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 17화-18화 리뷰입니다. 드라마의 전개는 태반 비극적인 경우가 많고 또 역사 스포일러 덕에 주인공 편(동학군)의 앞날이 비극으로 끝날 것임을 알면서도 상당히 몰입감 있게 보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드라마에 전투가 많고 상당히 긴장감 있는 장면이 많이 연출되어서 그런가 싶어요. 황진사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백이현의 모습에 이어 황진사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왔는데 처음 제 예상으론 황진사는 민란에 휩쓸려 일찍 퇴장하는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추측과는 반대로 동학군과 향병과 접전 속에서도 살아남는데 백이현의 복수는 황진사를 죽음으로 모는 게 아니라 그가 살아있는 동안 그의 정신을 붕괴시키고 멘탈을 털어버리려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따지고 보면 그것이 더 효과적인 복수란 생각도 들었고요. 또 의외로 황진사는 오래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는데 저번 주만 하더라도 혐오스러운 인간상이다 싶었던 황진사가 이번 방영분에서는 가련하게 보였을 정도. 참으로 이 드라마 인간들 보는 입장에서도 복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서 의외였던 건 죽은 줄 알았던 홍가가 아직 살아있었네요. 은근 이런 인간 오래 살아남는 게 클리셰가 맞으려나요? 백가가 죽였다고 오해한 장면은 입을 찢은 장면이었던 모양. 그런데 관노로 전락했으니 저 시대엔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시기적으로 노비 해방이 될 날도 멀지 않았으니 금방 풀려날지도.
러브라인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현명심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과 달리 이강자인은 꽤 귀여운 모습도 나오면서 사이가 진전되는데요. 은근 멜로 장면이 많이 나와 조금 몰입을 방해한다 싶었습니다. 『녹두꽃』의 재미있는 장면은 동학군과 경군의 전투나 갈등이 심한 인간들끼리 대면할 때라... 그런데 보면서 명심 아씨가 마냥 오빠에게도 순종적인 여성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흔한 사랑꾼 캐릭터가 아니라 맘에 들더군요. 백이현에 대한 미련을 아예 접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오빠이며 오빠와 백이현의 관계를 완화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가끔 옛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 같은 데서는 가족이고 나발이고 내팽개치고 일단 사랑에 목숨 거는 여성 유형들이 좀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녹두꽃』의 여성들은 이런 유형과는 거리가 멀어서 맘에 들더라고요. 하지만 러브라인은 좀 적당히 해 주는 게 더 끌릴 것 같아요.
동학군 이야기로 들어가면 최경선이 다른 곳에 군사를 이끌고 나가게 되면서 백이강이 별동대 대장을 맡게 되는데 최경선이 백이강에게 점차 신뢰를 터 가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그 '대장'이란 자리가 어떤 건지 아직 어린 번개는 모르고 유월이랑 자인은 아는 장면은 참 미묘했습니다. 백이현이 도채비(도깨비)라는 별명을 얻으며 동학군을 저격하는 장면에서 의도적인지 동학군 측 포수인 버들이와 대결 구도 같이 연출되었고요.
백이현은 분명 아버지 백가나 다를 바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인물임에도 그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짠하고 이번에 전투에서 필연적으로 형(백이강)과 대적하게 될 텐데 이건 벌써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리는 게 이번에 총에 맞은 걸 형인 백이강이 알게 되면 진짜 어쩔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 전개가 좀 빠르다고 느낀 게 예고편에서 청군과 일본군이 벌써 등장하더라고요. 이미 동학군은 조선 왕실과 양반들 입장에서 배척되는 입장에 이번 전라 보부상을 해산시킨 일로 보부상들에게도 원한을 산 상태라 적이 너무 많습니다.
어쨌든 예고편 영상으로 보아 전개에 박차는 가하겠지만 이것이 슬슬 비극의 전조라는 점과 고구마의 시작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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