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녹두꽃』은 역사를 대강이나마 알고 있으니 결코 희망적인 엔딩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보고 있음에도 상당히 몰입도 있게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엄마랑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일제강점기 같은 암울한 시대를 다루는 이야기는 괜히 우울해져서 보기 싫어진다고 말한 기억이 있는데 지금 『녹두꽃』의 배경은 앞으로 더 암울해져가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처음엔 보기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음에도 일반적인 사극에서 못 본 소재라는 측면 때문인지 궁금증 때문에 계속 보게 되네요. 근데 예전에 본 『제중원』 같은 드라마도 그렇고 은근 구한말은 본 적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생각보다 일제강점기보다 구한말 쪽 배경이 더 받아들이기 쉬운 걸지도 모르겠고요.
이번 회차에서 백이강의 내적 변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느낌인데 백산까지 진격하는 동학군의 모습과 동학군에 결국 받아들여진 백이강 이야기가 나왔지만 본격적인 싸움은 다음 회차 분량일듯 싶고요. 예고편에서 보이듯 백이강이 동학군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란 생각은 했는데 직접적으로 원한 가진 인물들이 부각될 줄은 몰랐습니다. 최경선은 1화부터 악연이라 짐작은 했지만 이번 번개의 사연을 들어보면 충분히 백이강한테 원한을 품을 만한지라 버들의 '죄인으로 살다가 죽으라'는 말은 냉정해도 사이다 같은 말이었다 생각해요. 어떤 의미에서 백이강의 삶을 암시하는 말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고요.
백이강의 거시기 시절 행적은 참으로 질기게도 백이강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는 게 보였습니다. 백이강이 결국 동학군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저번 주 방영분부터 자각한 죄책감과 더불어 오늘 백가와 그 가족들이 보여줬듯, 백이강의 자리는 백가 집안에 없다는 점이었을 듯... 백가 일행이 백이강을 필요로 한다면 그건 백이강 자체가 아니라 동생인 백이현에 의해 딸려오는 것 정도의 자리라고 할까요. 근데 백가가 백이강한테 유월이 행방을 묻는 것을 보면 백이현이 한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백이현과 백이강의 사이는 끈끈해서 눈물이 날 정도인데다 그 와중에 동생 먼저 챙기는 백이강이나 백이강을 보내주고 착잡한 표정 짓는 백이현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 와중에 자기 공격한 향병들 쏘아죽이는 백이현에게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더 냉정한 타입일지도. 황석주의 행동은 뭔가 짜증나는 구석이 있지만(지난 회차 통수+이번 주 전봉준을 대하는 태도) 예전에 역사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구한말을 다룬 편에서 동학군들은 의병들 사이에서도 배척됐다는 언급을 본 적이 있어서, 아마 그의 행동은 일반적인 그 시대 양반들의 모습을 고증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홍가 같은 인간은 대놓고 악랄하기보단 자기 이득에 따라 움직이며 남을 쉽게 배신하는 간사한 인물상인데 은근 이런 캐릭터가 오래 살아남는단 말이에요. 배우가 타사 드라마 『터널』에서 사건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했던 전성식 팀장 역을 맡았는데 전성식 팀장과 홍가는 너무 대비되는 인물이라는 배우가 캐릭터를 잘 살렸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심각한 와중에도 소소하게 개그 요소가 들어가서 빵 터졌는데 심각한 상황과 코믹한 상황을 자연스레 오고가는 배우의 연기가 대단하다 했고요.
그리고 작중 송자인이 하는 말 중에 명대사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백산에 모인 동학군들을 보면서 '서면 백산이고 앉으면 죽산(竹山)'이라는 말이 그랬습니다. 소설로 치면 송자인의 역할이 작품 속에서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 역할인 것 같아요. 또 드라마 재방송+드라마 몰아보기 등을 다시 보면서 느낀 거지만 송자인이 백이강에게 갖는 감정은 아직 사랑보다는 인간적인 연민과 남녀의 호감 중간일 것 같았습니다. 드라마 초반 엮인 것도 있고 민란 당시 최행수는 구했지만 백이강은 못 구하고 사람들에게 몰매맞고 끌려가 죽을 뻔할 때 연출을 보면 말이죠.
반면 백이현과 명심 아씨 쪽은 백이현 쪽이 둔감하고, 명심을 존중하지만 사랑이라 부르기는 미묘한 느낌에 명심 쪽의 일방적인 사랑 같지만 둘이 있으면 로맨스물 보는 마냥 비주얼이 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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