미지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습니다.


멜코르와 비슷하게 부정적인 면모가 소설 상에서 많이 묘사되긴 하나 정이 가는 인물은 사건의 중심이 될 '실마릴'을 만든 놀도르 요정 페아노르입니다. 자신의 독선 때문에 그릇된 길을 가는 요정이긴 하나 왠지 책을 읽다 보면 페아노르의 존재에서 어딘가 애정결핍의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페아노르가 소설 상에서 매우 아름답고 사랑받는 요정이라고 묘사는 하나 뭔가 근원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다고 할까요. 그리고 어쩌면 요정인 그가 방황하는 모습이나 잘못된 방법을 택하는 모습은 결코 실드야 칠 수 없겠지만 묘하게도 인간의 방황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므로 인간을 많이 닮은 그가 유독 인상에 깊이 남은 건지도 모릅니다. 실마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공교롭게도 그가 만든 실마릴은 주위 사람들을 피로 몰고 가면서 현실에서 도시전설로 전해지는 저주받은 '피의 다이아몬드'가 떠오르더군요.


책의 1권은 인간 영웅 베렌과 루시엔 이야기와 후린이 잡혀들어가는 이야기로 종결되는데 이 베렌과 루시엔 두 커플은 예전에 『실마릴리온』의 번역서를 읽으면서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막연히 베렌이 하는 것 없이 영웅 되었다는 편견 때문에 싫어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생각보다 고생을 많이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쉽게 영웅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지만 싱골과 멜리안의 왕국에 들어온 그에게 위대한 운명이 지어졌다는 언급은 뭔가 운명론적인 것을 떠올리게 하여 역시 될 놈만 되는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그 고생담을 다시 읽어가면서도 별로 정이 안 가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상당수가 비극으로 끝나는 이 『실마릴리온』의 역사에서 베렌만이 해피엔딩을 맞은 게 좀 아니꼬운 건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비극적인 『후린의 아이들』 이야기라서 더 그런 느낌을 받은 건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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