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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한 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배우 이정재가 나오는 영화 『신세계』를 우연히 보고 갑자기 배우한테 흥미가 생겨서 필모를 찾아보니 『사바하』가 나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사용하던 OTT 플랫폼에서 결제를 하게 되었는데 영화 보기 전 대충 알았던 정보는 배우 이정재가 나온다는 거랑 배우가 맡은 역할이 사이비 종교를 조사하는 연구소 소장 이 정도라 보기 전 상상한 내용은 사람 잡는 사이비 종교랑 그거에 맞서는 주인공 이야기겠구나 싶었어요. 알고 보니 전혀 다른 내용이었지만. 영화 『신세계』와 『관상』에서 보여줬던 포스 있던 캐릭터완 달리 『사바하』의 박웅재는 (초반 한정) 어딘가 경박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였는데 배우가 참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서 대단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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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영화에서 낯익은 배우들이 제법 많이 나와 놀랐습니다. 정진영이나 유지태 같은 유명 배우들도 주역으로 나온 데다, 『극한직업』에서 감초 역할을 했던 배우 진선규가 조력자로 등장합니다. 단역이긴 하지만 초반 무당과 함께 등장했던 인물은 SBS 드라마 『녹두꽃』과 영화 『범죄도시』에서 장이수로 출연한 배우 박지환이었고 그 외에도 찾아보면 낯익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황반장의 캐릭터는 박웅재 덕에 사건에 꽤 근접한 인물이지만 영화 후반 가면 비중이나 활약이 사라지는 게 좀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까요. 특히 배우 유지태가 나왔을 때는 그냥 이 캐릭터가 최종 보스겠다 짐작이 가더라고요. 이건 순전히 배우가 스포일러던데 묘하게 악역으로 자주 등장을 하는 것 같네요. 작중 자신을 등불로 칭하더니 참 그것답게 최후를 맞이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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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전작 영화 『검은 사제들』이 선과 악의 싸움을 꽤 단순 명료하게 보여줘서 주인공들의 승리를 그렸다면 영화 『사바하』는 재미있게도 처음에 악마라고 생각되던 것이 악마가 아니었고 신이라 생각했던 것이 신이 아니었다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다만 그런 복합적인 캐릭터들의 대립이 주된 내용임에도 영화의 전개 자체는 『검은 사제들』에 비하면 템포가 차분한 편이라 아마 전작보다 흥행이 덜했던 것엔 이런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토속신앙적 요소가 활용되었다는 점과 선악이 복합적이었다는 점에서 내 취향은 『검은 사제들』보다 『사바하』쪽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극장에서 안 본 게 후회가 되었을 정도라 나중에 TV에서 방영을 했을 때 여러 번 재탕을 했던 기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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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등장하는 스님의 언급으로 불교에서는 명료한 악이란 것은 없으며 악마라 등장하는 것도 인간의 욕망을 비유한 것이란 대사가 나오는데 그 대사 자체가 영화 전체의 복선이었다고 할까. 뭔가 예전에 읽은 틱낫한 스님의 책에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 변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 이런 비슷한 구절을 읽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불교 서적이라고 해 봤자 『서유기』 관련 조사하면서 겨우 몇 권 찾아읽은 정도지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구절이 집착이 사람 망하게 한다는 점이었어요. 겉핥기로 배운 것이지만 불변하는 것은 없고 또한 집착이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는 게 불교의 공통적인 가르침인데, 이런 가르침을 생각한다면 중간 티베트에서 온 고승이 어째서 김제석을 미륵으로 칭하면서 그를 타락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는 '같은 곳에서 태어난 여자아이에 의해 소멸할 것'이라는 알쏭달쏭 한 예언을 했는지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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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영험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그 영험함에 집착하는 순간 영험함은 사라진다는 것. 박웅재의 '용이 뱀이 되었다'라는 대사처럼. 영화의 사건을 만드는 주축인 사슴 동산의 사슴은 작 중 대사처럼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짐승 중 하나지만 한없이 연약하고 사냥당하기 쉽다는 점에서 상당히 모순적인 존재란 생각. 반면 김제석의 주적으로 나오는 '뱀'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공포스러운 존재로 복수와 원한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간신앙에선 인간에게 복과 장수를 가져다 주는 이중적인 존재로 등장합니다. 즉 작 중 뱀은 신성과 함께 죽어간 여자아이들의 원한을 상징하는 셈. 사슴은 불로장생의 상징이지만 실제론 쉽게 죽을 수 있는 동물이며 뱀은 묘하게 혐오와 신성이 같이 깃들어있는 동물로 중반 사슴의 죽음은 김제석의 파멸을 암시한다고 해석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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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뱀의 양면적인 이미지는 기이하게 태어나 악마 취급 당하며 존재가 말소된 아이가 실은 신적인 존재였다는 것과 의미가 상통해요. 외국 신화에선 드물지 모르지만 한국 신화에선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인물이 초월적인 존재였거나 초월적인 존재가 되는 소재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영화 속 신의 존재가 참으로 토속적이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심지어 이런 설정은 김제석의 교리에 세뇌되어 온갖 악행을 저지른 광목(정나한)이 후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김제석을 저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과도 의미가 통합니다. 작 중 등장하는 사천왕이 원래는 사람 해치는 악귀였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사천왕이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정나한도 김제석에게 이용을 당해 애꿎은 여자애들을 죽이는 짓을 하였지만 끝내는 진짜 '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그나마 죗값을 치른 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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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나한의 행동 자체는 진심 이 명언밖에 생각나지 않는 정확한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재미있게도 예언 설정이 나오는 작품들은 예언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고군분투할수록 오히려 예언을 성립하는 조건을 완성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걸 전문적인 용어로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하던가요? 김제석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아이를 없애기 위해 그 조건에 해당하는 애들을 골라 죽인 것이 오히려 김제석의 파멸을 앞당겼다는 점도 그렇고요. 여자아이들의 주민번호까지 기록하면서 예언을 막으려고 했지만 진짜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아이였다는 데서 신이 김제석보다 한수를 더 앞섰다는데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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