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은 지난번에 리뷰한 『사라진 직업의 역사』와 제목이나 다루고 있는 내용이 비슷한 데다 해당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으므로 기대하면서 빌려온 책입니다. 『사라진 직업의 역사』가 우리나라 역사 속에 존재했다가 근대화되면서 서서히 사라진 직업들을 간추린 거라면, 이 『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은 독일인 저자가 유럽 역사 속에 존재했다가 사라진 다양한 직업들을 간추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사라진 직업의 역사』를 읽었을 때에도 느꼈던 거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직업들도 대개 사회적 변화에 맞물려 생겨났으나 그리 대접은 받지 못하는 하층민들이 가졌던 직업들이 많더군요. 뿐만 아니라 그 직업이 생겨난 배경을 살펴보다 보면 역시 사회의 변화사를 어느 정도 알아챌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책은 단순히 활자만이 아니라 그 사라진 직업을 가진 전문가들의 모습을 삽화로 그려서 중간에 삽입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책의 단원이 시작하는 첫 표지에 어떤 직업의 특징은 무엇 무엇이고, 그 직업이 생겨났다가 사라진 시기는 어디까지인지 작게 표시해주고 있는데 이 특징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 재미있는 구절이 많습니다. 단순 겉모양만이 아니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려주는데 예를 들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커피냄새탐지원'은 염탐꾼에 거만스러운 태도를 가졌다거나, '무면허의사'는 큰 소리로 말재주를 부리고 기적을 행한다고 하거나, '가마꾼'은 우악스러운 행동에 강인한 팔을 가지고 일요일과 휴일에는 깨끗한 속옷을 입는다거나 의외로 세세한 구석까지 책에서 설명해 주더라고요. 하지만 책의 설명에도 아직도 잘 상상이 안 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유럽에서 사용했던 지하관을 통한 우편배달입니다. 압축공기를 이용하여 우편물을 지하관으로 날려 보내는 식으로 사용했다는 이 우편배달 형식은 의외로 1984년도까지 파리에서 이용했다고 하는데요.
책 속에 등장하는 직업들 중 유모라던가 가마꾼이라던가 하는 직업들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이런 경우는 정말 특수한 상황에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책 속에 등장하는 직업들은 당대의 고문서와, 그림, 당대에 나온 소설들의 구절들을 찾아 이 사라진 직업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대개 사회에서 고정적으로 전해지는 직업들도 제법 있는 반면 몇 세기만에 금세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직업들은 앞서 언급했듯 크게 대접받지는 못해도 나름 자부심을 가진 직업인들도 있었습니다. (넝마주이라던가...) 그리고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특이한 환경에서 나온 직업들도 신기한데 예를 들어 하수처리시설이 없었던 시절에 등장했던 이동변소꾼이라거나 철이나 개구리등을 삼키는 것으로 쇼를 보여주는 만능식도락가라거나, 바로크시대에 끌려온 전쟁포로들을 외국인시종으로 쓰게 한 것 등. 특히 사형집행인 같은 경우는 매우 천대받던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설명하는 사형집행인의 다양한 임무를 본다면 현대의 직업들 중 전문가를 요하는 것들이 이 사형집행인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역사 자료를 다루는 책에서 본 것이지만 사형집행인들이 종종 의사로 전직했다는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었는데요.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일을 도맡아야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간 몸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을 쌓게 하고 의학적으로 쓸모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지요. 특히 이 사형집행인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느껴지는 게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천대받아 도시 외곽에 거주하면서 혼인도 맘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사형집행인들끼리만 교제를 하고 혼인을 했다고 하는데, 예전에 흥미진진하게 본 드라마 『제중원』에서 백정 출신 주인공이 겪는 고난이 떠오르더군요. 천민으로 규정지어진 순간부터 그들은 인간관계도 맘대로 할 수 없지만 오히려 외곽으로 몰려서 거기서 얻은 지식이 현대 의학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이 되는데 과거의 의사와 현재의 의사가 그 지위가 다른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이 천대받던 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걸까요? 참으로 미묘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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