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벌거벗은 세계사』 140화를 재방송으로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번에 '여요전쟁'과 관련된 회차(135화)를 보고 그동안 잊고 있다가, 이번에 흥미로운 소재가 나온 것 같아 본방을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정작 본방 시간대에는 다른 사정이 생겨서 TV를 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하루가 지나 재방송을 통해 140화를 감상하게 되었는데요. 어쩌면 이번 회차는 세균이 일으키는 질병과 인류의 지독한 악연을 다룬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싶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세균의 영향력은 광범위해서 어떤 역사적인 사건보다 스케일이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거든요. 전쟁으로 퍼지기도 하지만 전쟁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내고 내부의 문화와 시스템까지 개편하게 만든다는 데서 그 영향력이 막강한 게 전염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번에 강연을 맡아주신 교수님 정보. 그리고 아래 기사를 통해 게스트와 관련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news.nate.com/view/20240227n25540?mid=n1101
'여요전쟁' 때와 비슷하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컨셉으로 역사적인 주요 사건들을 짚으며 중간중간 분위기 전환을 위해 퀴즈를 내면서 MC들이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도 재미 포인트. 세균이라는 존재가 따지고 보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지저분한 이야기도 더러 있고, 질병에 무지한 사람들의 행적 때문에 현대인 시점에서 속이 터질 수도 있다고 하지만, 무조건 답답하고 환장할 내용이 이어지지는 않으며 알기 쉬운 강의 덕에 곁에 계시던 부모님까지 흥미를 가지고 같이 시청하게 되었네요.
시대에 따라 질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행태가 변화한다는 것이 이번 강의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중세 시대 유럽 사람들은 한센병을 신의 벌이라고 여겨 환자들을 핍박하며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아예 화형에 처하기도 하는 끔찍하면서도 환자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워지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진짜 저 시대에 축복받은 인간들이 어디 있겠냐 싶긴 하지만 특히 질환자들의 대우가 처참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요. 그나마 흑사병(페스트)이 퍼지던 시기에는 환자들을 죽이는 케이스는 없어졌지만 신의 벌이라고 여겨 환자들이 자해는 했다는 설명.
또 2억에 가까운 희생자를 내는 바람에 그동안 유지되던 유럽의 봉건제가 무너지는데 큰 영향을 끼치는 등 소개된 다른 전염병과 비교하면 그 영향력이 가장 막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사람들이 이걸 신이 보낸 죽음의 병이라고 여긴 것도 어떤 의미에서 이해가 가지 않나 싶었을 정도. 왠지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작품에서 종종 흑사병이 악마나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퍼뜨렸다는 설정이 등장하던 것이 이해가 갔다고 할까요? 심지어 당시 그림조차도 흑사병=악마/죽음과 동일시하며 묘사했으니...
매독은 흑사병에 비하면 희생자 수는 적지만 그 병의 원인(성관계)이 영 께름칙한 점이 잘 설명되더라고요. 아예 언급하기 창피한 병이라고 이 병이 각국으로 퍼져나가자 그 이름을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병이라고 '다른 나라 이름+병'을 합쳐 불렀다는 부분이 좀 많이 웃겼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매독을 중국에서 왔다고 '당창'과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는 설명) 당시 사람들이 질병의 원인이나 치료법을 잘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수은을 상처 부위에 바르거나 수은 증기를 쐬는 것이 치료 방법이라고 퍼졌다고 하던데요.
현대 기준으로 보면 저건 진짜 더 빨리 죽으려는 방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수은의 위험성을 알 리 없었으니 그런 거였지만... 그래도 한센병이나 흑사병과 비교하면 매독은 대항해시대에 급격하게 퍼진 병이라 이것을 신이 내린 벌이나 초자연적인 저주라고 여기지 않고 치유해야 할 '병'으로 인식했다는 점이 그나마 시대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콜레라와 결핵으로 넘어가면 사람들의 인식이 더 바뀌어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세균의 역사에 영국의 존재감이 커지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영국이 자주 언급되다 보니 나중엔 MC들이 또 '영국'이냐며 한탄하는 장면도 삽입되어 있었고요. 아무래도 식민지를 대량 점령한 나라인 데다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다 보니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고, 전염병의 등장도 시대의 부작용과 비슷한 면모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콜레라 같은 경우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시작하여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이것이 오염된 물을 통해 전염되는 병이라는 걸 알아낸 의사 존 스노우 덕택에 확산을 막았다는 설명이 나오던데 생각해 보니 이것은 예전에 『바이러스 도시』라는 책으로 읽은 기억이 있더라고요. 또 병의 진원지 근처에 있던 양조장에선 맥주만 마셔서 그곳 사람들이 전염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술이 인간을 구한 거라 묘한 아이러니까지 느껴졌어요.
또 다른 질병인 결핵 같은 경우는 그 환자의 증상이 당시 영국의 미의식과 결부되어 선망되는 병으로 바뀌었다고 하는 등 병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바뀌었다는 점은 물론, 남은 아픈데 저따위 망상을 하는 걸 보면 저 시대 영국인들은 좀 배가 불렀나 하는 생각도 따라왔습니다. 유명한 예술가들이 이 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하니 좀 신비롭게 포장된 면모가 강한 듯.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병이라는 데서 그 암울함이 엿보이더라고요. 또한 결핵 증상이 뱀파이어 전설과 결합한 사회 현상은 좀 특이했습니다.
결핵으로 죽은 친인척이 흡혈귀가 될까 봐 그 시신을 파내어 훼손한 사건이 언급되던데, 이미 질병을 신이나 악마의 저주라고 인식하던 때가 아니었음에도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인간의 공포심은 신앙과 유사한 구석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왜 결핵 환자가 그렇게 많은 건지 의문인 게 OECD 국가 중에서 제일 많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현대에 들어 세균의 존재를 학자들이 발견하여 연구하면서 1차 세계대전쯤에 치료제인 페니실린을 발명하는 등 새로운 국면에 다다랐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나중엔 영국이 탄저균을 가지고 화학무기를 발명하고 그걸 자국의 섬에서 실험하여 땅을 오염시켰다는 데선 MC들처럼 한탄이 나왔을 정도. 실험에 쓰여서 죽은 양들이 불쌍했다고 할까요? 섬 근방에 사는 주민들은 괜찮을까 하는 걱정은 덤. 이후 이어지는 설명에서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탄저균 테러라던가 또 다른 세균들을 가지고 화학무기를 양산해 내는 현실을 보면 이건 균보다 인간들의 머리 상태가 더 심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까딱하면 다음에 퍼질 전염병은 인간이 만든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공포 소재 같은 걱정도 따라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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