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권 리뷰입니다. 그 열받는 '인조' 대의 이야기도 끝나고 이야기는 '효종'이 주역으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김자점이 축출되는 것으로 만화가 시작됩니다. 전권에서 인조에게 총애받던 김자점이 갑자기 등장이 사라져서 어떻게 됐나 했는데 이번 13권에서 역모를 꾸미다가 거열형에 처해지고 공모자였던 후궁 조씨도 참수당합니다. 이걸로 어느 정도 나마 민회빈 강씨의 원한이 풀렸을지... 효종은 아시다시피 소현세자의 동생으로 본디 세자로 책봉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장자계승이 원칙이었고 소현세자가 급사한 뒤로 소현세자의 아들이 그 뒤를 이어야 했지만 그 아들들이 일찍 죽어버리는 바람에 왕좌는 봉림대군에게 돌아갑니다.
소현세자의 죽음에도 의문이 많긴 하지만, 이 소현세자의 아들들의 죽음 자체도 인조가 방조한 결과였는데 자기 손자들을 개새끼같은 것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아무래도 포지션이 형과 조카들의 자리를 빼앗은 격이라 초장부터가 위태로웠던 효종은 죽을 때까지 정통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거기에다 당시 산림세력 - 산당의 힘이 커지면서 효종실록은 내내 효종이 왕권강화를 위해 애쓰면서도 그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효종이 생전에 '북벌'을 외친 이유도 단순 반청 감정 때문만은 아닌 당시 사대부들의 인정을 받으며 군권을 회복시키려는 차원의 의도였습니다.
북벌을 외치긴 했지만 효종은 굉장히 현실주의자였으며 나름 왕권강화차 이 북벌을 이용한 측면이 있어보이는데 부제가 '군약신강의 나라'라는 데서 보이듯 안타깝게도 왕이 신하들의 눈치를 무척이나 살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뭐랄까 분명 최종결정은 왕이 하는 게 맞고 우리나라에서 본디 신하들의 입지가 높았다고는 하지만 그 유약했다던 중종이나 명종과도 달리 더 압박스러운 상황이 되었다고 할까요. 신하들의 왕의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왕이 신하의 눈에 들어야 하는 상황이니 분명 유교적 시스템이 작용해서라고 하더라도 주객전도가 되어버린 느낌.
민회빈 강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데 일조한 김자점 일파가 숙청되었지만 효종 생전에 강빈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가 올라왔을 때에 매우 격하게 반응한 이유도 이 정통성 콤플렉스 때문. 분명 강빈이 억울하게 죽은 것은 맞고 일반적인 인식이 그러했다면 효종도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의 신원을 언급조차 못하게 한 것은 효종이 야박해서가 아닌 입지가 위태로운 탓이었어요. 흔히 선조가 방계 콤플렉스가 있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진짜 정통성 문제로 고민했던 왕은 효종이며, 효종의 죽음으로 시작된 예송논쟁도 여기에서 비롯된 거였습니다. 자의대비(장렬왕후)의 상복을 결정하는 문제가 그렇게 질질 끌린 것은 이것이 붕당들끼리의 정치적 싸움으로 발전해서였지만...
그런데 사안이 사안이다보니 분명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읽는 재미는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솔직히 이 예송논쟁이 백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다만 확실한 것은 송시열과 다른 신하들의 언쟁에서 보이듯 주자학이 학문을 넘어서 거의 종교와 가까운 체계가 되어간다는 게 보이더군요. 효종이 급사 역시 좀 많이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데 그의 사후 현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정통성 문제는 그 아들대까지 이어집니다. 효종은 형인 소현세자를 많이 닮았지만, 그 아들은 좀 더 후덕한 체질로 나오는데 으레 알려진 희미하고 병약한 이미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자질을 많이 닮은 왕이었다고 하더군요.
송시열과의 대립에서 어느 정도 굳건한 모습을 보이고 예송논쟁도 정리하는 등 차근차근 입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만 그도 왕권이 어느 정도 다져질만한 상황에 젊은 나이에 병사하고 맙니다. 하지만 현종 다음대가 숙종이고 숙종이 정통성에 문제가 없는 왕인 데다 숙종대에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이 있으니 다음 권은 볼만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13권의 마지막 파트에서는 제가 예전에 한번 블로그에서 다룬 바 있던 경신대기근의 참상이나 청나라와의 국경문제로 부딪히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경신대기근은 그야말로 불가항력의 재해였지만 현종을 비롯 당시 조정에서는 이를 진휼하기 위해 애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다량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건 막을 수 없었던 것. 외에도 청나라에서 탈출한 조선인 포로가 부모를 만나러왔다가 결국 적응을 못하고 다시 청으로 도주한 이야기에서 대신들의 책임을 묻겠다는 청나라 사신을 달래기 이해 현종이 무릎을 꿇은 이야기는 삼전도의 굴욕 2편이라고 비난받았다지만 애초에 현종이 인조처럼 삽질만 한 왕도 아니고, 이것은 그래도 당시 조선이 불리했던 입장에서 백성을 생각해서 굴욕을 감당한 미담정도로 여겨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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