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러브, 데스 + 로봇』 1시즌 마지막 리뷰입니다. 좀 더 일찍 보려고 했건만 추석 연휴라던가 다른 데 정신이 팔려서 1시즌 나머지 회차를 보는 것이 좀 늦어졌는데요. 어쨌든 이번에 18화나 되는 분량을 전부 완주했고, 각각 회차 별로 짧은 감상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총평을 말하자면 일단 한 화당 분량이 길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고, 소재가 다방면으로 다양하며 에피소드의 주인공들도 획일화되지 않아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특히 현 사회에 대한 풍자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한 의도도 충실하며, 작화의 퀄리티도 훌륭한 편. 그런데 작화의 비주얼 역시 획일화된 게 아니라 어떤 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실사체에 가깝지만, 어떤 작품은 미국이나 일본의 2D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것도 있고, 어떤 건 데포르메가 강하지만 픽사나 디즈니 애니를 떠올리게 하는 3D 애니메이션도 있는 등 에피소드마다 비주얼이 다르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15화 : 또 다른 역사

2차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가 죽지 않았다면 하는 발상으로 여섯 가지 이프(If) 상황을 구현한 에피소드입니다. 역사적인 소재에서 따 왔고, 만약 여기서 다른 변화가 생겼다면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흥미로운 상상에서 출발한 에피소드예요. 캐릭터의 비주얼도 옛 미국 애니메이션처럼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이긴 합니다만 전개는 굉장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코미디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황당한 설정이 자꾸 첨가되는 것은 무리수였다는 생각.
그리고 이 작품의 특징이 청소년 관람불가 관람대에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 성적인 묘사에서 가끔 제작진이 폭주를 한다 싶은 묘사가 간간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또 다른 역사」 에피소드가 가장 심했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에피소드들은 성적인 묘사가 배경을 위한 것이거나 등장인물의 설정을 위해 등장하기는 하지만 여긴 굳이 저런 설정을 넣을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불필요했어요. 그림체가 워낙 단순해서 야하다는 생각도 안 들었지만. 아무래도 코믹한 캐릭터를 가지고 연출을 가볍게, 메시지는 사실적으로 했으면 더 나았을 에피소드였습니다.
16화 : 행운의 13

개인적으로 이번에 감상한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였습니다. 배경은 근미래의 전쟁터로 주인공인 콜비 커터 중위는 계속 사고를 일으켜 탑승한 군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행운의 13호' 비행기의 파일럿이 됩니다. 여기서 비행기의 숫자가 13이고, 그 숫자가 서양에서 불길한 취급을 받는 것은 굳이 조사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며 별명은 반어적인 의미란 걸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주인공인 중위에게 언젠가 불길한 사건이 터지는 게 아닐까 불안한 마음으로 보게 되기도 했는데, 그래도 자기가 담당하게 된 비행기라고 아껴주는 걸 보면 주인공인 콜비가 시청자인 나보다 멘탈이 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콜비 커터 중위는 미신은 믿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굴면서 13호에 탑승하고, 그가 파일럿이 된 후 비행기에는 어떤 사고도 나지 않게 됩니다. 이건 마치 비행기에게도 영혼이 있어 자신에게 걸맞은 인물을 기다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행운의 13호'가 콜비를 만난 이후 진짜 '행운의 13호'로 변화하게 된 건 설화 같은 데서 흔히 나오는 특정한 귀물이나 신묘한 물건이 자신에게 걸맞은 주인이 오기까지 기다렸다는 구도가 떠오르더라고요. 시간이 갈수록 콜비 역시 '행운의 13호'에게 애착을 가지게 되는데, 이 에피소드는 어찌 보면 콜비 커터와 '행운의 13호'의 우정 이야기라고 해석해도 좋을 정도.
다만 그 대상이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비행기라는 게 특이한 점이지만 설화에서 특정 물건이 시간이 지나 영혼이 깃든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상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찌 보면 콜비 커터 중위가 13호의 파일럿이 되었을 때 미신은 믿지 않는다며 비행기 내에서 불길한 소리를 자제하며 신경 쓴 것 또한 '행운의 13호'를 변화하게 만든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인간이나 사물이나 입에 담는 '말'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교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뻘한 소리지만 왠지 13호를 인격화한다면 콜비와 같은 여성 군인일 것 같다는 망상도 들더라고요. 이상하게 13호에게 성별을 부여한다면 남성일 것 같지는 않았다는 느낌이랄까요.
막판 엔딩에선 적군의 습격으로 비행기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 되자, 13호를 적군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던 콜비는 어쩔 수 없이 자폭 스위치를 누르고 빠져나가는데요. 하지만 적군들이 몰려오는 상황에서도 자폭 시스템은 시동되지 않고 콜비는 그 모습을 보면서 13호가 죽고 싶지 않은 거라며 슬퍼합니다. 하지만 적군이 13호 내부에 다 들어온 순간 자폭 시스템이 발동하여 적군과 13호는 함께 폭발합니다. 이어 콜비와 군인들은 무사히 귀환하게 되고요. 개인적으로 이 에피소드는 독특한 소재와 내용도 맘에 들었지만, 영화를 방불케 하는 시원시원한 공중전이라던가 핀치에 몰리며 싸우는 군인들의 모습 등 긴장감 있는 장면이 많아 몰입도도 강했습니다.
17화 : 사각지대

그림체는 독특했지만 부연 설명이 너무 생략된 것 같아 불친절하다고 생각된 에피소드였습니다. 내용은 어떤 물건을 싣고 달리는 차량을 탈취하려는 사이보그들이 차 안에 대기한 로봇들과 처절하게 싸우며 원하는 물건을 갖고 깜짝 반전을 선사하며 돌아가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화나 캐릭터도 옛 미국 히어로물을 연상시키는 비주얼이라 독특하긴 하지만 사이보그들이 어떤 의뢰를 받았는지, 탈취하려는 칩은 무슨 용도인지 생략된 부분이 많아 액션 화려하고 비주얼 독특하다는 정도의 감상만 남던 에피소드였습니다.
18화 : 지마 블루

1시즌 마지막 에피소드이자 가장 독특했던 에피소드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내용은 기자 클레어가 유명한 화가인 지마 블루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떠나면서 시작합니다. 클레어의 말에 따르면 지마 블루는 푸른 스크린을 그림에 담는 특징이 있으며 더 큰 벽화를 제작하기 위해 불법으로 자기 몸을 로봇으로 개조했다는 소문까지 있는 인물. 지마는 클레어에게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길 작품의 일부를 보여주며 수영장을 청소하는 어떤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 로봇의 주인은 자신이 만든 로봇 중 수영장을 청소하는 로봇에게 애착을 느껴 그를 여러 번 개조하여 지능을 갖게 해 주고, 로봇은 주인이 죽은 뒤에도 오래 살아남게 되었다고요. 청소 로봇은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지마 블루이며 클레어는 지마가 원래 인간이 아니었냐며 충격을 받습니다. 얼마 후 지마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물을 가득 채운 수영장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분해한 후 원래의 모습, 수영장을 청소하는 로봇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에피소드의 엔딩.
일단 이 에피소드는 그림체가 옛 미국 카툰을 연상시키는 그림체라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에피소드와 달리 격정적인 갈등이나 폭력 수위, 성적인 묘사가 일절 들어가지 않아 깔끔하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다른 에피소드와 비교하면 주제도 매우 의미심장한데 주인공인 지마 블루는 그동안 작품을 그리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우주는 또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구하다가, 과거 시절 자신이 가장 처음 목격한 '블루'를 잊지 않고 떠올리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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