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잔혹한 세계사』는 제목 한가운데 '대량학살이 문명사회에 남긴 상처'라는 부제가 눈에 띄는데 말마따나 세계사의 한축을 차지하고 또 은폐되기까지 한 '대량살육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표지의 그림은 고대 카르타고 인들이 숭배하여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쳤던 신의 형상이라고 하는군요. 책은 근현대에 일어난 대량학살사건을 대개 살피고 있지만 들어가기에 앞서, 고대에 일어난 최초의 학살이라는 로마인에 의한 카르타고 대학살을 언급합니다. 이 이야기가 가장 첫 번째로 삽입된 이유는 그만큼 학살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이야기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아닐는지... 만약 근현대사의 학살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역사 속의 유명한 학살들을 다루게 된다면 현재의 책도 제법 두꺼운 분량임에도 엄청난 시리즈가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책에서 설명해 주는 대학살-대량살육 사건은 1500년대에 일어난 사건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인 1995년도의 학살까지인데, 이것만 봐도 현대사 역시 학살의 역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은 종종 국제사회의 미온적인 움직임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국제사회가 개입했더라면 어느 정도 피해를 막을 수 있던 학살도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대표적인 사건이 르완다 대학살 같은 경우. 하지만 국제사회-정치사회는 이득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학살을 방관하거나 학살을 나쁘다 말하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대량학살의 원인에는 종교갈등, 민족갈등, 국가 간의 전쟁, 독재정부의 탄압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등장하는데, 대개 학살의 가해자들은 이 학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거나 처벌을 피한 경우가 제법 있음도 설명해주고 있어요.
책에서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건들을 본다면 2차대전 직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 독일 정부가 대단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대학살의 후유증은 아직까지 이어져 외교적인 문제로도 떠오르고 있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국에 의한 자국민의 학살 또한 매우 무서운 방법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책에서 20세기에 일어난 손에 꼽히는 대량학살로 유대인 학살, 아르메니아인 학살, 그리고 캄보디아 학살을 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학살사건 중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학살은 바로 독재정부에 의해서 자국민을 상대로 일어난 대규모의 살인이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데 인터넷상으로 나름 검색을 해보니 이 학살로 말미암아 캄보디아 인구가 상당수 줄어들었을 정도라고 하네요.
대부분의 살육은 전쟁이나 혼란 기간에 분쟁이 많았던 지역에서 갈등을 빚었던 서로 다른 인종이나 종교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데 반해서 캄보디아 학살은 캄보디아 내에서 캄보디아인들 다수를 상대로 벌어진 사건이라는 게 특이점. 자국에 의한 자국민 학살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정권 유지 차원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 학살은 그 규모와 가학성만 보더라도 정말 믿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책에서는 언급되는 학살사건들이 이제 끝난 사건이라고 이야기해 주진 않는데 학살의 후유증은 사람들에게 오래 남으며 어딘가에선 그 시체가 아직도 발굴이 되고 있고, 그 책임 문제에 대해선 아직도 왈가왈부하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외면을 하는 와중에도 엄연히 어느 나라에서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어딘가에선 사람들이 알지 못한 채 묻혀버린 사건또한 있을 수 있다고 일깨워주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 사족이지만 책이 가지는 해석이 특이한 사건도 있는데, '성 바톨로뮤 대학살' 같은 경우 보통은 당시의 왕비인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학살의 원인이자 주범으로 알려져 있었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책의 설명에 따르면 카트린느 왕비는 신교도와 구교도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한 편이며, 오히려 학살은 두 교파 사이의 갈등이 폭발하여 일어난 사건으로 해석되는 거 같더군요. 물론 카트린느의 책임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저 역시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걸 생각하게 해 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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