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는 원래 추리소설가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지만 도서관에서 찾아본 책 중에는 꼭 추리소설 말고도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 더 있었습니다. 저번에 블로그에 리뷰를 한 소설 『괴이』도 그렇고 뭔가 초자연적인 소재를 끌고 온 기담 풍의 소설들 역시 쓴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오히려 지금까지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 소설보다는 이런 유의 소설이 저한테 더 잘 맞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혹시 비슷한 느낌의 다른 소설은 없는가 도서관에서 책을 더 찾아봤더니 '괴수전'이라는 같은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비슷한 표지의 책이 한 권 더 있었는데 흥미가 생겨서 책을 꺼내봤지만 일단 『괴이』처럼 단편집은 아니요 책의 두께도 제법 되어서 처음엔 읽을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원래 단편집이 더 취향이므로. 그래도 다른 종류의 책은 이미 읽은 것 빼고는 발견할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괴수전』을 빌려왔는데요.
일단 일본 소설에서 여러 종류의 기담 풍의 소설을 접한 적이 있지만 보통 초자연적인 소재라고 하더라도 신이나 귀신, 유령이나 혹은 일본의 전통 요괴에 가까운 것이 태반이지 '괴수'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등장하는 경우는 많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이런 소재를 선택한 것이 특이하다고 여겼는데 일단 책을 읽으면서 좀 힘들었던 점은 현대가 배경이 아니라 일본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 입장에서는 상당히 접하기 힘든 단어나 관직 이름 혹은 사회 구조가 등장하기에 낯선 점이 많았고 거기다 등장하는 인물도 상당히 많아서 처음에 읽을 때는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기까지 했습니다. 소설이 두꺼운 이유 중에 하나가 아무래도 소설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기대와는 달리 괴수가 일찍 활약하는 것이 아니라 프롤로그 부분에서 잠깐 등장한 뒤 중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파트가 좀 긴 편이라 살짝 지루하기까지 했습니다.
괴수가 등장한다고 하기에 처음엔 일본에 전해지는 거대한 요괴 전설을 모티브로 한 것인가 싶었지만 오히려 괴수의 정체 자체는 일본 특유의 괴담이나 기담에 많이 등장하는 어느 오래된 가문에 전해지는 비술이나 저주와 같은 것으로 생겨난 존재라는 게 후반에 드러납니다. 이런 점 때문에 괴수가 등장하는 소설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괴수물보다는 일본 특유의 괴담이 융합된 이야기 같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할까요.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는 괴수의 탄생이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에서 나타난 그런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그 반전성에 좀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런 소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특유의 괴담 문화나 민속 문화가 상당히 발달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과 함께 조금 부러움도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에도시대에 등장하는 떠돌이 낭인이나 '지네'라고 비유되어 불리는 스파이들의 모습 등 당시 시대적인 색채를 많이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괴물의 등장만이 아니라 전쟁 이후 여러 악연으로 인해 원수지간이 된 두 지역 나가쓰노와 고야마를 배경으로 여러 사람들이 얽힌 이야기이기도 한데, 여기서 괴물을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고야마의 우류 가문이며, 그들이 옛적 자신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주술로 만든 것이 소설 속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괴물입니다. 또한 이 괴물을 잠재울 수 있는 것도 우류 가문의 피를 이었으나 일족에게 버려진 쌍둥이 남매 소야 단조와 아카네로 이 쌍둥이 남매의 비극이 소설의 사건을 제공하는 발단이 되었다는 게 서서히 드러납니다. 쌍둥이 남매가 거의 이야기의 근원에 있기에 설마 했는데 이 쌍둥이가 어긴 금기가 결국 산에 묻힌 괴물을 다시 깨우게 되었다는 게 밝혀지는데 결국 쌍둥이 중 아카네의 희생으로 괴물을 저지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자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그 와중에 애꿎은 희생도 엄청나게 많았지만 일단 주요인물들 중 상당수는 살아남긴 합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좀 찜찜했던 것은 소설 내에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하지만 결국 한 사람의 희생(정확하게는 쌍둥이 남매가 둘 다 희생되긴 하지만 오빠인 소야 단조는 자멸에 가깝고)으로 사건을 끝내야 했다는 점입니다. 묘하게도 일본에서 번역된 소설이나 만화 등지에서는 이런 패턴이나 결말을 가진 작품을 많이 봤다는 게 떠올랐거든요. 그나마 자발적인 희생이라는 점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 사람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맡게 하는 구조는 뭐랄까 소설 자체의 재미를 떠나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줄 수밖에 없어요. 특히 작 중 쌍둥이 남매의 비극적인 생애는 남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태어났을 시절부터 정해졌단 점에서 말이죠. 나름 소설의 반전이라면 스파이 같았거나 뭔가 특별한 비밀이 있을 거 같은 인물들 떠돌이 낭인 소에이나 화가 엔슈는 뭔가 숨기는 게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런 것 없이 실은 원래 이미지 그대로가 그 정체였고 예상 외의 인물들이 신분을 숨기고 있었다는 점이 특이한 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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