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드디어 숙종실록편입니다. 효종실록과 현종실록에 답답한 면모가 많이 나와 이번 숙종실록은 뭔가 빵 터뜨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본 14권입니다. 조선시대에 왕도 많고 그 왕들이 다 하나같지가 않아서 사람들이 단순한 이미지로, 혹은 유명한 사극에 많이 나올수록 더 일반적인 이미지가 굳어지는 왕들이 있는데, 연산군은 어머니를 잃은 나머지 타락해 버린 폭군으로, 중종은 신하와 부인에 휘둘린 나약한 왕으로, 숙종은 요녀와 현모양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이미지로 많이 재탕이 되어왔던 거 같습니다. 이 만화 '조선왕조실록'도 작가분의 새로운 해석이 많이 곁들여지는 케이스가 많지만 그래도 새로운 일면을 공부해 나간다는 생각도 들어서 볼수록 맘에 든달까요? 예를 들어 연산군은 어머니랑 상관없이 심지어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마저 자신의 목적에 이용할 정도였으나 다만 민생을 너무 등지고 전횡을 일삼은 케이스로, 중종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유한 태도를 보이면서 신하들에게 휘둘린 거 같아도 실은 신하들을 이용하여 왕권을 유지했던 측면이 있다고요.
실은 숙종에 대해서는 학생 시절 여자들에게 흔들린 왕이 아니라 오히려 여자들을 이용하여 왕권을 강화한 왕이라는 이야기를 미리미리 들은 바 있고 왕의 개인적인 성격 또한 굉장히 괄괄했다는 이야기를 본 바라 창작물들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왕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14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신하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신하들을 누르는 강단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작되는데, 숙종 시절에 환국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도 역사 수업을 통해 들으셨을 겁니다. 처음의 환국은 당대의 권신 김석주가 많이 개입했지만 후의 환국은 숙종이 주도했는데요. 최근에는 장희빈에 대한 해석도 달라져서 정치판의 희생양으로 보는 케이스가 더 많은 거 같더군요. 여전히 악녀딱지는 떨어지지 않은 거 같지만요. 다만 인현왕후도 기존의 현모양처가 아니라 서인의 세력에 의해 내세워진 측면이 강합니다.
여기서 그려지는 걸로 봐서 마냥 현숙한 여인이 아니라 희빈 장씨를 견제하고 불안해하는 일면이 있고 신하들이 폐비를 반대한 이유도 훌륭한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세력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반대했던 거라 보이더군요. 왕과 신하들의 밀고당기기나 남인과 서인의 대립, 서인이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는 이야기는 조금 지루하게 본 반면, 역시 이런 이야기엔 여자가 나와야 재미가 있는 법인지 장희빈 이야기가 나오면서 재미가 있어졌는데 작가분은 많이 축약시켰다고 하지만 원래 야사보다 실록에 더 치중한 이야기라 그런 거고요. 보면 장희빈은 폐비윤씨와 비슷한 과정을 걸어갔다는 생각도 들어요. 결과적으로 아들이 왕이 된 것도 똑같고. 다만 경종이 맘이 착해서 인현왕후를 따른 것이 아니라 경종의 세력 자체가 당시에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거나 울분을 터뜨릴 수 있던 상황이 아니었던 거로 나옵니다. 따지고 보면 신하들이나 사대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처신해야 했던 왕이 한둘도 아니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도 역사서보단 드라마나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모양.
장희빈 이야기 말고도 숙종대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많은데 우리가 알고 있는 안용복에 관련된 사실이나 도적 장길산이 등장하게 된 시대배경에 대한 설명도 나옵니다. 다른 책에서 안용복이 귀양을 갔다는 이야기에 옳은 일 해도 벌받는구나 분통 터뜨린 경우도 있었지만 의외로 만화에서 설명해 주는 것을 보면 안용복이 귀양을 간 것은 관리 사칭 때문이지 그 공적 자체는 인정받았다고 하는군요. 다만 귀양을 간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대동법 정착으로 점차 상업시장이 형성되어 조선시대에 드디어 화폐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민중들의 성장도 엿보이는데 당시 가혹한 착취를 피해 장길산과 같은 도적이 되는 케이스만이 아니라 직접 무리를 지어 농성을 하면서 관리들에게 생계 해결을 요구하는 등 어딘가 정치적인 성장도 엿보입니다. 숙종 시기를 전후로 민중의 의식이 달라져서 정감록과 같은 책이 퍼진다거나 검계같은 범죄조직이 형성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의 말미에서 언급된 적 있는데, 숙종이 민생이나 국방에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근본적인 문제-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은 고로 계속 이어져온 조선시대의 모순점은 늘 진행방향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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