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교수의 서적이라면 예전에 『한국의 연쇄살인』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 책도 그 책이 생각나서 빌려온 셈입니다. 이번 책 『한국의 CSI』는 『한국의 연쇄살인』보다 좀 더 전문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고 할까요. 『한국의 연쇄살인』이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표적인 살인 사건들을 그 사건의 시작부터 해결까지 밟아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한국의 CSI』는 여러 사건을 조사하는 데 어떤 과학기술이 유용하며, 어떤 식으로 그 과학기술이 발달해 왔는지, 어떤 사건들이 해결되었는지, 그리고 과학기술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여 각 분야의 고충을 살피기도 합니다. 여기서 알려주는 수사 방법은 대표적인 DNA 검사에서부터 현장 감식, 지문 수사, 혈흔 수사, 미세 물질 검사, 검시, 화재 상황에서의 감식 등 다양합니다.
말하자면 과학기술 수사대의 기초 입문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만 전문적인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에 제 짧은 머리로 이해하거나 몰입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다만 미드 『CSI』 시리즈를 언급하면서 과학기술을 응용한 범죄수사에 대한 인식이 대중에게 넓어지고 그 분야 전공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드라마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과장이 따르고 범죄 사건이 해결되는 케이스는 드라마의 권선징악적 구성을 따른 탓이 크다고 덧붙입니다. 과학수사를 적용하더라도 사건 해결까진 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책에서 설명해 주는 사건들을 보면 담당자들이 끝까지 자신의 일에 매진한 덕에 미궁에 빠질 사건들이 해결된 케이스가 있더군요.
그리고 단원의 첫 장마다 설명해 주는 사건들이 예시를 위한 가공의 사건인가 싶었는데 중간 사이코패스 살인마 강호순의 사례가 언급된 것을 보고 진짜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책에서 한 단원과 단원 사이에 설명해 주는 국내외의 사건들 존 베넷 램지 사건이나 오제이 심슨 사건, 가수 김성재 사건이나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들은 과학수사가 일찍 적용되었다면 범인이 검거될 수 있던 사건이라 책의 내용대로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지요. 책 내용 인상적인 것들을 꼽아보자면 법의학자의 인터뷰 중 오제이 심슨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힌 부분인데, 여기선 통상의 생각들과 다르게 사건의 범인이 오제이 심슨이 아닌 그의 아들이 모친을 살해한 사건이라고 추측하고 있더군요.
오제이 심슨 사건은 전처 살해 의혹을 받았으나 사건을 인종차별로 이슈화하여 결국 무죄판결을 이끌어낸 인물로 후에 민사 소송으로 파산하여 나중엔 노상강도로 수감되기까지 한 인물인데, 이 자에게 죄가 있건 없건 분명 전처 살해에 연관은 있고 사건의 진상을 덮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구절은 검시관 인터뷰에서 강사를 하면서 겪은 일 중, 청소년들이 검시관은 멋있어 보여도 그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외적인 모습만 보고 시체를 부검해야 하는 어려운 현실을 꺼려하는 거 같아 씁쓸하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시는 분들이 있어 그나마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멋있어 보인다고 함부로 도전하기보단 어떤 일이든 사명감을 가지고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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