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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리뷰

by 0I사금 2024.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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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시리즈에 빠지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원래 추리소설은 크게 즐겨보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라 일부러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 부류를 찾아봤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간혹 일본의 추리소설가들 중에는 추리와는 약간 궤도를 달리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나 공포소설들을 쓰는 경우들을 본 적이 있고 일본 추리소설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에서도 그런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제 흥미를 끌었던 셈입니다. 물론 예전에 몇 번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 몇 편을 읽은 적은 있는데 생각보다 크게 흥미를 끌지는 못한 터라... 아무래도 이것은 제 취향이 많이 반영되기 때문인 듯한데요. 미야베 미유키는 우리나라에서 추리소설이 영화화도 되고, 드라마로도 리메이크 된 경우가 있어서 인기도 많고 인지도도 있고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종류의 소설도 많은지라 그중에서 추리소설이 아닌 기담이나 미스터리 풍의 재미있는 소설도 더러 섞여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괴수전』이라던가 『괴이』라던가 『피리술사』라던가 제 흥미를 끈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시리즈가 다 에도시대 시리즈라는 공통점이 있고요.


그중에서 이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는 예전에 한번 기담류 소설집이라고 생각해서 빌려본 기억이 있는데, 온전히 미스터리라기보단 기담의 형식을 약간 빌려온 에도시대 단편 추리극에 가까웠던 소설이라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좀 실망했던 것도 같았고 당시에는 리뷰를 활발하게 작성했던 시절도 아니었던 지라 한번 읽고 넘어갔다가 기왕 에도시대 시리즈를 읽게 되었으니 이번 소설도 재탕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눈에 들어온 이 책을 빌려왔습니다. 처음에 희미한 기억으로는 이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는 각각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별개의 단편집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봤더니 이 소설집도 하나의 연작 시리즈로 에도 시대 당시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그것을 수사하던 '오캇피키'라는 직책을 맡은 하급 관리 에코인이란 절의 모시치란 양반이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더라고요. 다만 모시치는 어디까지나 사건의 절정에 등장하여 범인을 수사하는 정도고 이야기들을 이끌어가는 각 단편의 다른 주인공들입니다.


첫 번째 소설 「외잎 갈대」는 주위로부터 수전노 취급당하는 번창한 초밥가게의 주인 도베에가 살해당하는 사건과 그의 딸 오미쓰가 나눠주는 음식 덕분에 한때 굶주림을 면했던 청년 히코지의 추억이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과거 정을 베푼 부잣집의 소녀와 그녀에게 은혜를 입은 소년의 사랑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이루어지는 이야기 같으나 의외로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은 훈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면서 그런 신파 코드는 배제해버리는 특성이 있어 신선하더군요. 오히려 수전노 취급받는 도베에는 일방적인 자선은 사람의 자립을 막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히코지가 국수가게에 취직할 수 있도록 몰래 힘써준 데다가 오히려 힘든 사람에게는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 올바른 일이라는 사고를 지닌 인물이란 게 드러나고 그의 살인도 원한보다는 그저 그의 돈을 노린 해프닝에 가깝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히코지의 사랑 또한 일방적인 것으로 오미쓰는 원래 사람들에게 다 친절을 베푸는지라 자신이 도와준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지도 못하고 제목의 외잎 갈대처럼 히코지의 사랑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마음에만 남아있었다는 내용.


두 번째 소설 「배웅하는 등롱」은 여기 실려있는 소설들 중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입니다. 그래서 인상이 깊게 남기도 했는데요. 내용은 가게의 어린 하녀 오린이 주인 아가씨의 사랑을 기원하는 의식을 위해 아가씨의 명령으로 한밤중에 근처 절에 돌을 주우러 가는 일을 백일 동안 강제로 하게 됩니다. 에도시대 시리즈를 보면 힘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거나 갈 데 없는 이들을 거둬주는 인간들이 많아 이 시대는 전근대라고 해도 참 훈훈하게 그려지는구나 싶지만, 그 일면에는 신분에 따른 차별과 불합리가 알게 모르게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주기도 하는데요. 배웅하는 등롱은 밤길을 가는 사람의 뒤에 나타나 그를 배웅해주는 기이한 등롱 전설을 말하는 것이지만 소설 진행을 본다면 오린을 배웅해주는 것은 아무래도 요괴가 아닌 사람이라고 파악되며 마치 그것의 정체는 유일하게 가게에서 오린을 걱정해준 정 많은 하인인 세이스케라는 확신을 주게 되지만 이것도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오린이 일하는 가게가 큰 강도가 든 날 세이스케는 아가씨를 지키다 다치고 오린이 모시는 아가씨에게 접근한 남자도 강도의 일당이라는 게 드러나 배웅하는 등롱은 오린이나 독자의 생각과는 달리 세이스케가 아닌 강도가 보낸 염탐꾼일 수 있다는 일말의 해석도 남기는 좀 씁쓸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소설 「두고 가 해자」와 네 번째 소설 「잎이 지지 않는 모밀 잣밤나무」, 그리고 다섯번째 소설 「축제 음악」은 해결사 역할을 맡는 에코인의 오캇피키인 모시치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소설입니다. 특히 「두고가 해자」부터는 사건을 해결하거나 범인을 잡기 위해 모시치가 트릭을 마련하고 추리를 하는 등 활약이 등장하기 때문에 마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탐정소설을 읽는 분위기가 많이 납니다. 「두고 가 해자」는 남편이 살해당한 아내의 시점에서 그 범인을 잡기까지의 과정이 드러나고, 「잎이 지지 않는 모밀잣밤나무」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덩달아 부녀의 묵은 감정의 골까지 털어버리는 내용이며, 「축제 음악」은 어떤 의미에서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교훈이 남는 소설입니다. 반면 여섯 번째 소설 「발 씻는 저택」은 모시치의 비중이 줄었으되, 부잣집 남성을 노려 접근한 뒤 그를 살해하는 팜 파탈형 살인범의 악행을 막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현대 배경의 추리소설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구도로 「잎이 지지 않는 모밀잣밤나무」나 「발 씻는 저택」은 외모를 이용한 미모의 살인마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마지막 소설 「꺼지지 않는 사방등」은 모시치보다는 오유라는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여성이 등장하며 사건 자체도 살인과 같은 큰 것이 아닌 사고에 가깝고, 모시치의 비중도 앞의 소설보다는 적다는 데서 특이점이 보이는 소설입니다. 남들로부터는 부처님 같다는 소리를 듣지만 정작 가족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집안을 갉아먹기만 한 어떤 의미에서 현실에서 많아 보일 유형의 아버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란 처녀 오유는 어쩌다가 과거에 사고로 딸을 잃고 미쳐버린 오마쓰란 부인의 딸 행세를 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오유가 워낙 냉철한 성격이라 오마쓰가 잃어버린 딸인 척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적인 금전 사정 때문에 딸 노릇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충격적인 반전이 하나 드러나게 됩니다. 소설의 소재만으로 본다면 딸을 잃고 미친 아내와 그녀를 위해 가짜 딸까지 마련하는 가련한 남편 그리고 그 역할을 하면서 진짜 딸이 될지도 모르는 하녀 이야기라는 구도가 나올 법도 한데 첫 번째 소설 「외잎 갈대」에서 작가가 신파 코드를 교묘하게 비껴간 것처럼 「꺼지지 않는 사방등」 또한 그런 신파는 없고 가련해 보이는 두 부부 사이에 남들은 눈치 못채는 증오심이 존재한다는 것이 암시되면서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현실적인 공포를 남겨주는 소설이라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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